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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잃을 것 없고, 무서운 것도 없던 시절은 때론 순수한 열정이란 가장 값진 것을 품고 흐른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모든 것이 진짜였던 시절.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순도 높은 진짜를 알아보는 것은 시대의 몫이다. “내가 이리 유명해질 줄은 차마 몰랐겠지”(오아시스 ‘썸 마이트 세이’ 중).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성공에 마침내 다다랐을 때, 우리는 지나온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모두가 미쳐있었고, 후회 없이 뜨거웠으며, 동시에 결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의 모습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Supersonic)’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슈퍼소닉’이 오는 29일 4K 복원판으로 재개봉한다. 영국 한 교외 연습실에서 시작된 인디 록 밴드 ‘오아시스(Oasis)’가 25만 명이 결집한 전설의 넵워스 공연을 성사해 내기까지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중심에는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형제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오아시스는 이들의 불화로 지난 2009년 해체됐고, 15년 만인 지난해에 재결합했다. “아주 개판이었어. 딱 좋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다큐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싸운다. 영화는 오아시스란 밴드가 써낸 역사의 기록이자, 갤러거 형제의 아슬아슬한 애증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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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퍼소닉’은 갤러거 형제와 오아시스 전 멤버들, 그리고 당시의 매니지먼트와 음반사 관계자 등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 내래이션이 그들의 일화와 당시 감정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상은 실제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 기록을 엮어 만들었다. 대부분 면담자가 개인 소장하고 있던 기록물이다. 기록물로 대신하지 못한 일화들은 잡지와 사진 등 다양한 사진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대신했다. 예측 불가능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오아시스의 일화들과 꽤 잘 어울린다.
“나는 헛된 삶을 살곤 했어, 오늘까진 똑같은 삶을 살았지”(오아시스 ‘라이프 인 베인’ 중). 음악과 함께 영화는 영국 맨체스터 외곽 보드워크의 한 연습실을 비춘다. 온갖 상호명에 붙어 있는 ‘오아시스’란 단어에서 영감을 받아, 그냥 그렇게 정말 ‘오아시스’가 돼 버린 밴드가 탄생한 곳이다. 리암이 친구들과 어울려 만든 밴드는 1991년 첫 공연까지 기어이 성사시킨다. 실력은 모자랄지언정 기백은 있던 시절이었다.
오아시스는 리암의 형인 노엘의 합류로 큰 전환점을 맞는다. 노엘이 써낸 곡들은 오아시스의 운명을 완전히 바꾼다. 첫 시작은 ‘리브 포에버’. 오늘날 오아시스의 정체성 그 자체로 묘사되는 곡이다. “왜냐하면 난 단지 날고 싶거든”(오아시스 ‘리브 포에버’ 중). 사이렌같이 곧게 뻗어 가르는 리암의 목소리가 노엘의 곡과 만나 완벽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리암의 보컬로 가득 채운 글라스고의 공연은 앨런 맥기 크리에이션 레코드 대표와의 만남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후에 갤러거 형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럴 줄 알았어. 이런 게 운명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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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은 30분 만에 곡 ‘슈퍼소닉’을 써낸다. 제목 그대로 ‘초고속’으로 썼고, 이들을 초고속으로 주류로 향하게 했다. 정상으로 부는 바람에 갓 올라탄 오아시스는 거침없는 날갯짓으로 빠르게 날아오른다. 그들은 미국과 아시아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다. 그럼에도 노엘과 리암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삶의 일부가 된 마약과 술은 예술의 밑거름인 척 이들의 관계를 조금씩 비틀고, 미묘한 주도권 싸움까지 더해지면서 둘의 관계는 임계점에 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우리는 서로를 믿어”(오아시스 ‘에퀴어스’ 중). 오아시스의 상승세는 1996년 넵워스 공연에서 절정을 맞는다. 당시 영국 국민의 5%인 260만명이 오아시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예매에 뛰어든다. 오아시스는 이틀 동안 25만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한다. 불과 3년 만에 신인 밴드가 로큰롤계의 거인이 된 ‘사건’이자, 인터넷 시절 이전의 마지막 ‘대결집’이다.
영화는 산만하다. 서로 다르게 생긴 아카이브를 이어 붙이다 보니 예측할 수 없이 화면이 흐른다. 갤러거 형제도 여전하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이 둘이 만나니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서스펜션 없이 달리는 기분이다. 종착지는 뻔히 아는데, 가는 길이 험하게 짝이 없다. 술과 마약이 난무하는 한 밴드의 여정은 내레이션과 함께 ‘로큰롤’ 정신으로 대강 포장된다. 여전히 답이 없고, 다시 봐도 광기다. 영화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 시절 오아시스와 혼연일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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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영끌’한 오아시스 결성 초기 공연 장면과 기록들은 유독 반갑다. ‘돈 룩 백 인 앵거’, ‘원더월’ 등 등장만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익숙한 음악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다양한 일화들이 줄지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갤러거 형제가 주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밴드는 두려워하지 않고, 형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음악은 시간이 증명해 줄 거야”. 보드워크 연습실의 한 인디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과 실력을 믿고, 당당히 위를 향해 박차고 나아간다. 한계를 두지 않는 도전과 자신감은 90년대의 시대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결국 전설이 된다. 마치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너도 할 수 있어’는 영화 ‘슈퍼소닉’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약간의 뭉클함과 그리움이 교차한다. 비단 그 시절 오아시스에 대한 것은 아니다. 복제가 난무하는 인터넷 시대의 이전, 진짜가 넘쳐났던 그 시절 낭만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아시스의 음악이 소환시킨, 지금보다는 좀 더 순수하고 진솔했던 그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이다. 9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만난 영화는 그사이 지나버린 세월만큼이나 더 짙은 향수를 자극한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