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이고 싶습니다”…장독에서 피어난 숙수 권우중의 ‘신념’ [미담:味談]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미슐랭 2스타 권숙수, 권우중 셰프 인터뷰
“돈·명예 쫓아 거짓으로 한식 홍내내는 이들”
메주 띄우기부터 모든 장 직원들과 함께 만들어
“한식 문화 즐길 수 있는 ‘권숙수 3.0’ 선보일 것”

권우중 셰프. 인스타그램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나는 진짜이고 싶습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유행이 시키는 대로, 돈이 이끄는 대로, 겉만 번지르르한 외피를 두른 가짜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식 다이닝 권숙수의 권우중 세프는 현재 다이닝 시장이 그러하다며, 그가 목도한 ‘불편한 진실’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가 말하는 가짜란 한식의 근본은 외면한 채, 성공의 도구로만 한식을 이용하는 이들이다. 한류 열풍 속에서 한식은 새로운 미식 장르로 부상하는 한편, 영광과 돈의 냄새가 뒤섞인 수단으로 변모했다. 미슐랭에 이름 하나를 올리기 위해 한식을 만지는 척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을 가감 없이 가짜라 불렀다.

“한식 다이닝에 몇년 째 일을 한 셰프조차 장을 담그는 걸 본 적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 담그는 연출을 찍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을 담근다고 하고는 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있고요. 한식을 해야 해외나 미슐랭으로부터 인정받기 쉽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돈으로 연결되기도 하지요. 문제를 몇번 제기했지만, 그런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평에 위치한 권숙수 조부의 생가에서 장을 담그는 권우중 셰프. 인스타그램

장을 담궈야만 진짜라는 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식의 근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 장을 담그는 방법이나, 정취와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진짜 맛’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거짓말로 또는 눈속임으로 고객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한식은 그래야만 한다고 권우중 셰프는 생각한다.

그는 장을 직접 담근다. 이는 한식을 향한 그의 진심을 증명하는 행위다. 장을 담그는 날이면, 새벽부터 전직원이 함께 가평에 있는 권우중 셰프 조부의 생가로 향한다. 그곳에는 권우중 셰프가 숨겨 놓은 맛의 비밀이 있다. 바로 장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장을 담근다. 한번에 띄우는 메주의 양만 약 80장에 달한다. 그 메주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의 튼튼한 뿌리가 된다.

권우중 셰프가 담근 된장. 인스타그램

직접 담근 장의 맛은 공산품과 비교가 불가하다. 그의 어육된장·간장에는 봄 바람에 말린 민어와, 한우, 꿩, 토종닭, 표고버섯, 다시마, 꿀 등 다채로운 재료가 들어간다. 시판 조미료 특유의 날카로운 맛은 없으면서 폭발적 풍미로 고급스러운 감칠맛을 낸다.

“장을 직접 담근 이유는, 거짓으로 한식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사회에 아무리 거짓이 난무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거짓으로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짜 반찬이 아닌 요리로서의 김치

권숙수에서 제공되는 김치들. 인스타그램

진짜를 추구하는 권우중 셰프의 철학은 김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권숙수에서는 제철 식재료에 맞춰 1년에 30종의 김치를 만든다. ‘전어김치’, ‘꿩김치’, ‘겹김치’, ‘재피파김치’ 등 한평생 들어본적 없는 새로운 김치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권우중 셰프가 창작한 김치들이다. 한식 다이닝이라면 당연하듯 김치를 담그지만, 이토록 많은 김치를 만드는 곳은 단연코 없다.

가장 많은 손님이 사랑하는 권숙수의 시그니처 김치인 겹김치는 하나의 요리로도 손색이 없다. 양지머리 육수에 숙성시킨 알배추 속에 전복과 대하, 소고기를 채워 2차로 숙성한 김치다. 입 안을 개운하게 채우면서, 다양한 속재료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깔끔한 맛에 고기요리를 먹기 전 코스로 훌륭하다.

권우중 셰프와 함께 장을 담그는 직원들. 인스타그램

그는 이처럼 김치가 돈 주고 사먹어도 아깝지 않을, 근사한 요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치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오히려 공짜 반찬의 하나로 치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 묻습니다.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디냐’고요. 누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를 맛있게 먹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그저 공짜로 나오는 반찬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품질과 관계 없이 가격만 따지게 됩니다. 중국의 값싼 김치가 외식업계를 장악한 이유입니다. 김치를 돈 주고 사먹을 수 있을 수준의 요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김치 종주국으로서 차별화를 이룰 수 있고, 김치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더 성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에서 창의가 나온다…권우중 셰프가 해삼 3000만원어치를 산 이유

제철 함안 수박으로 만든 디저트. 인스타그램

권숙수 셰프의 요리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식재료다. 모든 다이닝 셰프들이 그렇듯 그 역시 최상급 식재료를 쓴다. 특별한 게 있다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식재료들이 그의 요리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이꽃버섯이 있다. 가을 산기슭 낙엽 밑에서 자라는 작은 버섯으로, 채취가 힘들어 아는 사람들만 조금씩 먹는 버섯이었다고 한다. 간곡한 요청으로 오이꽃버섯 유통망을 뚫어 식재료로 사용했다. 까치버섯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트러플로 불리는 까치버섯은 특유의 훈연과 같은 스모크한 향이 특징이다. 이런 특별한 이색 토종 재료들이 가의 요리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제주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요리. 인스타그램

그는 식재료를 살 때 통이 크기로도 유명하다. 건조 해삼 3000만원 어치를 한 번에 살 때도 있고, 버섯만 1000만원 어치를 사기도 한다. 그렇게 대량으로 식재료를 사야 새로운 요리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속에서 창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고 나면, 이 식재료를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요리에 대한 창작의 고뇌가 시작됩니다. 저는 먼저 머리 속에 나오는대로 요리를 해보고, 구체적인 설계를 하는 편입니다. 새롭게 만든 요리는 직원들에게 1주일 동안 완벽한 수준으로 연습을 시킵니다. 디테일을 잡아가는 거죠. 매 시즌마다 30%의 메뉴를 새롭게 개편하고 있습니다.”

‘권숙수 4.0’, 한식의 맛과 문화 경험하는 복합 공간으로

권우중 셰프. 인스타그램

권우중 셰프는 이북 요리 전문점을 운영한 외조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한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일찍이 요리사로 진로를 택하고 경희대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과 뉴욕 등에서 헤드셰프로 일하며 세계 최정상의 미식 문화를 경험했다. 그 곳에서 그는 한식의 미래를 고민했다고 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급 한식을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습니다. 궁궐에서 즐기던 ‘진귀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궁중요리사 ‘숙수’를 식당 이름으로 내걸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한식은 전통 한식 기법에 근간을 따르면서, 현재의 한국인이 즐기는, 한국에서 나오는 식재료로 만든 요리다. 전통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현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기도 한다. 문화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흐르며 진화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저희는 트러플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나오는 식재료만 고집합니다. 캐비어도 국산을 쓰고요. 한식의 조리법을 따르지만, 요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조합하려 합니다. 과거의 궁중요리 역시 시대에 따라, 왕의 기호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왔습니다. 개성과 창의는 미식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권숙수에서 나오는 요리들. 인스타그램

권숙수는 2017년 미슐랭 2스타에 오른 이후 올해까지 9년째 유지하고 있다. 아시안 베스트 레스토랑에도 이름을 올리며, ‘세계가 인정한 한식’이라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요리를 넘어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권숙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권숙수 안에서 한식을 즐기 관련 문화를 즐기는 복합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의 권숙수는 2.5 버전입니다. 몇년 안에 3.0 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스토랑 안에 장독이 있고 그 장들의 테이스팅하고 장 문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동시에 그 장으로 만든 미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 후에 계획하고 있는 4.0 버전은 자체 농장을 가지고 순환 사이클을 가진 레스토랑입니다. 식재료 생산부터 시작해 미식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해내는 곳 말입니다. 권숙수의 미래를 그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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