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끌어올렸던 라덕연 형량 확 줄었다…25년→8년, ‘빚투’ 활용 무죄 뒤집혔다 [세상&]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전 호안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항소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부터 4년간 8개 주식 매집
CFD 계좌 활용해 규모 키웠지만
자본시장법 규정 없어 무죄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시세를 조종하고 7000억원이 넘는 폭락 사태를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라덕연(44) 호안투자자문 대표가 항소심에서 대폭 감형 받았다. 라 씨 일당은 원금 이상의 투자를 할 수 있는 CFD(차액결제거래)계좌를 활용해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해당 계좌를 활용한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다.

2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부장 이승한)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라 씨에게 징역 8년 및 1465억 1000만원의 벌금, 1815억 5800만원 추징을 선고했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라 씨에게 징역 25년과 벌금 1465억, 추징금 1944억여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시세조종 범행은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돼야 할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작해 공정한 가격 형성을 방해하고 시장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범행”이라며 “피고인들의 시세 조종으로 인한 주가의 왜곡 정도, 매매에 유인된 일반 투자자 규모가 막대하다. 장기간 큰 폭으로 부양된 주가가 한순간에 폭락하면서 다수의 선량한 투자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했다.

라 씨는 2019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삼천리, 다우데이터 등 8개 상장기업의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기소됐다. 2023년 4월 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사에서 나온 대량 매도 물량이 기폭제가 돼 8개 기업의 주가가 폭락해 ‘SG발 주가 폭락 사태’로 불린다. 해당 기업들은 라 씨 일당이 수년간 통정매매·고가매수·물량소진 등 방법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라 씨 일당이 시세 조종을 통해 7800억원의 이득을 봤다고 판단했다.

라 씨는 재무상태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장기매수하는 전략을 사용했을 뿐 시세 조종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조직원들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게 라 씨로부터 주가부양 및 종가관리 지시가 이루어졌다고 진술한다. 라 씨는 투자설명회에서 스스로 ‘가격을 좌지우지한다’, ‘제가 가격 올립니다’라고 발언하는 등 시세조종의 목적과 고의를 명백히 외부로 표출했다”고 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주가 조작 혐의가 인정됐지만 형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에서 인정된 시세 조종 행위의 3분의 1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통정매매 320만 914주, 고가매수 1572만 9424주 등 총 3037만 188주에 대해 시세 조종 행위가 이뤄졌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071만 4571주에 대해서만 시세 조종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시세조종 횟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라 씨 일당 주가 조작 수법의 핵심인 ‘CFD 계좌’ 활용에 대한 판단이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CFD란 주식 등 실제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 가능한 ‘장외파생상품’이다. 라 씨 일당은 최대 2.5배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하고 외국계 증권사가 끼는 계약 구조상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아 사실상 익명으로 거래가 이뤄졌다는 점을 노렸다.

‘빚투’가 가능한 CFD 특성상 라 씨 일당이 모은 투자금에 비해 더 큰 규모로 시세 조종이 가능했고, 주가가 하락하자 반대매매가 발생하면서 연쇄적으로 주가 하락폭을 키웠다.

항소심 재판부는 CFD는 ‘장외파생상품’으로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시세조종 행위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 제176조 등에 따르면 시세조종 대상은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 또는 위탁·수탁’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라덕연 조직이 CFD 계좌를 이용해 다수 주문을 했고 상당수가 실제로 주식시장에 제출돼 시가에 영향을 미치는데 활용됐다”면서도 “자본시장법은 증권, 장내파생상품, 장외파생상품을 명시적으로 구별해 규율한다. CFD 계좌를 이용한 거래 주문을 시세조종으로 보는 것은 형벌법규의 의미를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유추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본시장법 상 처벌 규정이 없어 유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CFD 계좌가 아닌 일반 위탁계좌를 이용한 주문의 시세조종성 주문 여부나 시세조종의 목적 및 고의 판단에 CFD 계좌를 이용한 거래의 횟수, 주식 수, 주문 태양 등을 ‘간접사실’로 고려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시세조종 행위에 사용됐다고 판단한 계좌의 일부가 라 씨 일당이 관여한 계좌가 아니라는 주장도 일부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라 씨 일당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하락에는 책임이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부분 피고인이 2023년 4월 24일자 주가 폭락 사태로 투자수익을 모두 상실했고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게 됐다”며 “피고인들이 주가 폭락을 예견하지 못했음은 물론 피고인들이 폭락을 직접적으로 유발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가 폭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시세조종 이익이 누구에게 귀속됐는지는 현재까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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