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정보로 씬파일러 대출문턱↓
카뱅, 플랫폼 스코어로 ‘포용금융’
소상공인 상환 가늠 플랫폼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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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체계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취약 계층을 위한 포용금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안신용평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통신·유통·도서 소비 정보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신용을 평가하는 ‘대안신용평가’가 본격 활용되면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한 취약금융계층 접근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은행도 최근 대안 신용평가 모델에 11종의 대안정보를 포함하는 등 고도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소매ML(머신러닝)모형 3.0 고도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과 협업해 현재 운영 중인 신용평가 모형을 고도화하는 사업이다.
하나은행은 앞서 ‘신용평가모델 고도화 사업 2.0’을 통해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모형성능 제고 ▷자산증대 효과 ▷건전성 관리 강화 ▷영업점 내점이 어려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채널 활성화 등을 적용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급변하는 금융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SKT·KT·LG유플러스(통신)과 신세계·롯데(유통), 교보문고·예스24(도서) 등 국내 13개 대안정보기관의 약 11종의 정보를 활용해 비금융 정보를 대폭 보강했다. 하나은행은 이 모집단을 토대로 현재 소상공인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해 내년 상반기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고도화 3.0 체계로 신용평가의 정확도와 변별력을 대폭 높이고 상품과 심사, 리스크 관리 전 영역을 정교하게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은행이 신용평가 체계에 대안정보를 확대하는 것은 신용평가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과 같은 금융정보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개인의 신용도를 비금융정보로 보완해 신용평가 체계를 보다 적확하게 운영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부나 학생 등 금융 거래 정보가 적어 실제 상환능력에 비해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씬 파일러(Thin filer)’들이 보다 적절한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도 차주의 리스크와 건전성을 한결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대안신용평가는 정보 부족으로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보다 낮은 금리의 맞춤형 대출 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포용금융’과도 맞닿아 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자체 대안신용평가모델 ‘카카오뱅크 플랫폼 스코어’를 적용한 뒤 기존 신용평가 모델에서는 거절됐던 중·저신용대출의 13%(약 1조원)가 추가로 승인됐다. 인공지능(AI) 기술금융사 PFCT가 통신3사 정보를 AI 신용평가 모델에 접목한 결과 현재 씬 파일러의 신용 악순환이 약 45% 개선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계급론’을 언급한 것은 저소득자 금리를 좀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좀 찾아보자는 차원으로 해석된다”며 “그런 측면에서 대안신용평가를 고도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신 데이터는 최근 금융권에서 주목하는 대안신용평가의 핵심 지표다. 이용 행태에 통신 자체의 정량 데이터를 결합하면 생활 안정성, 소비 규칙성, 응답 신뢰도 등을 가늠할 수 있다.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량같이 사소해 보이는 정보도 신용평가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충전량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경우 생활 리듬이 안정적이고 계획적 행동 성향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충전량이 불규칙하게 변하면 생활 패턴이 불안정한 가능성이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종합 신용평가사 한국평가데이터(KODATA)는 재무제표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소기업·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데이터 기반 평가모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기·가스·수도·통신·보험 등 필수생활비 자동이체 항목에서 잔액 부족으로 출금이 발생한 횟수, 그 반복 주기 등을 주요 지표로 분석해 사업주의 자금 관리 능력과 재무 규율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시중은행도 자체적으로 대안신용평가를 고도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씬 파일러 고객 대상 전용 상품인 ‘KB 처음EASY 대출’을 운영하고 있다. CB스코어 등 비금융 정보와 통신비 미납 등 외부 통신정보를 대출 상품에 활용한다. 신한은행은 최근 상생형 공공배달 플랫폼 ‘땡겨요’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만들었다. 땡겨요의 주문 정보, 고객 반응 정보, 마케팅 활동 정보 등을 신규 대안 정보로 활용한 선순환 신용평가 체계다. 우리은행도 비대면 전용상품에 대안신용평가 모형을 활용하고 있다. 사회초년생이나 저신용자 평가에 유용한 소액결제정보, 통신정보 등을 활용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도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안신용평가는 커버리지(범위)나 정확성, 그리고 어떤 정보를 공급하고, 그 정보를 어떤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해야 하는지 등 복잡한 이슈가 있다”며 “대안신용평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는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증 과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흥노 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신용평가에 쓰이는 모든 사용자 데이터를 일관되게 확보하고 대안 정보를 사용할 경우에는 적절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저신용자, 소상공인의 상환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공동 플랫폼을 육성하자는 제언도 나왔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는 “대안신용평가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데이터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개별 기업이나 플랫폼이 각자 데이터를 모으기 어려운 구조라면, 사회적으로 또는 공공적으로 데이터 확보가 쉽도록 인센티브나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벼리·김은희·유혜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