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온 유니콘 절반이 클라우드·AI 기업…“실리콘밸리 같은 혁신거점도시 만들어야”

대한상의 “글로벌 경쟁 치열한 AI 스타트업 육성 시급”
美 실리콘밸리서 유니콘 절반 나오는데 韓은 특구 난립
이스라엘은 정부 주도 벤처 투자·인재 양성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글로벌 유니콘 기업 생태계는 AI(인공지능) 산업이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유니콘들은 다소 유통 분야에 집중돼 이같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글로벌 최대 벤처 시장을 보유한 미국이나, 유니콘 중 AI 기업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 사례를 보면 정부 주도의 기업 지원과 인재 양성이 두드러진다. 이에 우리도 이들 나라에 대한 벤치마킹을 포함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올해 유니콘 등극 절반이 AI 기업


3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분석한 글로벌 시장분석기관 CB Insight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새롭게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전 세계 83개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6개는 클라우드·AI 관련 기업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오픈AI 최고 기술책임자(CTO) 출신인 미라 무라티가 설립한 ‘싱킹머신즈’가 있다. 대형언어모델(LLM) 자동 생성 서비스 등을 출시해 최근 20억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잘 알려진 곳이다. 딥마인드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해 최근 프론티어 오픈 소스 모델 출시를 예고한 ‘리플렉션 AI’도 올해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이를 포함, 미국에서 올해 배출한 유니콘 기업은 58개에 달했다. 이밖에 영국과 중국이 각각 3개, 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인도·독일·아일랜드가 각각 2개였다. 한국은 1개 배출에 그쳤다.

전체 유니콘 기업 현황을 봐도 AI 분야가 두드러졌다. 유니콘 기업을 많이 보유한 상위 10개국은 ‘클라우드·AI’ 분야가 36.3%로 가장 많았다. 반면 한국은 ‘소비재·유통’ 분야가 46.1%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대한상의는 “첨단전략산업 분야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AI 유망 스타트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美 실리콘밸리에만 유니콘 325개…“혁신거점 도시 육성해야”


미국 실리콘밸리 전경. [헤럴드DB]


대한상의는 AI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혁신거점 도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미국 실리콘밸리다. 실제로 미국 유니콘 기업 절반에 해당하는 325개 기업이 실리콘밸리 인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 베이지역 의회경제연구소의 션 랜돌프 이사는 지난 10월 대한상의가 주최한 세미나를 찾아 “활발한 산학협력,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다양한 인재들과 네트워크가 맞물려 혁신이 발생한다”며 “이에 투자자들도 모여들며 혁신이 더욱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에서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도시 역할을 하는 ‘특별행정구(특구)’ 제도는 기술 개발보단 지역 개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특구도 난립하는 경향이 크다.

특구 지정 후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올해 기준 129개 지역에서 특구 제도가 운영 중이며 누적 지정 건수는 1980년에 달하지만, 이중 39곳이 ‘유령’ 특구로 방치되고 있다. 최해옥 STEPI 연구위원은 “특구가 단순한 지역개발 수단이 아닌 전략적인 혁신거점으로 거듭나도록 정책의 실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운영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정부가 VC 설립, 軍에서 전 국민 IT 교육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적으면서 더 많은 유니콘을 배출한 이스라엘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정부 주도 스타트업 지원이 더 활성화돼 있다. 이스라엘은 1993년 정부 주도로 설립한 벤처캐피털(VC) 요즈마(YOZMA) 펀드를 통해 민간 및 해외 VC를 끌어들여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후 일정 시점이 지나면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는 모델이 정착돼 있다. 이스라엘은 GDP(국내총생산) 순위가 27위로 한국(15위)보다 낮지만, 유니콘 기업은 23개로 한국의 2배를 넘는다.

이스라엘은 이공계 인재 양성 역시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비슷한 정보 부대 ‘8200부대’에서 대부분의 이공계 인재를 배출한다. 이스라엘은 전 국민에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최신 IT 기술을 익히고 이들이 민간에 진출한다.

이스라엘은 특히 올해 유니콘 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5월 구글 모기업 알파벳이 320억달러에 인수한 ‘위즈’, 7월 팰로앨토네트웍스가 250억달러에 인수한 ‘사이버아크’ 모두 8200부대 출신이 창업한 회사다. 이스라엘은 유니콘 기업 중 AI 기업이 65.2%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반면 국내에선 이공계 인재 대부분이 일자리가 없어 ‘하향 취업’을 하는 게 현실이다. STEPI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박사인력 고용률은 84.5%였는데, 이중 박사학위에 맞는 일자리에 취업한 비중은 45.4%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대학(38.2%), 공공연구소(7.7%) 등 일자리가 대부분으로 민간 기업에 취업한 사례는 적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부족과 함께 이공계 인재들에 대한 열악한 성과 보상 체계 역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국내 이공계 인력 임금체계는 여전히 근속연수 중심의 획일적 연공형 구조가 지배적”이라며 “경력·성과·시장가치에 따라 보상이 유연하게 조정되는 구조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만의 노력으로 이끌어 가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는 인적자본 축적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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