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직접 사태수습 의지 표명
박대준 전 대표 전격 사임 수습
“김범석 구하기 연장선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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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 |
3370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의 박대준 대표가 전격 사임했다. 유출 사태 이후 부실 사과 논란, 탈퇴 방해·불공정 약관 변경 논란 등이 연달아 불거지며 사실상 수습에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쿠팡의 임시대표에는 본사인 미국 쿠팡Inc.의 해롤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이 임명됐다. 본사가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가운데, 일각에선 ‘김범석 구하기’의 연장선이란 해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1977년생인 로저스 임시대표는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의 하버드대 동문이자 그룹 내 ‘2인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항소법원 재판연구원, 현지 대형 로펌 시들리 오스틴의 파트너 변호사, 글로벌 통신사 밀리콤의 최고윤리준법책임자를 거쳐 2020년 1월 쿠팡에 합류했다.
현지 법률·준법 경영 분야의 전문가인 로저스 임시대표 선임은 쿠팡이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본사가 사태 수습에 직접 뛰어들면서 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로저스 임시대표는 임명 직후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이번 사태를 철저히 대응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보안을 강화하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직을 안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팀을 지원하는 데에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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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지난달 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알려진 뒤 후속 대응에 실패하며 사면초가에 처했다. 지난 9~10일 이틀 연속 송파구 본사 등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쿠팡 보안 체계 허점 등을 살펴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의 복잡한 탈퇴 절차와 면책 약관 변경 문제와 관련해 전날 본사 현장조사를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경위와 소비자 피해구제 방안과 관련해 오는 17일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도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연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박 전 대표가 이번 사태 수습을 끝까지 책임질 것으로 내다봤으나,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면서 사임이 불가피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 전 대표는 전날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했는데, 사실상 경질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로저스 신임대표 선임을 놓고 “김범석 의장은 끝까지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란 말이 나온다. 한 이커머스 관계자는 “(김 의장) 자신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아닌 현지 법인 사람을 내보냈다는 건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뜻”이라며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 대신 전문가를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시그널”이라고 해석했다.
정치권에서도 “과거 ‘검은 머리 한국인(김범석 의장)’을 강조하며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던 쿠팡이 이젠 노골적으로 미국인을 앉히면서 ‘한국 기업이 아니다’란 메시지를 내고 있다(과방위 의원실 관계자)”는 지적이 나왔다. 로저스 임시대표는 17일 국회 청문회에서 박 전 대표와 함께 추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새로운 임시대표 선임이 국내 이용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는 반응도 감지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김범석 의장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보상안은 물론, 정확한 향후 대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단순히 대표를 교체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하버드대 동문이자 그룹 내 2인자가 나선 만큼 쿠팡의 ‘김범석 구하기’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목소리가 크다”면서 “외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역을 거치면서 의사 전달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미국에서 벌어질 집단 소송을 대비한 결정이란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대국민 사과와 같은 정서적 접근이 아닌, 본사의 리스크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워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특히 미국에서 주가 폭락으로 인한 주주들의 소송 움직임에도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사태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국계 이커머스(C-커머스)에 불똥이 튀면서 업체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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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 |
이날 데이터 테크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C-커머스의 대표격인 알리의 일간활성이용자(DAU) 수는 159만707명으로 집계됐다. 쿠팡의 대규모 유출 사실 발표일(11월29일) 이전인 지난 달 26~28일 일평균 이용자 170만명대보다 10만명 이상 줄어든 수치다. 알리는 이용자 수 기준 쿠팡에 이은 2위를 유지해 왔다. 반면 테무의 7일 DAU는 141만578명에 이르렀다. 지난달 26~28일 평균 130만대 중반보다도 50만명 안팎 더 늘어난 것이다.
7일 기준 쿠팡의 DAU는 1610만3500명으로 전날(1594만746명)보다 16만명가량 늘었다. 지난 2일부터 닷새 연속 이어진 감소세를 멈추고 엿새 만에 증가한 것이다. 다만 역대 최대 DAU를 기록한 1일(1798만8845명)에 비해 188만명가량 적은 수치다. 1일 수치가 급증한 이유를 두고 업계에선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공지를 확인하려는 방문자가 일시적으로 늘었다는 시각이 있다.
앞으로 쿠팡의 이탈이 주춤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태 초기 탈퇴를 결심한 일부가 계정을 해지하며 실행에 옮겼고, 이후 이탈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2월 쇼핑 대목이 다가온 데다, 쿠팡의 새벽배송 대체재를 찾지 못한 소비자들이 다시 쿠팡으로 돌아올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김진·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