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E등급만으로 해임은 위법” 김영중 前 고용정보원장 1심 승소

재임 7개월 성과에 1년 책임 묻는 건 ‘책임주의 위반’
워크넷 해킹·예산 구조 탓 점수 왜곡…직무 해태 보기 어렵다
2024년엔 C등급 회복…“공은 인정 안 하고 책임만 묻는 건 무리”
노동부, 1심 판결 불복해 항소…상급심서 법리 다툼 전망


한국고용정보원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서울행정법원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E등급’을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단행한 한국고용정보원장 해임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E등급’만을 근거로 기관장을 해임한 첫 사례에 대한 법원의 첫 위법 판단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이상덕)는 지난달 27일 김영중 전 고용정보원장이 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고용정보원의 부진한 경영실적이 김 전 원장의 충실의무 위반이나 직무 해태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단순히 경영실적 평가 결과가 부진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기관장을 해임할 수는 없다”며 공공기관운영법이 정한 ‘충실의무 위반’이나 ‘직무 해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전 원장은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출신으로, 2023년 5월 30일 한국고용정보원장에 취임했다. 원장 임기는 3년이다. 그러나 2023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으면서, 2024년 7월 30일 당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 의해 해임됐다.

재임 7개월 성과에 1년 책임…책임주의 원칙 위반


법원이 가장 문제 삼은 대목은 재임 기간과 평가 대상 기간의 불일치였다.

김 전 원장은 2023년 5월 30일 취임했지만, 문제 된 2023년도 경영실적 평가는 1~12월 전체 12개월을 대상으로 했다. 이 가운데 김 전 원장의 실제 재임 기간은 7개월에 불과하다.

재판부는 “2023년도 전체 평가 결과를 원고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임기 중 경영성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 공공기관운영법에도 배치된다”고 판시했다.

노동부가 핵심 해임 사유로 든 ‘워크넷 해킹 사고’ 역시 김 전 원장의 직무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고용정보원은 2023년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해킹으로 약 23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이로 인해 ‘보안 무사고 달성 노력’ 항목에서 총점 기준 1점이 감점돼 E등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킹 사고는 김 전 원장이 취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발생한 사고”라며 “이와 같은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원고의 직무 수행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워크넷 해킹·예산 구조 탓 점수 왜곡…전적인 책임 묻기 어렵다


법원은 또 일반관리비 관리, 효율성 관리 등 계량항목 점수 급락 역시 김 전 원장의 방만 경영 때문이 아니라, 예산 구조 자체의 변화에 따른 산식 왜곡 영향이 컸다고 판단했다.

2022년 ‘고용24’ 플랫폼 구축으로 예산이 1310억원까지 일시적으로 늘었다가 2023년 1240억원으로 줄면서, 점수 기준치가 급격히 높아져 계량 점수가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는 원고의 방만한 경영이 아니라 전년도 예산 급증 이후 감소라는 외부적 구조 요인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 해임 이후 고용정보원은 비상경영 TF 체제로 운영됐고, 2024년도 경영실적 평가는 C등급(보통)으로 회복됐다. 김 전 원장이 2024년에도 약 6개월가량 재임했던 점을 고려하면, 일정 부분 성과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2023년 경영평가의 책임은 원고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고, 2024년 경영평가의 공은 원고가 가져갈 수 없다는 노동부 논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김영중 전 원장은 “해임 처분에 대한 아쉬움과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을 바로 잡고 싶어 소송을 진행했다”며 “먼저 해임 처분으로부터 명예 회복을 할 수 있게 해준 1심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리며, 이번 판결이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부는 이번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기관장의 경영책임 범위와 해임 요건에 대해 상급심의 법리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항소심 결과에 따라 향후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근거로 한 기관장 해임 기준과 정부의 인사·평가 권한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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