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토막을 안은 여인의 사연은?
①개인 ②국가 ③국민 해석 ‘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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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그 메를, 에트르타의 루나틱, 1871, 캔버스에 유채, 92x71cm, 아르노 미술관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그녀가 안고 있는 건, 나무토막.
여인은 온전한 사고를 하기 힘들어보인다. 부스스한 머리칼은 아무렇게나 휘날린다. 이로 뜯었는지, 가지에 뜯겼는지 모를 옷소매는 애처로울 만큼 너덜거린다. 두 눈은 며칠 밤을 새운 듯 부었다. 팔다리는 벌써 몇 끼를 거른 흔적처럼 여위었다. 그럼에도 긴장을 풀 수 없는지 발목에는 힘을 주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면 곧장 뛰쳐나갈 수 있도록. 여인이 걸터앉은 곳은 우물. 옆에는 밧줄이 걸렸고, 뒤로는 나무가 한없이 깔렸다. 어수선한 풍경에, 으스스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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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그 메를, 에트르타의 루나틱, 1871, 캔버스에 유채, 92x71cm, 아르노 미술관 |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도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아기’다.
빨간색 모자를 씌운, 연갈색 담요로 정성껏 감싼 아기는… 이미 보이는 대로, 아기가 아니다. 딱딱하게 식은 나무토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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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그 메를, 에트르타의 루나틱(일부 확대), 1871, 캔버스에 유채, 92x71cm, 아르노 미술관 |
그녀는 무슨 일을 겪었을까.
여인은 얼마 전 아이를 잃었을까. 아마 질병으로, 아니면 이보다 더 나쁜 일로.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이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낳은 아이는 아직 내 품에 있는데. 그녀는 동네 사람들의 설득과 회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거리의 여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은 인간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시련은 단련이 아닌 심신을 깨뜨리고 만다. 적어도 그녀에게만은, 신이 너무도 성급했던 건 아니었을지.
프랑스 화가 위그 메를의 <에트르타의 루나틱>.
이 그림에 대해선 인간적인 해석 아닌, 보다 ‘정치적인’ 해석 또한 있긴 하다. 1871년. 누군가는 그림이 그려진 연도에 주목한다.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벌인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해다. 알자스-로렌 지방을 잃고, 50억 프랑의 전쟁 보상금도 내야 한 굴욕의 시기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잡지 하스타(HASTA·미술사학과 산하)는 작품 속 그녀가 국가 프랑스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러니까, 분노로 가득한 여인의 모습 자체가 당시의 상처 입은 프랑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국기, 빨간 모자는 피와 복수, 소중하게 안고 있는 아기는 빼앗긴 알자스-로렌 지방을 뜻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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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그 메를, 주홍글씨, 1861, 캔버스에 유채, 99.9×81.1cm, 월터스 미술관 |
끝으로, 여인은 그 시절 포화 속에서 터전을 잃은 국민을 뜻한다는 말도 있다.
전쟁 패배, 프랑스 제2제국의 몰락, 파리코뮌의 등장과 진압, 이런 상황에서 수시로 벌어진 민중 학살. 광기가 광기를 집어삼키는 사회였던 만큼, 국민 또한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다는 점을 묘사했다는 식이다. 메를은 이 그림을 두고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해석은 시대의 몫이다. 다만 확실한 건 좁게 해석해도, 넓게 분석해도… 작품은 많은 이의 발걸음을, 그저 오랜 시간 멈추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