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즐겨 듣던 소년 작곡가, 지휘자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서다 [인터뷰]

새해부터 지휘자로서 무대에 올라
철저한 곡 분석…포디움 위에선 ‘직관’
“구축한 시스템서 연주자 뛰어놀게 해”


2021년 KNSO국제지휘콩쿠르 2위,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은 뒤 세계 무대가 앞다퉈 찾고 있는 지휘자 윤한결 [대원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고추잠자리’는 ‘A-B-A-B-A-B’가 무한 반복되는 코다(Coda) 구조를 갖췄는데, A 도입부가 나올 때마다 환호하던 관객들이 조용해져요. 이 음악의 이상한 힘이더라고요.”

소년의 손가락은 건반을 치듯 ‘미-레#-미-파-파-미-파-솔-시-시-솔#-라’를 더듬거렸을지도 모른다. 바흐의 인벤션도 체르니의 연습곡도 아닌, 가왕 조용필의 ‘고추잠자리’(1981). 1994년생인 소년 윤한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때만 해도 ‘가왕’이 ‘가왕’인지도 몰랐지만, 그의 머릿속엔 음악의 형식과 관객의 반응이 강렬하게 각인됐다.

파격과 혁신을 입은 대중음악과 ‘지휘 거장’ 카라얀을 넘나들며 소년은 ‘오늘의 클래식’을 대표하는 MZ(밀레니얼+Z)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세계 무대에 서게 됐다. 2021년 국립심포니오케트라가 연 제1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를 한 뒤,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은 뒤 그는 한국과 유럽, 북미를 오가며 연간 20여개의 포디움에 서고 있다.

지난달 그는 15년 만에 새해의 한국 땅을 밟았다. 고등학교 때 유학을 떠난 이후 1월에 한국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한국은 자주 오지만 새해에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서울이 독일이나 몬트리올보다 춥다”며 웃었다.

아드레날린의 폭발…독일과 캐나다, 두 번의 대타


“정교하게 조각된 음악.” (바흐트랙, 윤한결이 지휘한 몬트리올심포니 1월 공연 리뷰 중)

리허설 이틀 전이었다.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로부터 급박한 연락이 왔다. 지휘자 로빈 티차티의 연주를 대신해달라는 것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이었다.

그에겐 ‘데자뷔’였다. 지난해 3월 독일 하노버 국립 오케스트라에서도 이 곡으로 갑작스럽게 ‘대타’로 섰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에 리허설 하루 전날 밤, 부랴부랴 악보를 사서 공부하고, 몇 시간 동안 반복해서 수많은 음반을 귀에 세뇌될 정도로 들은 뒤 나만의 아이디어를 넣는 작업을 했다”고 회상했다.

지휘자 윤한결 [대원문화재단 제공]


이미 큰 산을 넘어봤던 터라, 갑작스레 찾아온 큰 무대에도 그는 즐거웠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거대한 압박감이 오히려 아드레날린으로 폭발하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음악의 폭발력은 현지 관객과 평단도 사로잡았다. 바흐트랙은 “마지막 순간에 투입된 구원자에게 실망한 관객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윤한결에게 두 번의 경험이 흥미로웠던 것은 독일과 북미 악단의 차이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두 공연에서 그는 ‘같은 곡’도 구동되는 ‘환경’(오케스트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최상의 출력’을 뽑아내는 설계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은 이 악기가 나왔다 저 악기가 나왔다 하면서 좀 중구난방이고, ‘교향적 무곡’의 습작 같은 느낌이 있다”며 “하노버 국립 오케스트라와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땐 독일 악단 특유의 묵직하고 구조적인 소리로 현대음악 같은 느낌이었다면 몬트리올에선 영화음악 같은 통일감을 갖고 하나의 흐름으로 쓱 흘러갔다”고 말했다. 더 마음에 들었던 음악은 몬트리올 심포니와의 공연이다.

‘고추잠자리’ 분석하던 소년…지휘자 아내와 나란히 성장


윤한결은 성장 과정만 보면 ‘클래식계의 이단아’라 할 만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트로트가 나오면 그렇게도 울던 아이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눈물을 멈추고 눈에 빛을 냈다. 조용필과 퀸,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명반을 섭렵하고, 게임왕으로 등극할 만큼 프로 못잖은 취미를 가졌다. 한국의 엄격한 교육 시스템, 경쟁 사회가 맞지 않아 일찌감치 유학을 떠난 스토리 역시 음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소년 시절 윤한결에게 조용필과 퀸은 ‘록 음악계의 베토벤과 슈베르트’였다. ‘고추잠자리’와 ‘태양의 눈’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과 자극이었다고 한다. 윤한결은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넣은 파격, 현악사중주가 낭만음악을 일으키는 진보를 만들 것처럼 퀸은 록과 오페라를, 조용필 선생님은 록과 국악, 오페라를 더하는 새로운 시도가 너무나 와닿았다”고 말했다.

대구를 떠나 예원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을 땐, 조용필의 ‘꿈’을 가슴에 품었다. 특히나 ‘꿈’은 그의 서울살이를 빼닮은 정서였다.

“이렇게 간단한 화성과 가사가 왜 이렇게 슬플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 중간에 B 대신 B플랫이, C 메이저인데 C#을 썼구나 분석하기도 했어요.”

2021년 KNSO국제지휘콩쿠르 2위, 202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은 뒤 세계 무대가 앞다퉈 찾고 있는 지휘자 윤한결 [대원문화재단 제공]


조용필과 퀸의 음악을 분석하던 소년의 이름이 먼저 알려진 것은 작곡을 하면서였다. 예원학교 시절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는 ‘웃음 포인트’다.

대구에서 상경해 예원학교를 다니던 1학년 때였다. 당시 그는 작곡 전공생이었기에 과제로 자신의 곡을 발표해야 하는 열세 살 소년이었다. 친구들이 “성진이가 제일 잘 치니, 피아노곡은 성진이한테 주면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윤한결은 이름을 잘못 듣고 다른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자기 곡의 발표를 맡겼다.

조성진 역시 당연히 자신에게 곡을 주리라 생각했기에 내심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 뒤로 농담처럼 네 곡은 안 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20대 때엔 성진이와 함께 연주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도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성진이는 너무 잘하는 피아니스트이니, 제가 더 빨리 도달해야죠.”

그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은 작곡한 음악에서도 묻어난다. 힙합 음악을 접목한 ‘그라운드 힙합’은 물론 지난해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한 ‘그리움’과 포항국제음악제에서 선보인 ‘별신굿’ 등을 통해 음악적 포용과 다양성을 보여줬다. 그는 “나의 곡을 지휘하는 것은 나체로 무대에 선 기분이다. 고통스러웠던 작곡 과정을 낱낱이 보여드리는 느낌”이라며 “내가 좋은 작곡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주하기 복잡한 곡을 쓰는 작곡가이긴 하다. 그래도 지휘를 해보니 원하는 이상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한국의 리듬이다.

작곡을 하다 지휘의 길을 걷게 되며 만난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는 아내 남으리다. 2020년 1월 처음 만나, 3년 뒤 백년가약을 맺은 두 사람은 나란히 지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성격과 성향은 정반대다. 활동적인 윤한결과 달리 ‘집순이’ 타입의 아내는 엄청난 집중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어간다.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성장하는 최고의 조력자이자 지지자다. 언제 어디서든 치열한 음악 토론이 오가니, 음악이 아닌 곳이 없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점들을 봐주는 사람이자,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이정표가 될 만한 조언을 많이 해준다”고 했다.

사실 독일 유학 시절, 졸업 이후 극장의 상주 지휘자로 취업하려 했던 윤한결을 ‘콩쿠르의 세계’로 이끌어 자유로운 음악가로 밀어준 것도 아내였다. 윤한결의 지금에 아내 남으리가 있었다면, 아내의 내일엔 지금의 남편 윤한결이 있다. 윤한결은 “직관과 감성이 굉장히 뛰어나고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친구인데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없어 몰래 (콩쿠르나 워크숍) 서류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자 워크숍에 참가했을 당시, 윤한결이 일정 내내 따라다니며 매니저를 자처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윤한결 [대원문화재단 제공]


치열한 분석 그 후, ‘리허설은 전략, 무대는 직관’


불과 5년 사이 윤한결은 한국은 물론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는 젊은 지휘자로 성장했다. 이미 KNSO 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를 했을 당시 클래식계의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아스코나스 홀트에 발탁돼 계약을 맺었다.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 등 세계적인 거장은 물론,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클라우스 메켈레가 소속된 곳이다. 당시 아스코나스 홀트는 “윤한결은 작곡가로서의 깊이와 지휘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드문 인재”라고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윤한결은 “점점 더 음악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는 변화를 들려줬다.

그는 명민한 분석가이나, 무대 위에 서는 순간 ‘직관’을 강조한다. 한국에서의 새해 첫 공연이었던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에서도 그랬다. 당초 예정된 리허설 시간보다 2시간이나 앞당겨 끝내버리는 쿨한 MZ 지휘자다. 디테일을 하나하나 꼬집기보단 음악의 흐름과 분위기, 응집된 소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리허설 현장도 전략적이다. 차이콥스키의 ‘비창’처럼 감정 소모가 큰 곡을 연주할 땐, 일부러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든다. 첫날부터 고통의 끝을 보게 되면 정작 무대 위 연주에서 터뜨릴 에너지가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의 무대는 명민한 분석과 전략, 여기에 ‘화룡점정’처럼 ‘직관의 음악’이 만나 완성된다. 온전히 라이브의 에너지를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곡가답게 악보에 적힌 이야기를 철저히 분석하며, 자신만의 파격을 얹는다. ‘비창’ 악보에 적힌 ‘디크레센도’를 크레센도로 뒤바꾼 해석은 ‘곡의 구조’를 완전히 장악한 설계자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정교한 팀워크와 경제 시스템을 조율하던 소년의 감각이 어느덧 100명의 단원을 움직이는 지휘봉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는 “팀이 되어 협동하고 조율하는 게임이 오케스트라에서 하모니를 만드는 과정과 닮았고, 1초 단위로 바뀌는 게임 상황에서의 빠른 의사결정은 연주에서의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데에 장점으로 발휘된다”고 웃었다.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안의 무수히 많은 변수를 조율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라는 그의 설명은 포디움에 선 지휘자의 역할과도 다르지 않았다.

한 해, 한 달, 혹은 하루마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확신을 쌓는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악보는 치열하게 분석해 모든 디테일을 독파하면서도, 오케스트라 앞에 설 땐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분석들은 잠시 미뤄둔다. 지휘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이다. 윤한결은 “지휘자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연주자들이 저보다 자기 악기를 훨씬 잘하시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기보다 저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것을 꺼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분석을 많이 하는 타입이나, 결국 무대는 예술이고 라이브예요. 잘 구축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때 결국 가장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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