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이 바뀌는 순간, 운도 따라왔다’ 첫 메달에 쏠린 우주의 기운[2026 동계올림픽]

예선 18위에서 결승까지
‘라인 선택’이 가른 승부
운과 집중력이 만든 반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리스트 김상겸이 시상대에 올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한국 스노보드 알파인의 맏형 김상겸(37)의 은메달 질주에는 실력만큼이나 운도 함께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김상겸은 토너먼트 곳곳에서 이어진 변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 흐름을 끝내 시상대로 바꿔냈다.

시작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김상겸은 1차 예선에서 18위로 밀리며 탈락 위기에 놓였지만, 2차 예선에서 순위를 끌어올렸다. 1·2차 합계 1분27초18로 8위를 기록해 간신히 결선 토너먼트에 올랐다. 평행대회전에서는 예선 성적이 좋을수록 출발 코스(블루·레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데, 결선에 오른 순간부터 치열한 선택의 싸움이 시작됐다.

행운의 첫 장면은 16강이었다. 김상겸은 3조에서 슬로베니아의 잔 코시르와 맞붙었다. 레이스 도중 코시르가 넘어지면서 김상겸은 43초05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8강에 진출했다. 이후부터는 ‘라인’이 승부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8강에서 김상겸이 만난 상대는 이번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이자 개최국 이탈리아의 최고령 베테랑 롤란드 피슈날러였다. 앞선 준준결승 조들에서 승자가 모두 레드라인 선수였던 흐름 속에 피슈날러는 경기 시작 직전 블루라인에서 레드라인으로 출발 코스를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해설진도 “라인별로 빙질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레드라인 빙질이 더 좋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 결승에 출전한 김상겸이 오스트리아의 베냐민 카를과 질주하는 모습. [연합]

그러나 선택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피슈날러가 레이스 중 흔들리며 완주를 포기했고 김상겸은 43초24로 결승선을 통과해 4강에 올랐다. 해설진이 “이변 중의 이변”이라고 표현할 만큼 예상 밖의 장면이었다.

행운은 4강에서도 이어졌다. 김상겸은 블루코스에서 2005년생 불가리아의 신성 테르벨 잠피로프와 맞붙었다. 초반에는 뒤처졌지만 중반 이후 속도를 끌어올리며 역전에 성공했다. 최종 기록은 43초37. 잠피로프는 막판에 살짝 균형을 잃으며 0.23초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승리로 김상겸은 생애 첫 올림픽 메달과 한국의 대회 첫 메달 주인공을 확정 지었다.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모두 상대의 ‘라인 교체’와 실수가 겹쳤다는 점에서 “운이 따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그 운을 잡아챈 것은 김상겸의 집중력과 경험이었다. 탈락 위기였던 예선에서 살아남았고 상대가 흔들릴 때마다 자신의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했다. 그렇게 쌓인 ‘우주의 기운’은 결승까지 이어져 김상겸은 은메달로 한국 선수단 첫 메달이자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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