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생에너지 시대…차세대 전력망 구축해야


바야흐로 에너지의 거대한 전환기다. 우리나라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61% 감축하는 도전적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요구 또한 거세다.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장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전기를 나르는 ‘길’, 즉 전력망의 구조적 한계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발전소를 바꾸는 것을 넘어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철학을 바꿔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과거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전기 소비자가 스위치를 켜면, 중앙의 거대 발전소가 석탄과 가스를 태워 그 수요에 맞춰 전기를 공급했다. 연료 투입량을 조절할 수 있었기에 공급은 언제나 통제 가능했고, 장거리 송전선로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 시대는 다르다. 재생에너지는 자연(햇빛과 바람)이 발전량을 결정한다. 즉 공급이 간헐적이고 변동적이므로, ‘수요가 공급에 맞춰 변화하는’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기가 남을 때는 소비를 늘리고 부족할 때는 줄이는 ‘스마트한’ 수요 반응이 핵심이다.

전력망의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가 일방향의 ‘고속도로’ 같은 대규모 송전선 중심이었다면,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곳곳에 퍼져 있는 실핏줄 같은 ‘배전망’이 중요하다. 태양광 패널이 깔린 지붕 하나하나가 작은 발전소가 되는 세상에서, 전력망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돼야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에도 전력망은 여전히 중앙집중형 과거 모델에 머물러 있다. 재생에너지는 호남과 제주 등 남부에 집중된 반면, 전기를 쓰는 곳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송전선로 확충이 필요하나, 송전탑 건설은 지역 수용성 문제로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에너지 고속도로’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진정한 에너지 고속도로란 단순히 지역과 수도권을 잇는 거대한 송전탑 몇 개를 더 꽂는 토목공사가 아니다.

미래의 에너지 고속도로는 고속도로(송전망)뿐만 아니라 국도, 지방도, 골목길(배전망)이 함께 건설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는 과거의 ‘선(線) 중심’의 물리적 도로가 아니라, 마치 ‘초고속 통신망’처럼 전력망이 그물처럼 촘촘히 깔리는 ‘네트워크형 도로망’을 의미한다. 이 그물망 위에서 전력과 데이터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어디서든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 위에서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에너지 시스템도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다. 분산된 소규모 발전원들을 디지털 기술로 연결하여 하나의 발전소처럼 제어하는 통합발전소(VPP) 또한 이 고속도로 위에서 실현 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전력망 구축은 바로 이러한 방향이어야 한다. 물리적 선로 확충에 머무는 수준을 넘어, 전력망의 디지털화와 고도화를 통해 에너지의 흐름을 데이터처럼 자유롭게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탄소중립 달성과 미래 에너지시장 주도권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재관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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