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거부한 ‘대머리 여가수’, 그래미 수상 거부에 교황 사진 찢기 퍼포먼스까지 ‘반항의 상징’
대성공 뒤에 평생 그녀를 괴롭히던 우울증과 조울증…불행했던 삶 뒤로하고 아들 사망 후 생애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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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Steve Graintz]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그녀는 극도로 폭력적이고 학대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청소년기에는 절도 문제로 보호시설에 수용됐다. 이후에도 불안과 우울, 반항과 충돌이 반복됐다. 가정을 이뤘지만 17세의 아들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듬해, 그녀 또한 삶을 등졌다.
어떤 삶은 그렇게, 납득되지 않은 채 희망없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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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기록은 그를 ‘행동 문제를 보이는 소녀’로 분류했다. 학교 교육은 중단됐고, 시설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한 수녀가 기타를 건네주었고, 음악을 접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시점은 그 무렵으로 전해진다. [게티이미지/Photo by Vinnie Zuffante] |
고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는 196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네 명의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로부터 반복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리고, 물건으로 구타당하고, 집 안에서 격리되거나 모욕을 당했던 기억을 스스로 인터뷰와 자서전을 통해 언급했다. 당시 아일랜드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한 가톨릭적 규율과 체벌 문화 역시 그의 성장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부모의 이혼 이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갈등은 계속됐다. 10대 초반 가출을 반복했고, 절도 문제로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했다. 15세 무렵에는 더블린 외곽의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ery) 계열 보호시설에 수용됐다. 시설은 ‘문제 청소년’을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됐으며, 엄격한 규율과 노동 중심의 생활 방식을 강요했다.
공식 기록은 그를 ‘행동 문제를 보이는 소녀’로 분류했다. 학교 교육은 중단됐고, 시설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한 수녀가 기타를 건네주었고, 음악을 접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시점은 그 무렵으로 전해진다.
It’s the home of police who kill black boys on mopeds
And I love my boy and that‘s why I’m leaving
I don‘t want him to be aware that there’s
Any such thing as grieving”
(영국은 마담 조지와 장미의 신화 속 나라가 아니야
오토바이를 탄 흑인 소년들을 죽이는 경찰의 나라지
난 내 아들을 사랑해서 떠나는 거야
내 아들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
– 시네이드 오코너 ‘오토바이를 탄 흑인 소년들’(Black Boys on Mopeds)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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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의 정점은 1992년 미국 NBC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생방송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는 프로그램의 공연 말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으며 “진짜 적과 싸워라”(Fight the real enemy)라고 경고하듯 선언한 뒤 퇴장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
고통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시네이드 오코너는 1987년 데뷔 앨범 ‘사자와 코브라’(The Lion and the Cobra)를 발표하며 음악계에 등장했다. 삭발한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 거칠게 밀어붙이는 발성은 당시 팝 음악계가 기대하던 여성 가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정돈된 스타라기보다 무대 위에 ‘자기 자신’으로 서 있는 한 사람에 가까웠다.
이후 1990년 그녀 인생 최고의 히트곡 ‘무엇도 너와 비교할 수 없어’(Nothing Compares 2 U)가 대성공을 거두며 그의 이름은 단숨에 세상에 알려졌다. 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고, 세계 각국에서 연이어 음반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삭발한 머리와 움직임 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만이 강조된 뮤직비디오 또한 크게 화제가 됐는데, 이 또한 글로벌적 인기를 누리며 하루가 멀다하고 방송을 통해 노출됐다. 조용한 듯 격정적인 상실의 노래 속 그녀의 목소리는 단조로운 영상 구성 덕에 더욱 강조됐고, 당시 시네이드 오코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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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도 너와 비교할 수 없어’(Nothing Compares 2 U)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
그러나 명성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음악적 실력과 성과와는 별개로 삭발한 머리를 비롯한 그녀의 갖가지 기행 때문이었다.
당시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시네이드 오코너 소속 레코드 회사는 여성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긴 머리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메이크업 등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이유였다. 이후 1991년에는 제3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퍼포먼스’ 부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으나, 수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 불참했다. 그래미 역사상 아티스트가 수상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논란의 정점은 1992년 미국 NBC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생방송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는 프로그램의 공연 말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으며 “진짜 적과 싸워라”(Fight the real enemy)라고 경고하듯 선언한 뒤 퇴장했다. 방송 직후 스튜디오는 정적에 가까운 침묵에 휩싸였고 거센 비난이 잇따랐다. 공연 취소와 방송 출연 중단, 공개적인 조롱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논쟁은 멈추지 않았다. 오코너는 종교와 정치, 여성 인권과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일삼았고, 종종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인터뷰 등에 참여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과 대중은 오코너의 음악보다 그의 현재 상태에 대해 더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다. 무대는 점점 줄어들었고, 인터뷰는 매번 논쟁만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났고, 다시 사라졌다. 이름은 여전히 알려져 있었지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고통은 때로 인간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고통은 인간을 침묵하게 하지만 또 다른 고통은 인간을 외부와 끊임없이 충돌하게 만든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그 행동은 일관되지 않고, 종종 모순적이며, 주변 세계와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킨다.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채 형태를 바꾸며 반복되는 삶, 시네이드 오코너의 생은 그와 같은 고통의 궤적 위에서 이어졌다.
Nothing can stop these lonely tears from falling
I said nothing can take away these blues
‘Cause nothing compares
Nothing compares to you”
(노래하지 않는 새처럼
무엇도 이 고독한 눈물을 멈추지 못해
무엇도 이 비애를 덜어줄 수 없어
왜냐하면 무엇도 너에 비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 무엇도)
– 시네이드 오코너 ‘무엇도 너와 비교할 수 없어’(Nothing Compares 2 U)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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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에 이르러서도 시네이드 오코너의 삶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정신 질환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때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안정한 상태를 직접 드러내기도 했다. [게티이미지/Photo by Unknown] |
고통 속 인간은 구원받는가
말년에 이르러서도 시네이드 오코너의 삶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정신 질환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때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안정한 상태를 직접 드러내기도 했다. 활동은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무대와 대중 앞에 서는 시간은 점점 줄었다.
일부는 시네이드 오코너의 전 생애에 걸친 고통을 정신 질환의 문제로 설명하곤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어린 시절의 폭력적 환경이나 종교적 억압, 혹은 반복된 사회적 충돌 속에서 고통이 점차 고착됐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그의 삶에 이 같은 요소들이 존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사건들의 연쇄로 설명해 단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삶은 종종 몇 개의 원인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경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고, 하나의 상처로 한 사람의 생애가 규정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또 마감된다. 많은 경우 삶은 그저 여러 층위의 기억과 경험이 겹쳐지며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고통을 이해하려 해왔다. 종교는 그것을 시련이나 시험으로 해석했고, 철학은 존재의 조건으로 설명했다. 또 현대의 심리학은 상처를 치유와 회복의 과정 속에서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은 극복의 이야기로 정리된다. 상처는 의미가 되고, 인간은 그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단단해진다는 식의 서사다.
하지만 모든 삶이 그런 결말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고통은 때때로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한 사람의 생을 갉아먹으며 불행과 파국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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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Photo by Frans Schellekens/Redferns] |
2022년 1월, 시네이드 오코너의 17세 아들 셰인 오코너(Shane O’Connor)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종 상태로 알려진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뒤인 2023년 7월, 시네이드 오코너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