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산 원유 도입, 원전 가동률 확대…에너지 안정카드 총동원

원전 가동률 60%에서 80%로
가격 과도 책정 알뜰주유소 1회 위반시 면허 취소
수출 바우처 한도 3000만→6000만원 확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후 첫 주말인 1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를 찾은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의 해외 생산 원유 일부를 국내로 도입하고 현재 60%대 후반인 원전 이용률을 80%대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또 석유 최고가격제 이행 우수 주유소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반면, 가격을 과도하게 책정하는 알뜰주유소에 대해서는 1회만 위반해도 면허를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하는 강경 방침을 세웠다.

호르무즈 해협 운송로 차질로 플라스틱 원료인 납사(나프타)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에 대해서는 국내 생산 물량의 해외 수출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산업위기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여수를 산업위기특별대응지역으로 격상해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16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현재 해외 14개국에서 총 18개 자원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석유 가스를 생산중인 사업은 미국 이글포드, 영국 다나 유전, 캐나다 하베스트, 베트남 15-1 광구, 예멘 LNG 등 총 14개 사업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아랍에미레이트(UAE) 생산 유전의 원유 실증 도입을 추진하면서 2019년 10만배럴, 2022년 36만배럴, 지난해 43만배럴이 국내에 도입된 바 있다.

대표적인 해외 자원 개발 성공 사례인 베트남 15-1 광구도 석유공사가 14.25%의 지분을 확보해 생산 원유를 국내에 도입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등 해외 지분 관련 우선구매권 보유 계약 물량이 총 4080만배럴로 평가되고 있다.

산유국 공동비축 물량도 비상시 국내 수급 안정 수단 카드로 활용 가능하다. 산유국과 체결 중인 ‘국제공동비축사업’은 석유공사가 보유한 비축시설 중 유휴시설을 해외 국영석유사 등에 임대해 원유 등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공동비축사업을 진행중인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UAE), 쿠웨이트 등 중동 3개국을 비롯해 노르웨이, 중국, 싱가포르 등 총 6개국으로 모두 8개 공동비축사업이 체결돼 있다.

산업통상부는 이번 주 중 현재의 산업 위기관리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하고 비축유 방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11일 국제에너지기구(IEA) 긴급 이사회가 결의한 총 4억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 공동 행동에 동참해 전체 방출량의 5.6%에 해당하는 2246만배럴을 방출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IEA 주도로 한국이 두 차례에 걸쳐 방출한 1165만배럴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현재 원유 비축량은 208일분이며, 액화천연가스(LNG)는 9일분 수준이다. LNG의 경우 오는 12월 말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또 지난 13일 0시부터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우수 주유소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반면 가격을 과도하게 책정하는 알뜰주유소는 1회만 위반해도 면허를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한다. 현재는 3회 위반 시 면허가 취소된다.

제도 시행 나흘째인 16일 전국 평균 주유소 기름값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경윳값의 휘발유 가격 역전 현상도 10일 만에 해소됐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36.5원으로 전날보다 3.6원 하락했다. 같은 시각 경유 가격은 ℓ당 1836.2원으로 4.9원 내려 지난 5일 이후 처음으로 휘발유 가격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 이후 경유 가격은 지난 6일 ℓ당 1887.3원으로 휘발유 가격(1871.8원)을 역전한 뒤 10일 동안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날 충북 청주의 창현주유소를 방문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주유소 소비자 가격 반영 상황을 점검했다.

김 장관은 “오늘로 최고가격제 시행 4일째인데 정유사 공급가격 인하가 주유소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린 것 같다”면서 “소비자들이 주유소에서 최고가격제 시행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LNG 수급 안정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석탄과 원전 발전량을 늘려 LNG 사용량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현재 설비용량의 약 80% 수준으로 운영 중인 석탄 발전 상한을 해제하기로 했다. 또 원전 정비를 앞당겨 3월까지 2기를 재가동하고 5월 중순까지 추가로 4기를 가동하는 등 총 6기의 원전 정비를 조기 완료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원전 가동률을 현재 60%대 후반에서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중동 사태로 피해를 입는 중소기업과 수출기업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정책자금 6700억원 규모의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공급하고 정책자금 상환 만기를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수출기업 지원을 위해 물류비로 사용할 수 있는 수출 바우처 한도도 기존 3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확대한다. 중동 지역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 물류 지원 바우처도 도입해 1000개 기업에 기업당 1000만원씩 총 1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납사 공급 차질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된다.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지난달 이래 납사 가격이 50% 급등해 톤당 875달러에 이르렀지만,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통행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공급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아시아 전역의 석유화학 시설들은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 한국 최대의 단일 에틸렌 생산 업체인 여천NCC는 지난주 ‘불가항력(force majeure)’ 상황을 선언하고 최소 가동 수준으로 생산량을 줄였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 역시 고객사들에게 불가항력으로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통보했다. 아직 불가항력을 선언하지 않은 생산업체들도 가동률을 기존 80∼90%대에서 약 60%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의 납사 재고는 2주분이었다. 씨티그룹은 일본의 납사 재고를 20일분으로 추산했다. 이는 석유화학 생산업체들이 일반적으로 보유하는 재고 수준과 비슷하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