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권력 맞서 슈퍼 IP 수성
공공재 점유 논란과 사회적 비용
‘장소성’ 읽지 못한 미흡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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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방탄소년단의 역사적인 광화문 광장 공연이 막을 내렸다. K-팝 그룹 최초로 광화문 광장에 선 방탄소년단은 역사적 공간을 액자처럼 담아내며 화려한 복귀식을 치렀다. [빅히트뮤직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광화문의 밤은 찬란했다. 잠들었던 월대가 깨어났고, 21세기 ‘K-팝의 제왕’이 그 위에 섰다. 국립국악원 연주자와 소리꾼들의 구슬픈 ‘아리랑’에 방탄소년단(BTS) 지민의 미성(신보 ‘아리랑’ 첫 트랙 ‘보디 투 보디’)으로 서정적 변주를 더했다. 이날의 공연은 방탄소년단이 3년 9개월 만에 보여준 완전체 복귀 무대를 넘어 대한민국의 서사를 전 세계에 송출한 사건이었다.
조명이 꺼지자, 질문이 남았다. 단 한 시간의 공연으로 2600억 원(블룸버그 분석)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IP주권 사수’라는 산업적 성취를 얻긴 했지만 공공성, 전통, 문화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잔존했다.
이 공연은 역사적 공간에서 열린다는 의미 외에도 슈퍼 IP(지식재산권, BTS)와 공룡 플랫폼(넷플릭스)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쏠렸다. 이번 공연은 3억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라이브가 결정되자, 업계에선 적잖은 비판과 우려가 나왔다. 토종 OTT나 공영방송이 아닌 왜 글로벌 OTT와 ‘거래’를 했냐는 지적이다.
그간 방탄소년단은 하이브의 자체 팬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했다. 사실 ‘광화문 공연’이라고 해도 굳이 국내 방송사나 OTT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국내 OTT의 송출 망과 접근성은 글로벌 OTT엔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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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역사적인 광화문 광장 공연. [빅히트뮤직 제공] |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관한 하이브의 전략도 명확했다. 글로벌 팬덤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팬덤을 넘어 전 세계 보편적 시청층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가 바로 넷플릭스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IP 괴물’ 하이브는 결코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플랫폼은 단지 ‘통로’일 뿐, ‘주인’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통상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콘텐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분류,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 독점 방영권과 2차 저작권(IP)을 영구적 혹은 장기적으로 귀속한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했는데도 IP는 하이브가 챙겼다. 최근 수년간 한국 콘텐츠 업계의 포식자로 군림하며 ‘하청 기지화’ 위협을 했던 넷플릭스가 슈퍼 IP(BTS) 앞에선 한발 물러서며 대등한 ‘빅딜’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넷플릭스가 이유 없이 양보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 라이브 이벤트를 강화해 온 넷플릭스는 이번 공연을 통해 K-팝과 대중음악 콘서트의 광고 수익성과 트래픽 가치를 검증하는 시험대로 활용했다. 브랜든 리그 넷플릭스 논픽션 시리즈 및 스포츠 부문 VP(부사장)는 “올해 넷플릭스의 이벤트 중 가장 큰 것”이라며 “BTS보다 대단한 건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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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광장 공연. [빅히트뮤직 제공] |
산업적 성취가 곧 공공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논쟁이 시작된다. 공연 전은 물론 공연 후에도 ‘공공재 점유’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광화문 광장은 33시간 동안 통제됐고, 시민들의 통행권은 제약받았다. 광장 진입을 위해 여러 단계의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일상적인 불편이 가중됐다. 경찰은 최대 26만 명의 인파를 예상해 일대를 원천 봉쇄했으나, 실제 운집 인원은 하이브 추산 10만 4000명, 서울시의 실시간 도시 데이터 기준 4만 8000명을 기록했다. 경찰 6700명을 포함해 공무원 1만여 명은 행정력 과다 투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덕분에 광화문 광장 공연에선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감내해야 할 불편 비용과 사회적 비용은 적지 않았다. 이태원에서 뼈아픈 참사를 겪어낸 이후 안전 관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공연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불편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방법론은 부족했다. 공연 후 하이브는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들이 이뤄졌다. 일상에 불편을 드려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RM도 “교통 통제와 소음 등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감내해 주신 시민 여러분, 그리고 광화문 일대 상인 및 직장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며 “저희 공연을 너른 마음으로 품어준 그 따뜻한 배려를 오래도록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공연 허가 과정에서 선정 기준의 모호함도 도마 위에 올랐다. 향후 다른 K-팝 가수들이 광화문 광장 공연을 희망할 경우 어떤 잣대와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엔 대한 답변은 여전히 미망 속에 빠져있다.
다만 ‘역사적 공간’에서 이뤄진 공연의 명분은 분명했다. 방탄소년단의 정체성 확립과 국가 브랜드 제고 측면의 실익이 상당했다. K-팝을 넘어 K-컬처의 실시간 홍보 마케팅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서울은 이미 K-컬처의 심장이자 글로벌 대중 문화의 메카로 부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동력인 BTS의 웅장한 귀환”이라고 평했고, BBC는 “한국 문화의 ‘얼굴’이 된 일곱 멤버에게 주어진 흔치 않은 영예”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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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역사적인 광화문 광장 공연. [빅히트뮤직 제공] |
역사의 한복판에서 열린 공연은 K-헤리티지의 정수를 담아내리라 기대됐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 등을 맡았던 세계적인 연출가 해미시 해밀턴은 이번 공연을 진두지휘하며 방탄소년단이 품어온 한국인의 정체성과 광화문의 상징성을 담기 위해 분투한 흔적이 역력했다.
방탄소년단이 신보 타이틀곡 ‘스윔(SWIM)을 비롯해 총 12곡을 부르는 동안 무대 위에 5층 높이로 세워진 큐브형 구조물은 광화문을 액자처럼 담아냈고, 앨범 ‘아리랑’의 로고에 담긴 건곤감리(乾坤坎離) 철학을 연출로 시각화하며 한국적 세계관을 현대의 공연 언어로 전했다.
‘노멀(NORMAL)’에선 하늘(乾)을 상징하는 광활한 영상미를 보여줬고, ‘라이크 애니멀스(Like Animals)’에선 땅(坤)의 거친 에너지를 담은 무게감 있는 군무로 시선을 모았다. ‘스윔’은 흐르는 물(坎)처럼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물길을 형상화했고, ‘FYA’에선 불(離)의 열정을 담은 강렬한 조명으로 폭발적 에너지를 담아냈다. 하지만 광화문의 역사적 층위와 아리랑의 저항과 애환, 그리움의 서사는 곡(‘보디 투 보디’)의 메시지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표피적 나열에 그쳤다.
1시간 분량의 공연은 광화문 광장이 가진 역사적 맥락, 공공자원에 상응하는 인문학적 가치, 방탄소년단의 심미안을 담은 메타포를 보여주기엔 총체적으로 미흡했다.
광화문은 왕권과 식민, 민주화, 집회로 이어진 수백 년의 시간이 중첩된 상징적 공간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장소성보다 영상 미학에 치중한 나머지, 광화문이 가진 시간의 궤적을 재소환하는 데 실패했다. 현란한 레이저와 카메라 워크 속에서 광화문은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됐다. 세계 최정상 연출자를 불러왔으나 이 공간만이 가진 영혼을 읽어내는 문화적 문해력은 숙제로 남겼다.
BTS와 하이브는 이번 광화문 공연을 통해 K-팝 거물로의 산업적, 문화적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IP를 지켜낸 결단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공공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과 예의, 전통을 다루는 진정성, 장소의 의미를 해석하는 깊이에 대한 성찰은 아쉽다. K-컬처의 외연 확장에 급급한 지금, ‘보랏빛 아리랑’이 넘실댄 밤은 우리에게 IP의 왕관을 지탱할 ‘인문학적 통찰’과 ‘사회적 합의’라는 문화적 성숙에 관한 질문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