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안나와”…세입자 내보낸 ‘빈집’만 거래

정부 ‘세 낀 매물’ 팔게 퇴로 열었지만
은행서 조달가능 후순위대출 ‘0원’수준
무주택자라도 현금 없으면 매입 어려워
전문가 “생활안정자금대출 완화해야”



“올해만 가양동에서 100건 넘는 매매 거래가 있었지만, 대부분 다주택자 매물 중에서도 기존 세입자를 내보낸 ‘빈 집’들만 거래가 됐어요. 세 낀 집은 후순위 대출이 안 나오니까, 결국에는 세입자에 이사비 쥐여주고 비워야 거래가 돼요.”(강서구 가양동 공인중개사 대표)

정부가 다주택자가 세 낀 매물을 무주택자가 매도할 수 있도록 퇴로를 마련했지만, 막상 초고가 주택을 제외한 일반적인 아파트 시장에선 빈 집 위주로만 거래가 되고 있다. 세 낀 매물은 사실상 은행권에서 조달 가능한 대출이 ‘0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1세대 1주택자의 ‘세 낀 매물’도 매도가 가능해질 예정인 가운데, 정책 실효성을 위해선 무주택자에 한해서라도 ‘전세퇴입자금대출(생활안정자금대출)’을 완화해 주는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온다.

▶전세 낀 집은 대출한도 ‘0원’…세 낀 집 회피 현상=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실제 무주택자가 갭투자(세 끼고 매매)를 할 때 일반 매매에 비해 대출 가능액은 큰 폭으로 준다. 정부는 지난 9·7대책을 통해 규제지역 내 주택에 대해선 주택담보비율(LTV) 40% 내에서만 주담대를 받도록 제한했는데, 후순위담보대출은 그 한도 내에서도 전세보증금을 제한 차액만큼만 대출이 가능하다.

예컨대 서울에 있는 15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일반 매매할 때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는 6억원이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의 50% 수준인 8억원짜리 전세 세입자가 껴 있을 경우, 대출 가능액이 0원이다. 여기에 추후 세입자가 퇴거할 시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생활안정자금으로 묶이는 전세퇴입자금대출 한도도 1억원에 불과해, 집을 사고도 7억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세 낀 매물을 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세 낀 매물’을 매입하는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생애최초 주택구매자는 LTV 70%가 적용돼, 단순 계산대로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후순위 대출은 변제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등 위험도를 고려해 금리가 선순위보다 높다.

현장에선 ‘빈 집’에만 매수 대기자가 줄을 섰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최근에 거래한 집도 집주인과 세입자가 워낙 사이가 좋아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기로 협조하면서 매도가 가능했다”며 “세입자 없는 ‘빈 집’을 매수하겠다는 매수자는 줄을 선 반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는 ‘세 낀 집’은 매수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서 영업하고 있는 또 다른 공인중개사 대표 역시 “한 다주택자는 세입자가 ‘절대 집 못 빼준다’고 하는 바람에 매도를 6월 이후로 미뤘다”며 “지금도 대출이 거의 불가능한 데다 앞으로 어떻게 더 강화될지 몰라 세 낀 매물은 매수자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무주택자 생활안정자금대출 완화 필요”=시장에서는 정부가 비거주 1주택도 ‘세 낀 매매’를 허용한다 해도, 금융규제 완화 없이는 효과가 미미할 거라고 예상한다. 정부는 현재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 대상 규제 검토와 동시에 매도 시 실거주 의무를 일부 유예해 주는 안을 살펴보고 있다. 1주택자 매물도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 집값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다주택자와 마찬가지로, 무주택자만 살 수 있도록 퇴로의 대상을 한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무주택자 중에서도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일부에게만 매수 기회가 돌아가게 된다.

KB부동산 월간주택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50.16%로 집계됐다. 아파트 매맷값이 워낙 큰 폭으로 오르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비율은 지난해 3월(53.83%) 대비 1년 만에 3.67%포인트 떨어졌지만, 매수자 입장에선 여전히 세입자가 퇴거할 때 매매가의 절반이 넘는 전세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세입자를 돌려보낼 때 생활안정자금대출이 1억원밖에 안 나오는 관계로 현금 없는 무주택자 입장에선 세 낀 매물을 살 수가 없다”며 “현실적으로 전세퇴입자금대출은 무주택자에 한해서라도 풀어줘야 정책의 의미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거주 1주택자’ 매도 시 실거주 의무를 유예해준다 하더라도 무주택자가 세 낀 집을 살 수 있도록 대출을 풀어주지 않으면, 매도자가 세 낀 집을 팔고 상급지로 갈 수 있는 길만 열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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