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의 추억에 미래를 더하다…도고의 ‘화려한 귀환’[트래블ON]

보양 온천의 정수, 파라다이스 스파
3000종 생명력 품은 세계꽃식물원
도고 옹기·‘3000원 티켓’ 도고아트홀
폐건물에서 청년의 거점된 청수장도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의 실외 유수풀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온천으로 유명한 충남 아산시 도고면은 한때 전국 신혼부부의 설렘이 가득했던 ‘신혼여행 성지’였다. 1970∼80년대 성수기에는 도고온천역 앞 숙소의 불이 꺼질 날이 없었고, 관광버스가 줄지어 늘어설 만큼 한때 전국적인 명소로 유명했다.

온천의 전성기가 지나고 침체기를 들어선 지금, 도고는 치유와 역사, 예술과 생명이 박동하는 다채로운 여행지로 거듭났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은 도고의 부활은 우리 인생의 흥망성쇠와도 닮았다.

도고의 침체기, 그리고 재건의 기운


도고의 정체성은 단연 물에서 시작된다. 국내 온천 휴양지는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1989년 이전까지만 해도 신혼부부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여행 코스였다. 그중에서도 도고의 온천수는 천연 유황 성분이 함유돼 있어 피부 미용과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다. 웰니스 여행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광 트렌드의 격변은 이 유서 깊은 온천 마을에 직격탄을 날렸다. 1990년대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와 대형 레저시설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도고온천은 쇠퇴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최근 온천 수요 자체가 바닥을 찍고 다시 살아나면서 도고를 찾는 방문객도 늘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온천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25.4% 급증했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의 실내 바데풀


도고온천의 대표 주자는 단연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다. 이곳은 지난 2009년 행정안전부로부터 ‘보양 온천’ 지정되며 수질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보양 온천이란 용출 온도가 35℃ 이상이고 성분이 우수해 건강 증진 및 요양에 적합하다고 인정된 온천에 부여하는 특별 타이틀이다. 지하 250m 암반에서 솟구치는 천연 유황 온천수는 매끄러운 감촉과 함께 특유의 향을 품으며 방문객의 감각을 깨운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의 물놀이 시설인 아쿠아플레이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단순히 몸을 담그는 ‘탕’의 개념을 넘어 실내 바데풀, 실외 유수풀, 사계절 파도풀, 키즈랜드, 아쿠아플레이 등을 갖춘 최신식 워터파크 형태로 발전했다. 독일의 바데하우스를 모델로 설계된 실내 바데풀은 수(水)치료를 목적으로 구축돼 질병 예방과 치유의 경험을 선사하며, 실외에 펼쳐진 150m 길이의 유수풀에서는 느릿하게 수면 위의 시간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다.

마무리 공사 중인 ‘낭만철길정원’


스파 인근에는 철길 부지를 활용한 ‘낭만철길정원’도 조성 중이다. 현재 막바지 공사 중으로, 예전의 철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방문객의 오붓한 산책을 도와줄 힐링 공간이 될 전망이다.

세계꽃식물원에서 느끼는 꽃과 흙의 조화


‘세계꽃식물원’의 튤립 정원


온천과 함께 하루 더 도고에 머문다면, 여정은 한층 풍성해진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거대한 규모의 ‘세계꽃식물원’이 있다.

식물원 내부에 들어서면 입구를 지키는 높이 12m의 벵골 보리수나무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3000여 종의 관상식물이 365일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곳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50년 이상 원예업에 몸담아온 남기중 원장의 집념과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생명의 방주’다. 남 원장은 1994년 쇠락한 농원 일부를 리모델링한 데 이어, 2004년에는 세계꽃식물원으로 정식 개원했다.

도고면에 자리한 세계꽃식물원 전경


이제 이곳은 주말마다 약 2000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입장권은 1만 원이지만, ‘리아프 가든센터 바우처’ 형태로 제공돼 가든센터에서 식물이나 화분으로 교환할 수 있다. 식물원이 꽃 농산물 전시장 역할까지 겸하는 셈이다. 남 원장은 식물원 관람과 식물 구매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 방문객 입장에서도 실속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꽃을 기르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파하고 있다”면서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화훼 문화를 일상으로 가져가고 있다”며 웃었다.

남기중 세계꽃식물원 원장


씨앗에서 잎, 꽃, 열매, 다시 씨앗으로 이어지는 식물의 생장 과정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식물원의 핵심 가치다. 단순히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곳의 아름다움 뒤에는 시련의 역사도 새겨져 있다. 2024년과 2025년, 두 차례의 대형 화재로 실내 면적의 30% 가까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남 원장은 묵묵히 식물원을 지켜오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붉은 꽃잎을 밀어 올리는 생명의 강인함을 빼닮은 의지다.

남 원장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다른 농산물에 비해 유통구조의 왜곡이 심한 화훼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국내 화훼 시장은 잘 흥정하면 깎아주고, 모르는 사람한테는 비싸게 받는 구조예요. 누구나 공정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식물원을 통해 화훼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투명하게 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불과 흙의 기억…옹기발효음식 전시체험관


옹기 제작 작업 현장을 재현한 모형


세계꽃식물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옹기발효음식 전시체험관’이 있다. 도고 옹기의 유구한 역사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도고 옹기의 뿌리는 19세기 말 천주교 박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닿아 있다. 박해를 피해 충청도 산간 지역으로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생계를 위해 옹기를 구웠던 것이 그 시작이다.

지리적 환경 또한 옹기 문화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삽교천 방조제가 생기기 전, 도고 인근에 있는 선장포구와 시전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도고는 인천과 광천에서 배에 실려 온 소금과 젓갈이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고, 이를 담기 위한 옹기 수요가 생겨났다.

옹기발효음식 전시체험관의 외부 모습


체험관에서는 도고는 물론 전국의 다양한 옹기를 만날 수 있다. 제작 과정, 지역에 따른 형태의 차이점 등도 배울 수 있다. 야외마당에는 칸가마, 대포가마, 질가마 등 전통 가마가 늘어서 있다. 이 가마들의 일부는 지금도 장작불을 지펴 옹기를 굽는다. 전통 가마는 나무를 때야 하는 방식이라 가마 온도를 110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만 꼬박 하루 이상 걸린다고 한다.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방문객이 만든 작품은 2주간 건조 과정을 거친 뒤 초벌과 재벌 등 두 차례의 가마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 기다림의 미학을 선사한다. 체험관에서는 고추장, 피자, 쿠키 만들기 등 발효 음식을 직접 만드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최대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험장에는 지난해에만 약 2만 명의 발길이 이어지며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체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도고 아트홀에 핀 문화에 대한 진심


양곡창고 건물을 개조한 도고 아트홀 전경 (아산시 제공)


도고온천 중심가에서 옹기체험관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일제강점기 양곡창고 건물을 개조한 낮고 긴 건물이 시선을 붙잡는다. 2014년 ‘아산 코미디홀’로 시작된 이곳은 2024년 7월 ‘도고 아트홀’로 새 단장을 마치며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공연장, 전시관, 카페를 한데 품은 이곳의 심장은 169석 규모의 공연장이다. 주말이면 서커스와 마술, 인형극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진다. 가장 큰 매력은 3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관람료다. 문화 시설이 부족하기 쉬운 면 단위 지역에서 커피 한 잔 값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도고 아트홀에서 열린 ‘효자호랑이’ 공연 모습 (아산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도고 아트홀의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140% 이상 늘며 지역 문화 거점으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오는 6월부터는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본격 도입해 방문객 편의를 한층 높일 계획이다. 물가에 비해 너무 낮다는 지적을 받는 입장료 인상도 곧 논의될 예정이다.

청년을 위해 재탄생한 폐건물 ‘스페이스앳도고’


스페이스앳도고 입구 전경


도고의 변화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서도 느껴진다. 도고온천 구시가지에는 폐건물의 기둥을 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터가 있다. 1980년대 도고온천 최고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대형 여관 ‘청수장’이 있던 자리다.

이곳은 관광객 감소로 지역의 쇠락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남아 있었으나, 아산시는 이를 매입해 문화 재생의 거점인 ‘스페이스앳도고’로 재탄생시켰고 올해 상반기 중 개관을 앞두고 있다. 스페이스앳도고는 청년 창업가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현되는 공간으로서 앞으로 청년 인구의 유입을 유도하며 도고에 신선한 활력을 주입할 예정이다.

스페이스앳도고 내 1층 공간


이제 도고는 온천 도시라는 고착된 이미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있다. 과거를 지우는 대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를 짓는 방식으로 변신 중이다. 뜨거운 물이 솟구치는 이 땅은 화려했던 옛 영광을 재료 삼아, 청년과 예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ter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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