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료 생산, 수지·안료·첨가제 등 배합
‘분자조정 설계’ 원천기술 확보의 비결
입자·성분 변화따라 소재 물성 달라져
반도체 EMC·이차전지 난연소재 확장
5년간 R&D…반도체 사업진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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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자가 삼화페인트공업의 내화도료 ‘플레임체크’를 작업하는 모습(왼쪽)과 SP삼화가 상용화한 반도체 소재 EMC를 적용한 제품 사진. [SP삼화 제공] |
‘뺑끼 회사’가 반도체 소재를 만든다.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은 삼화페인트공업이 ‘SP삼화’로 사명을 바꾸고 종합화학기업 도약을 선언했다. 회사는 이미 반도체 소재인 MMB와 EMC를 상용화했고, 이차전지용 열 제어 소재도 내놨다. SP삼화가 반도체 및 이차전지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기술의 뿌리는 80년간 축적한 페인트 연구개발 덕이다. 핵심은 소재의 분자 단위 설계를 얼마나 정밀하게 할 수 있느냐다.
4일 삼화페인트 등에 따르면 페인트는 수지, 용제, 안료, 첨가제를 정밀하게 배합해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고분자 복합소재다. 어떤 수지를 쓰는지, 어떤 관능기를 붙이는지, 무기 필러를 얼마나 균일하게 분산시키는지, 열을 받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도록 설계하는지가 페인트 제품의 성능을 가른다. SP삼화가 반도체와 이차전지 소재로 사업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도 이 분자 설계 능력 덕분이다.
관능기는 분자에 붙어 성질을 바꾸는 일종의 반응 손잡이다. 필러는 소재 안에 넣는 보강 입자다. 어떤 손잡이를 붙이고, 어떤 입자를 섞느냐에 따라 같은 고분자라도 페인트가 될 수도 있고 반도체 칩을 감싸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페인트 회사들이 오랜 기간 동안 다뤄온 소재들은 에폭시, 아크릴, 우레탄, 페놀계 수지 등이다. 모두 고분자 소재다. 같은 고분자 소재라도 어떤 성분을 붙이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열에 강한 구조(방향족)를 넣으면 고온에서도 잘 버티는 소재가 되고, 부드러운 구조(알킬 사슬)를 넣으면 휘어도 잘 깨지지 않는 소재가 된다. 접착 반응을 일으키는 구조(에폭시기)를 투입하면 단단하게 굳는 소재가 되고, 유리나 세라믹 입자와 잘 붙는 구조를 넣으면 반도체 패키징용 복합소재가 된다.
이른바 ‘분자 레고’다. 같은 고분자라도 어떤 골격을 쓰느냐, 어떤 성분을 붙이느냐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이 된다. 예컨대 내후성, 접착성을 높여 안료를 넣어 조성하면 페인트가 된다. 고순도, 저흡습, 저열팽창, 저이온성에 물성을 맞추면 반도체 EMC가 된다. 열전도, 난연, 절연성을 강화하면 이차전지용 방열·난연 소재가 된다. 초박막, 고순도, 정밀 경화 쪽으로 초점을 맞추면 전자재료가 된다. 제품 이름은 달라지지만 출발점은 분자 조성 설계 능력이다.
SP삼화가 최근 상용화한 EMC는 반도체 칩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패키징 소재다. 칩을 감싸 습기와 충격을 막고, 기계적 안정성을 높여 패키지 변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가 고성능화될수록 패키징 소재는 열팽창계수를 낮추는 것이 필수적인데 열을 받아 부피가 커질 경우 접합 부위가 떨어지는 등 변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재인 MMB도 특수 수지와 첨가제를 먼저 반응시켜 중간 소재를 만들 화학적 안정성과 성분 균일성을 높인 제품이다. 페인트에서 안료와 첨가제를 균일하게 섞어 안정성을 높이던 기술이 반도체 패키징 소재 개발에선 수지와 첨가제, 필러를 균일하게 반응·분산시켜 칩 신뢰성을 높이는 기술로 확장된 셈이다.
SP삼화가 개발한 이차전지 소재는 내화도료와 방열도료 기술에서 출발한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의 핵심 위험은 열폭주다. 외부 충격이나 내부 결함으로 셀 온도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까지 올라가면 인접 셀로 열이 퍼지고, 연쇄 폭발 화재로 이어진다. SP삼화의 내화도료는 페인트 표면이 고온의 열을 받으면 약 40배 이상 팽창해 일정시간 동안 열이 내부 구조물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는 제품이다.
특히 내화도료는 표면에 가해진 온도가 150℃ 이상 올라가면 미네랄산과 탄화물 형성제가 반응 탄화층을 형성해 불이 붙는 것을 막고, 300℃ 부근에선 불연성 기체를 생성한다. 700℃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세라믹층이 형성되면서 표면두께보다 수십배 두꺼운 단열층을 만들어 열폭주를 막는다. 이를 배터리 소재에 적용하면 셀 간 열전이를 늦추는 방어막이 된다. SP삼화측은 “산업 설비나 전자재료에 사용되어 열을 외부로 방출해 열을 식히던 기술이 이차전지 기술로 변환된 것”이라 설명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뿐 아니라 광학 소재로도 확장하고 있다. SP삼화는 최근 광학용 고기능성 경화제 특허를 취득했다. 이 소재는 디스플레이용 필름과 고기능성 접착제 등에 쓰인다. 회사 측은 미반응 물질을 제거해 순도 99.5%의 고순도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료회사 연구소의 기술 축이 색상과 도막에서 고순도 경화제, 전해액 첨가제, 패키징 소재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SP삼화의 연구개발은 지난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SP삼화는 지난 1993년 12월 삼화페인트공업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80년 도료 제조 이력에 30년 넘는 연구소 운영 경험이 더해지면서 수지, 첨가제, 분산, 경화, 계면 제어 기술이 반도체·이차전지 소재로 확장될 토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소재 사업 진출도 이미 5년전부터 준비됐던 바다. SP삼화는 지난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전기, 전자, 반도체 재료 제조가공, 판매업 및 관련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R&D 개발 비용 꾸준하다. 지난 2025년 연구개발비는 162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3.1%였다.
SP 삼화 관계자는 “이종 산업으로 갑작스러운 진출이 아니라, 연구진이 페인트 화학기술을 활용해 수십년간 연구개발해 온 성과다”며 “페인트 배합과 분산, 교반, 열에 견디는 수지 등을 합성하는 기술이 있었기에 첨단 화학소재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