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오케스트라처럼 들려”…클라라 주미 강·김선욱 듀오 전국투어

오는 19일부터 11개 도시 투어
5년 만에 돌아온 듀오 리사이틀
“지휘 이후 더 웅장해진 소리”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크레디아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요즘 선욱씨 연주를 들으면 옆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재닌 얀센 같은 유명한 연주자들도 늘 그래요.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달까요.”

어느덧 5년의 세월이 지났다.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이 한국에서 ‘듀오’로서 한 무대에 선 것은 2021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가 마지막이었다. 주미 강은 “지난 5년 사이 김선욱의 음악도 달라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9)과 피아니스트 김선욱(38)은 오는 19일 세종시를 시작으로 12일간 11개 도시를 투어하는 강행군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년 베토벤 음반을 함께 녹음하며 깊은 음악적 호흡을 입증해 왔다. 주미 강은 투어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당시 합이 너무나 잘 맞아 음악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며 “이번엔 베토벤 전곡 때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무대”라고 말했다.

지휘자 손에서 피어난 ‘관현악적 피아노’ 기대


다시 돌아온 듀오는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 프로그램을 신중히 골랐다. 소나타 4개를 줄줄이 배치했다.

주미 강은 “솔리스트 피아니스트와 할 때는 소나타를 4곡 넣기도 하지만, 사실 바이올린 독주회에서는 생각보다 드문 구성”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처럼 베토벤을 포함해 오토리노 레스피기,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처럼 음향적 밀도와 체력이 요구되는 곡들을 한 무대에서 소화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관현악적인 성향을 가진 소나타를 네 곡이나 한 무대에 올린다는 건, 피아니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그만큼 서로 잘 맞아야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된다”고 말했다.

변화의 중심엔 단연 김선욱이 있었다. 주미 강은 “레스피기 소나타와 슈트라우스 소나타는 사실 선욱 씨를 보고 골랐다”며 “피아노가 굉장히 관현악적인 역할을 한다. 선욱 씨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크레디아 제공]


5년 전만 해도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 더 많은 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2024년부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지휘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주미 강은 “베토벤 전곡을 녹음할 때만 해도 (선욱 씨의) 지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지휘자로서 너무 많은 성장을 했고, 그게 연주에서 느껴진다”며 “예전에도 워낙 관현악적인 흐름을 잘 살렸는데 지휘를 하며 웅장함이 커졌다. 화성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고, 음악의 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듀오이자 실내악 파트너로 활동하며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성장했다. 주미 강은 김선욱에 대해 “하루 종일 음악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라며 “그런 음악가가 주변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감”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의외로 많은 시간을 함께 연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투어 역시 공연 이틀 전에야 만난다. 이미 수많은 협연과 리사이틀, 음악제 무대를 함께 한 두 사람은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서로 음악을 어떻게 그려갈지 예상이 된다”고 했다.

물론 음악적 충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도 신뢰가 쌓여있다고 말한다.

“레스피기 같은 작품은 화성과 관현악적 흐름을 사실상 피아노가 주도해요. 피아니스트가 ‘이 화성에선 이런 흐름이 맞지 않는다’고 하면 바이올리니스트는 사실 할 말이 많지 않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욱 씨 의견에 반감이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잘 맞는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리사이틀은 두 거장 솔리스트의 만남을 넘어, 클라라 주미 강 자신의 변화 역시 보여주는 무대다.

최근 그의 레퍼토리는 점점 더 어둡고 현대적인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듀오 프로그램의 중심축 역시 미하일 바인베르크다. 폴란드 태생의 소비에트 작곡가 바인베르크는 국내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는 인물이다.

주미 강은 바인베르크에 대해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는 등 삶 자체가 비극이었던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레스피기 소나타 역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비극적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곡이다.

그는 “항상 작곡가들이 곡을 만든 당시의 배경,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끝은 사랑과 희망이다. 젊은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영웅적이고 사랑 넘치는 소나타로 마무리하는 것도 어둠 뒤에 사랑과 희망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빈체로 제공]


“나이드니 내면의 자아와 친해져”…바렌보임과 협연 “꿈 이뤄”


“콩쿠르는 정말 시작도 아니더라고요.”

주미 강은 전형적인 콩쿠르 스타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그에게 콩쿠르는 목적지가 아닌 긴 음악 여정의 통과의례였다.

그는 “연주자라는 직업은 항상 평가받는 직업”이라며 “오늘 연주가 좋았어도 다음 날은 다시 영(zero)이 된다. 그래서 본인이 지치지 않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섰던 주미 강의 음악은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가녀린 섬세함부터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장악력을 두루 품었다. 다양한 색채를 지녔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이미지는 늘 섬세하고 여성적인 쪽에 가까웠다.

그는 “사실 어렸을 땐 턱시도를 입고 연주했다. 드레스를 처음 입은 것도 17~18살 때부터였다”며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데, 20~30대 때는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남들이 보는 모습에 괴리가 있었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크레디아 제공]


2023년부터 사용 중인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튜니스’는 주미 강이 자기 내면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악기다. 이전까지 썼던 1708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지향했다면, 튜니스는 조금 더 남성적이다. 브리튼,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와 같은 20세기 작품과 잘 맞는다는 게 주미 강의 설명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본모습과 훨씬 친해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두렵지 않다”며 “지금은 내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예전보다는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주미 강의 꿈은 70대까지 건강하게 오래 연주하는 것이다. 스스로도 지금을 “피지컬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이나 ‘전성기’라는 표현은 경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수명이 피아니스트나 지휘자보다 짧았거든요. 저는 그걸 깨고 싶어요. 전성기가 50대에 왔으면 좋겠어요. 아니, 30년쯤 이어지면 좋겠어요. (웃음) 피지컬 전성기가 아니더라도 부상 없이 70대까지 하고 싶어요.”

올여름엔 오랜 꿈도 이룬다. 12살에 손가락 부상으로 무산됐던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협연이 27년 만에 성사됐다. 올 8월 라인가우 페스티벌에서다. 그는 “그때는 그냥 어린 시절 무산된 공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지금 눈앞에 다가오니 감정적으로 너무 벅차다”고 했다.

“27년이라는 시간도 이번에 계산하게 됐어요. 바렌보임, 주빈 메타, 샤를 뒤투아 등 90대 거장들의 인생 마지막 챕터에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에요. 훗날 제가 60대가 되면 지금 이 몇 년이 가장 그리운 순간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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