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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GPT로 제작] |
김 차장을 처음 만난 곳은 ‘제육향’ 정모 자리였다. ‘제육향’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DMC 업무지구 일대 직장인들의 연합 동호회로, 구내식당 점심 메뉴에 제육볶음이 나오면 채팅방에 신속히 공유하는 걸 활동 목표로 삼고 있었다.
김 차장은 제육향에서 사무국장 직을 맡고 있었는데 내가 그를 만났을 즈음에는 실질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는 리더나 다름없었다. 회장이 탄핵돼 지도부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탄핵 사유는 조직에 대한 불충이었다.분명히 점심에 제육볶음이 나왔는데 전체 회원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가 만든 소규모 채팅방에만 따로 알린 게 발각된 거다.
회장 없이도 제육향의 몸집은 계속 커졌다. 회원 수가 150명에 이른 뒤부터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존재감이 커질수록 파급 효과 역시 커지는 상황이었다.누군가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위해 공유한 정보에 불과했지만 업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사뭇 달랐다.
특히 구내식당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제육향 회원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제육볶음의 작은 조각 하나 남김없이 초토화되는 탓에 다른 손님들이 적잖은 불만을 제기했다. 정량 배식은 말뿐인 원칙이었고 한국인들은 정에 약했다. 조금만 더, 한 국자만 더요, 하는 요청을 못 들은 척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영양사 협회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관내의 모든 구내식당이 외부인의 식사를 금지하게 된 것이다.
누가 먼저 동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 차장은 근무하던 은행에서 실시한 희망퇴직 프로그램에 이름을 넣고 36개월 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았다. 내가 다니던 다큐멘터리 외주제작 프로덕션은 일감이 끊겨 폐업 수순을 밟고 있었다.
우리 둘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제육볶음 도시락을 비웠다.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고기는 퍽퍽하고 양념은 너무 강했다. 자주 가던 미디어센터 구내식당의 흥건한 국물제육 백반이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는데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자취 생활 15년에 내가 손대보지 않은 메뉴는 없었다. 김 차장이 내 손을 잡고 창업을 제안했다. 주력 메뉴 제육볶음에 서비스로 계란찜을 내는 백반집을 만들자고 했다.
“제육향 회원들이 아우성이에요. 갈만한 식당이 없다고. 단골 150명은 일단 확보하고 가는 셈이죠.” “회장이랑 가게에 올까요? 우리한테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
“그래도 149명이 남아 있네요.”
퇴직금을 털어 넣은 김 차장은 김 사장으로 전직했고 나는 주방장이 됐다. <제육향>의 간판이 올라가던 날 동호회 ‘제육향’의 화환이 도착했다.
오픈발로는 전부 설명되지 않는 엄청난 반향이었다. 역에서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위치인 데다가 중심 상업 지구에서도 꽤 거리가 있었는데 매일 같이 웨이팅 줄이 늘어섰다. 나는 처음부터 우리 가게가 성공할 줄 알고 있었다. 구내식당에 제육볶음이 나오는 날에는 누구든 콧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떤 식당에서든 계란찜을 서비스로 받으면 최고의 대접을 받은 기분이다. <제육향>에 오면 매일매일 제육볶음이 나오고 계란찜을 서비스로 받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격 또한 인기에 한몫했다. 구내식당과 거의 비슷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다. 영양사 선생님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불리한 점이었지만…. 최소한 탄단지의 비율 만큼은 보장할 수 있었다. 계속 리필할 수 있는 하얀 쌀밥, 탄! 뚝배기에 넘칠 듯 흘러내리는 노오란 계란찜, 단! 목전지가 선사하는 조화로운 비율의 비계, 지!
어느 날 마스크에 선글라스,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가게에 들어왔다. 다른 손님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제육향>에 발을 들여놓는 직장인들은 대체로 웃고 있다. 그들이 웃는 이유는 일단 그곳이 사무실이 아니기 때문이며, 곧 제육볶음을 먹게 된다는 기대감에 충만하기 때문이고, 오랜 웨이팅을 견뎌낸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굴을 철저히 가린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철저한 냉담이었다. 눈동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진한 선글라스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최근 8시간 이내에 작은 미소조차 지어본 적 없는 게 분명했다. 김 사장과 나는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픈 주방 형태였기 때문에 웍질을 하면서도 홀을 주시하는 게 가능했다. 상차림이 완료되자 의문의 손님은 겹겹의 위장을 벗어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 마스크, 모자까지 차례대로 내려놓았다.
“아…!”
김 사장이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나도 그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논란 속에 자신이 만든 동호회를 떠나야 했던 ‘제육향’의 회장이었다. 그 역시 우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신중한 젓가락질이 이어지고 밥을 세 번이나 리필해가며 그릇을 싹싹 비웠다. 계산대에서 회장과 김 사장은 처음 인사를 나눴다. 어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회장에게는 분명한 용건이 있어 보였다.
“제육향… 내가 지은 이름이야. 정중히 요청하겠네. 가게 이름을 바꿔주시게. 보름의 말미를 주겠어. ‘제육향기’는 어떤가? ‘불제육향’도 나쁘지 않을 거야.”
“거절한다면요?”
회장은 김 사장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자네를 파멸시키겠네.”
김 사장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전과 다름없이 고기를 재우고 계란물을 만들었다. 웃으며 손님들의 카드를 받아들었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내가 여러 번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별일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회장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강한 고집과 독선이 느껴지는 그의 눈이 잊혀지지 않았다. 마침내 보름이 지나고 열엿새 날 아침이 밝았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가게에 도착했다. 김 사장의 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용증명이 날아오지도 않았고, 간판을 떼러 온 용역 깡패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가게 밖으로 웨이팅 줄이 길었고, 밥을 여덟 번 리필해간 손님이 있었다. 보통 날이었다. 저녁 무렵 포털 사이트에 뜬 기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TGC 리테일, 신규 PB 도시락 ‘제육향’ 런칭… 편의점 입맛 사로잡겠다”
한동안은 버텼다. 하지만 곧 무너졌다. ‘제육향 도시락’은 너무 쌌고 맛이 괜찮았다.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제대로 직격했다. 구태여 줄을 서가며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여전히 우리 가게 <제육향>을 찾아주는 단골들이 있었지만 매출은 복구되지 않았다. 메뉴판에 고추장찌개가 올라갔고, 청국장이 추가됐다. 그건 이미 패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제육향>은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문을 닫는 날, 재고로 남은 목전지를 구워 김 사장과 나는 조촐한 고별 회식을 했다. 동호회 ‘제육향’ 회원들에게도 연락을 돌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듣기로는 회장이 주최한 제육파티가 같은 날 열린다고 했다. 전부 그쪽으로 간듯했다.
“이제부터 뭘 하실 생각이에요?”
“구직해야죠. 퇴직금도 거의 다 까먹었어요. 닥치는 대로 서류 넣고 면접 봐야죠. 그리고…”
“그리고?”“점심시간에 구내식당 가서 제육볶음을 먹을 겁니다.”
한동안은 버텼다. 하지만 곧 무너졌다. ‘제육향 도시락’은 너무 쌌고 맛이 괜찮았다.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제대로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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