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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중 힘든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 짓는 이문정 셰프. 채상우 기자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사람들은 그를 마녀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본 그는 수십 년 전 상처에 눈물짓는, 따뜻한 온기를 지닌, 어쩌면 여리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지금 요식업계에서 신성(新星) 스타셰프를 나열하자면, 이문정 셰프를 빼놓을 수 없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연예인을 연상시키는 외모, 위트를 머금은 거친 화법. 그의 매력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그 당당함 이면에는 이 짧은 글로는 다 담기 어려운 26년의 세월이 있다. 아픔과 성취, 상실과 회복이 뒤얽힌 세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또렷이 느껴지는 건 단 하나였다. 시련을 대하는 태도, 그 단단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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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연상케 하는 이문정 셰프의 요리. [이문정 셰프 제공] |
이문정 셰프는 대학을 졸업한 후 2001년 워커힐호텔 중식당 ‘금룡(金龍)’에서 요리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중식 주방은 철저한 남성 중심의 세계였다. 작은 체구의 그가 뜨거운 불길 앞에서 무거운 웍을 다룰 것이라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손재주가 좋고, 섬세한 편이어서 일식이나 양식을 하고 싶었어요. 경험을 쌓으려 중식당에 입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거친 느낌을 받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용처럼 치솟는 불길과 휘날리는 웍, 칼을 다루는 기술과 분주한 요리사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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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정 셰프의 배추를 이용한 중식 요리. [이문정 셰프 제공] |
여성으로서 중식 요리사의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신체적인 한계가 때때로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여성이라서 안 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몇 배의 노력을 감수하며, 같은 선상에서 자신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버틴 10년. 그는 국내 특급호텔 최초로 불판을 잡은 여성이 됐다.
“매일 주방에 들어가기 전 ‘나는 저들과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10년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한국인 여성으로 처음으로 불판을 잡았어요. 그때가 요리사로서 제 삶에 가장 기억 남는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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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문정 셰프. 채상우 기자 |
그러나 시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유산과 육아, 그는 다시 불판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문정 셰프는 눈물을 흘렸다.
“첫 임신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일을 줄이지 못했고, 결국 아이를 잃었죠. 슬펐지만, 애써 슬프지 않으려 했어요. ‘아, 이런 게 상처구나’ 그때 처음 알았어요. 이후 다시 임신했을 때는, 지켜야 했어요. 그래서 불판을 내려놨어요. 또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았어요. 뱃속의 생명을 지켜야 했기에, 10년 만에 손에 쥐었던 불판을 내려놓았어야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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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정 셰프의 중식 요리. [이문정 셰프 제공] |
둘째 출산 후,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지만, 육아로 인한 공백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컸다. 동료들은 이미 저만큼 앞서 있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같아지고 싶었지만, 이미 격차가 컸어요. 어린아이를 두고 일을 나가는 것도 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요구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이문정 셰프는 낙담만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요하게 자신을 밀어붙였다. 잠 자는 시간을 3시간으로 줄여가며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대학원에서 조리과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부서질 듯 힘들었다. 고통을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버티는 것 외에는 방안이 없었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정말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텼어요. 정말 힘들 때는 ‘성공을 위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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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를 하는 이문정 셰프. 이문정 셰프 제공 |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여린 경우가 있다. 이문정 셰프는 그런 사람이다.
“사실 저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예요. 일을 하면서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한강을 보면서 울고, 이불을 붙들고 울고. 제가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알기에 오히려 ‘나는 강하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어요.”
그 아픔을 알기에, 이문정 셰프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해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경단녀를 위한 재단 설립을 계획한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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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를 하는 이문정 셰프. 이문정 셰프 제공 |
올해 2월 이문정 셰프는 25년 동안 몸담았던 워커힐호텔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 요리 인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 그는 중식 레스토랑 문을 열고 싶다고 했다. 유명세를 이용해 큰 규모를 노려볼 법도 한데, 카운터테이블이 배치된 15석 규모의 작은 식당을 생각하고 있다. 화려함 대신, 밀도 높은 경험을 택했다.
“손님과 소통하면서 재밌게 일하고 싶었어요. 중식으로 하는 오마카세를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아무래도 소규모다 보니 음식의 퀄리티도 높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작지만, 정말 좋은 요리를 제공할 수 있는 손님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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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정 셰프가 선보인 중식. [이문정 셰프 제공] |
이문정 셰프가 추구하는 중식은 완벽한 중국 본토를 지향하지 않는다. 한국적 색채가 강한 ‘K-중식’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우리가 익히 먹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전부 한국화된 중식이다. 이문정 셰프는 그런 방식으로 중식을 보다 더 우리 입맛에 익숙하게 재해석하려 한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도 이미 한국화된 중식이에요. 저는 여기에 더 나아가, 한국 식재료와 마녀만의 스타일로 다시 해석하고 싶어요. 된장이나 고추장, 제철 나물도 사용할 수 있고요. 익숙하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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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정 셰프의 특제 ‘중마소스’로 만든 오징어무침. 중국의 색과 한국의 맛을 버무린, 이문정 셰프가 지향하는 K 중식의 맛을 보여준다. 채상우 기자 |
그날 그가 내놓은 오징어무침은 그 방향을 분명히 보여줬다. 두반장과 굴소스를 바탕으로, 마늘과 고춧가루를 더한 ‘중마소스’. 여기에 식초를 더해 완성한 요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중식과 한식의 경계, 하지만 살짝 한국 쪽으로 기운 듯한 새로운 장르로 느껴졌다. 맛은 단연 최고였다. 매콤, 달콤, 새콤한 대중적인 맛이면서도 변주가 있어 깊이가 느껴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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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정 셰프가 선보인 중식. [이문정 셰프 제공] |
요리사로서 그의 시선은 이미 세계에 가 있다. 이문정 셰프는 K-중식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걸 꿈꾸고 있다. 본토인 중국에서 오히려 K-중식을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퍼스널브랜드를 확실히 하면서, K-중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셰프가 되고 싶어요. 많은 이가 저를 통해 K-중식을 경험하면 좋겠어요. 언젠가 K-중식이 중국으로 역수출되는 것도 신기루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마녀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해 온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