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올 하반기 개봉 예정작 ‘몽유도원도’에서 수양대군 역을 맡은 김남길과 안평대군 역의 박보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 |
어린 왕 단종(이홍위)의 억울함을 잘 보여준 빅히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같은 시기를 다루는 영화가 계속 나온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몽유도원도’가 촬영을 마치고 올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며,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살생부’도 올 하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캐스팅에 나섰다.
영화 ‘몽유도원도’(감독 장훈)는 꿈속의 아름답고도 기이한 풍경을 담은 그림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후 각기 다른 도원을 꿈꾸게 된 형제 ‘수양’과 ‘안평’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 살 차이인 세종의 두 아들은 너무나 다른 길을 가게돼 극화하기에 매우 좋다. 수양은 동생들과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지만, 안평은 36세에 형으로부터 사약을 받았고 후사도 끊어졌다. 김남길(수양대군), 박보검(안평대군), 이현욱(안견), 김병철(한명회) 등이 나온다.
영화 ‘몽유도원도’ 속에는 단종의 억울함에 이어 안평대군의 억울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500년도 훨씬 지난 사건을 지금 자꾸 호명하는 이유는 당대에는 수양(세조)이 이겼을지 몰라도 긴 역사의 흐름속에서 승자는 오히려 단종이나 안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계유정난기를 계속 다룰까?
영화 ‘몽유도원도’는 ‘왕사남’보다 조금 이른 시대를 다룬다. ‘왕사남’이 비극의 결과를 다뤘다면, ‘몽유도원도’는 비극이 잉태되는 과정이 좀 더 잘 보여질 수 있다.
‘왕사남’이 이미 큰 성공을 거둬, 영월의 청령포와 단종의 능인 ‘장릉’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듯이, ‘몽유도원도’도 성공하면 종로구 부암동의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와 한강변의 담담정(淡淡亭) 터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전망이다.
안평대군 이용(李瑢)은 1447년(세종 29년)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유람하다 신하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안견에게 들려주며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하자, 안견이 사흘만에 수묵담채화로 완성했다.
원래 안평대군의 거처는 옥인동에 있는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의 수성궁. 안견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한 곳도 수성궁이었다. 그 곳은 아버지 세종이 안평에게 ‘게으름 없이 임금을 섬기라’는 뜻으로 당호를 지어준 비해당(匪懈堂)으로도 불린다.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3년후인 1450년 9월에는 안평이 꿈속 무릉도원과 같은 자리를 도성의 북문인 창의문(彰義門) 밖 부암동 일대에서 찾아내 그곳에 정자를 짓고, 무계정사(武溪精舍)라고 이름지었다. 주위에는 많은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지금도 큰 바위에는 안평대군의 필체로 추정되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안평에게는 무계정사라는 별서 한 채로는 글과 시를 잘 쓰는 선비들을 다 모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포대교 주변 강변북로 옆에 솟은 강변 언덕에 담담정(淡淡亭)을 짓고 시인묵객, 선비들과 시문 짓는 걸 즐겼다. 요즘 말로 ‘뷰’가 끝내주는 곳이다. ‘맑을 담’이라는 한자인 ‘淡’은 ‘물이 맑다’, ‘묽다’, ‘담백하다’를 뜻하는데, 풍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 공간.
하지만 안평이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으로 강화도로 유배를 가 사사되자, 계유정난 1등 공신 신숙주가 이를 접수했다. 이후에는 신숙주와 세조가 주로 사용했다. 지금은 벽산빌라 입구 오른쪽에 담담정의 터를 알리는 표석만 있다. 안평이 죽은 후에는 부암동의 무계정사도 파괴되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무계정사 초입에 ‘빈처’ 등 단편소설을 쓴 현진건의 집터도 있다.
안평은 시·서·화에 두루 능해 삼절(三絶)이라 불릴 만큼 당대 최고의 문화권력이자 문화셀럽이었다. 서예 실력은 중국(명나라)까지도 유명했다. 그의 조맹부체 글씨는 중국에서도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당시 K-콘텐츠를 이끌고가던 안평에게 형인 수양은 질투심 같은 걸 느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항상 안평대군 주변에 모여든다는 점은 정치적인 야심을 품고있던 수양대군으로서는 점점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화셀럽’ 안평에 형 수양이 느꼈을 질투심?
세종은 집권기에 장남 문종과 차남 수양, 3남 안평을 국정에 두루 참가시켰다. 문종은 왕세자 시절 세종 대신 1445~1450년 4년 9개월간 대리청정을 하며 실무를 익혔다. 1446년 모친 소헌왕후의 사망, 1450년 부친 세종의 사망으로 3년상을 연이어 치르는 바람에 건강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이 때문에 왕을 2년2개월밖에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어도 계유정난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문종도 국정을 논할 때, 수양과 안평 두 동생을 적극 참가시켰다. 문종 이후 12살에 즉위한 단종때는 아무래도 수양보다 안평이 더 든든한 왕실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 문종이 어린 왕 단종이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실권자 김종서와 황보인, 남지 등 영의정·좌의정·우의정과 집현전 학자들도 수양보다는 안평과 더 가까웠다.
수양대군의 측근은 과거에 오르지 못했던 한명회와 권람, 한확 정도다. 권람을 제외하면 문재(文才)가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한확은 조선 왕실과 명나라 황실의 외척이다. 그러나 수양은 내금위 장군들을 포섭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이나 수경사 간부들이다. 정변(쿠데타)을 일으킬 때는 이게 더 중요하다.
세종이 왕위에 있던 32년간은 조선 최고의 문예부흥기다. 한글 창제와 각종 과학기술품 발명 등이 이 때 이뤄졌다. 이런 시기 최고의 문화셀럽인 안평은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서예, 그림에 능했던 안평의 작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수양이 계유정란후 권력을 잡고 안평 관련 작품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 |
| ▲영화 ‘몽유도원도’ 포스터 |
몽유도원도에서 안평의 야망을 읽은 수양?
그나마 자신의 꿈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남아있지만, 한국이 아닌 일본의 덴리대(天理大) 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살마군을 이끌고 참전한 일본 장군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 그림을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화 ‘노량’에서 순천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해 일본으로 퇴각하는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 분)는 ‘몽유도원도’ 뿐만 아니라, 명품 도자기로 유명한 ‘심수관가(家)의 심당길과 박평의 등 많은 조선 도공들을 잡아갔다. 시마즈 가문은 지금도 가고시마(사쓰마번)의 당주다. 우리 입장에서는 괘씸한 적장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낙후된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켜 세운 공신이다. 당시 도자기 산업은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 산업 정도가 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었다.
중국은 영국에 차(茶)를 많이 팔아먹었다. 영국에서는 커피보다 (홍)차가 더 고급이었다. 상류교양층은 ‘디너 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애프트눈 티파티를 즐겼다. 영국은 면화 외에는 중국에 팔아먹을 게 없었다. 영국의 무역역조였다. 그래서 청나라에 인도산 아편을 팔았다. ‘차’를 많이 먹으면 다기도 많이 필요하다. 다기는 도자기 산업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몽유도원도’에서 안평 vs 수양의 대립
‘몽유도원도’는 안평이 꿈속에서 도원을 박팽년, 신숙주, 최항 등과 함께 노닐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왼쪽은 현실 세계를 나타내고, 오른쪽은 꿈속 도원을 그려 양쪽이 대비된다. 낙원에는 기암절벽과 복사꽃, 폭포, 빈 배 등으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안평은 그림이 완성되고 3년 후 제목과 발문을 직접 쓰고, 김종서, 정인지, 박팽년, 최항, 신숙주, 성삼문 등 당대 문사, 예술가 23명에게 보여줘 찬시를 쓰게 했다. 이 내용이 긴 두루마리 형태로 보존돼, 그림의 가로의 길이가 길 수밖에 없다. 예술작품인 이 그림이 수양에게는 ‘이상향’을 담은 예술이 아닌 정치적인 함의로 읽혀졌을 것이다. 물론 양평이 그림속 파라다이스를 통해 야망을 숨겼을 수도 있지만, 그림은 그림이다.
하지만 수양에게는 이를 그림으로만 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 ‘몽유도원도’의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보내준 캐릭터의 특성도 이런 점을 포함한다.
왕이 되려는 욕망을 가진 수양 역의 김남길은 그림 ‘몽유도원도’로 동생 안평의 욕망을 읽고자 하면서 점차 불안하고 잔혹하게 변하는 인물이다. 김남길은 수양을 통해 스스로의 야심을 깨달아가는 인물의 변화부터 안평을 향한 의심과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내면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줄 전망이다.
박보검이 연기하는 안평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을 즐기며, 조선을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시·서·화에 능했던 예술가로 조선의 풍류왕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박보검은 꿈에서 본 아름다운 낙원을 세상에 구현하고 싶었던 안평을 그려낸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이자 안평의 예술적 동반자 안견은 이현욱이 연기했다. 영화 ‘몽유도원도’는 왕위를 둘러싼 형제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상과 현실, 예술과 권력의 충돌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몽유도원도에 찬시를 쓴 사람들은 신숙주 등 몇 명을 제외하면 계유정란과 단종복위에 연루돼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은 정란의 화살을 피해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산수화의 거장인 안견의 최대 후원자가 안평대군이었으니, 안견에게 화가 미칠만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안견은 안평대군이 아끼는 귀한 먹을 훔쳐 안평의 집에서 쫓겨났는데, 그후 계유정난이 일어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안견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서산시 지곡면에는 안견기념관이 있다. 이 곳에 전시된 ‘몽유도원도’는 서산시가 일본 덴리시(天理市)와 자매결연을 하면서 받은 것이라 모사본이라고 해도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