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을 때마다 괴로워야 했다”…미식계가 경악한, 김진혁의 ‘창작론’[미담:味談]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 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김진혁 알라프리마 셰프 인터뷰
망각의 틈으로 창작을 메꾸다

김진혁 알라프리마 셰프. 채상우 기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제가 만든 요리를 먹을 때, 단 한 번도 괴롭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김진혁 셰프의 자기 평가는 자조적이고 염세적이다. 냉혹을 넘어 잔혹하다. 그리고 나는 그 말 속에서 요리를 향한 그의 애증과 고뇌를 읽었다.

그의 만족은 마치 우주의 끝을 찾아 떠나는 항해와도 같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역시 끊임없이 멀어져 갔다.

미식계는 그를 창작에 사로잡힌 예술가라고 평가한다. 즉흥적이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요리를 마주하면, 그가 왜 미식계의 예술가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실제 셰프로서 그의 삶은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븐은 종교와 사회가 만든 규범 속에서 고뇌한다. 그리고 끝내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미궁 같은 제약을 벗어난다. 그것은 곧 자아의 해방이었다.

김진혁 셰프 역시 정해진 장르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청담동의 로바타야키(端き·일본식 화로구이 식당) 전문점 토모에서 요리를 시작한 그는 정통 일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의 이자카야와 라멘집에서 수련했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해답을 찾아 진학한 핫토리영양전문학교에서 그는 요리의 혁명가로 불리는 전설적인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김진혁 셰프의 요리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페란 아드리아는 저의 요리관을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프렌치나 이탈리안과는 전혀 다른, 변형되고 해체된 창작 요리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08년 SPC에 입사해 브랜드 개발 업무를 맡았다.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교토의 창작요리 대가 요네무라 마사야쓰(米村昌泰)를 만났다. 아방가르드한 페란 아드리아와 달리 직선적인 요네무라 마사야쓰의 요리는 김진혁 셰프에게 또 다른 영감을 안겼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2015년 알라프리마를 문을 열고 김진혁 셰프만의 창작요리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창작요리를 선보였다. 새로운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주변 셰프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경악했다.

“알라프리마를 시작했을 때, 이제껏 없던 요리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메뉴를 매일 바꾸다시피 할 정도로 많은 창작요리를 선보였습니다. 해보고 싶은 게 워낙 많았습니다.“

미식계는 즉각 반응했다. 알라프리마는 미쉐린 서울이 시작한 첫해인 2017년 미쉐린 1스타에 선정된 후 2년 후인 2019년에는 2스타에 올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개업 4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2025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61위에 이름을 올리며 지금도 계속해 존재감을 키워나가고 있다.

요리를 잊어야 요리가 떠오른다

김진혁 알라프리마 셰프. [알라프리마 제공]

김진혁 셰프의 요리는 아방가르드와 미니멀리즘,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념이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는지를 완벽히 보여준다. 그의 요리는 때로 즉흥적이고 우연성을 따른다. 본능적이면서 직설적이기도 한다. 형식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은 혁신은 김진혁 셰프의 요리를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오히려 요리에서 멀어지려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을 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요리를 떨쳐내려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깊이 요리에 사로잡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반추와 망각이 교차하는 그 틈에서 새로운 요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일부러 한두 달 정도는 요리와 상관없는 일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영화일 수도 있고, 그림이나 게임일 수도 있죠. 요리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맛에 있어서는 관통하는 하나의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그건 바로 향이다. 맛은 혀를 통해서만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향을 느낄 수 없다면, 맛은 완성되지 않는다. 여기에 식재료와 최소화, 기교의 절제가 더해진다. 그는 복잡한 기교보다 직관적인 맛의 구조를 선호한다. 직관적인 맛과 향의 변주를 통해 그는 여운(餘韻)이라는 미식의 궁극적 이상향을 실현하려 한다.

“플레버(Flavor)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리를 즐길 때 시각 다음으로 느끼는 감각이 향입니다. 그다음 혀에서 미각을 느끼고 씹는 식감, 목 넘김, 여운으로 맛을 완성합니다. 저는 오이와 참외, 시소, 고수의 향을 좋아합니다. 호불호가 있는 재료라고 생각하지만, 타협할 수 없달까요. 제가 만드는 요리에서 그들은 정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봄에 나오는 재료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3, 4월 산에서 나오는 푸릇푸릇한 산채의 향이 있어서요. 생선도 은어를 좋아하는데, 은어 특유의 수박향을 좋아합니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김진혁 셰프가 하는 창작요리 계열은 파인다이닝에서도 진입장벽이 높다. 소위 미식가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김진혁 셰프는 그럼에도 더 많은 이가 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창작요리라는 게 뭔가 거창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작요리도 결국 맛있는 요리라는 것에 다름은 없거든요. 단지 모를뿐입니다. 경험이 쌓이면 처음에 아리송하게 느낀 창작요리의 맛에 기준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 맛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진혁 셰프의 요리. [알라프리마 제공]

김진혁 셰프의 요리는 늘 미완성인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요리를 맛볼 때마다 괴롭다고 말한다. 만족은 언제나 다음 접시 너머에 있다. 하지만 그 끝없는 결핍이야말로 창작자를 움직이는 힘이다

향이 미각을 지나 긴 여운으로 남듯, 그의 요리 또한 완성의 순간보다 다음 가능성을 향해 뻗어 있다. 어쩌면 김진혁 셰프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접시 위 음식이 아니라,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향한 여정이다.

“제가 만든 요리를 먹을 때, 단 한 번도 괴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창작자는 완성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완성에 끝내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람이다. 김진혁 셰프가 오늘도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이유 역시, 어쩌면 그 괴로움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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