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못 본다”…메시·호날두 ‘두 황제의 라스트 댄스’[월드컵-더 비저너리]

41세 호날두·39세 메시…전설들의 마지막 월드컵

2020년 1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 누에서 열린 FC바르셀로나 대 유벤투스의 경기 중 호날두가 메시의 마크를 피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보통 영화 속 이야기는 영화 안에서만 머문다. 거리의 여자와 냉혹한 재벌이 사랑에 빠진다거나, 한(恨)에 사무친 영혼이 TV를 뚫고 나오는 일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다. 스포츠만큼은 예외다. 지독한 가난이나 선천적 질병 등의 고난을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겨내는 휴먼 스토리. 여전히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유일한 분야가 스포츠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축구팬들로 하여금 인간계를 넘어 신계의 플레이를 맛보게 했던 두 전설이 오는 12일 막을 올리는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리오넬 메시(39)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는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와 함께 월드컵 6회 출전이란 대기록을 앞두고 있다.

호날낭중지추의 재능, 가난·병마 극복까지 판박이인 유년시절


아르헨티나의 지역 유소년팀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뛰었던 메시의 모습. 앞줄 가운데에 있는 아이가 리오넬 메시다. [게티이미지]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감출 수 없었던 재능이나 청천벽력같은 시련을 극복한 이야기 등이 비슷하다. ‘메시’라는 전설의 시작은 외할머니에게서 나왔다. 축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아르헨티나 태생인데다, 아버지도 지역팀(글란돌리) 코치 역할을 했기에 4세부터 글란돌리 유소년팀에 입단했지만 본격적으로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외할머니의 권유로 지역 유소년 경기를 뛰면서부터다. 해당 경기를 보러 갔다가 선수 중 결원이 생겼다는 소식에 외할머니는 메시를 뛰게 해달라 요청했고, 메시는 그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본격적인 축구의 길로 접어들었다. 외할머니는 손자에 대한 사랑과 눈썰미가 남달랐던 듯 하다. 인터넷 상에 메시가 어린시절 공을 차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나 사진 등이 많은데, 이는 대부분 외할머니가 촬영한 것이라 한다. 메시는 이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기리는 뜻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양 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세우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한다.

메시의 시련은 11세때 받은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이었다. 이를 치료하려면 매달 1000~1500달러(약 150만~230만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야 했다. 철강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청소 노동자였던 어머니의 벌이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지역 유명 구단들도 이를 지원하기 꺼려했다.

메시가 13세때 FC 바르셀로나와 체결한 계약서. 당시 바르셀로나의 기술 이사 카를로스 렉사흐는 메시와의 계약을 서두르느라 주변에서 종이를 찾지 못해, 식당에 있던 냅킨에다 자필로 계약서를 썼다. [게티이미지]


이를 해결한 곳은 스페인의 명문 구단 FC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의 기술이사 카를로스 렉사흐는 메시의 플레이를 보자마자 매료됐으나, 구단은 당시 13세였던 어린 선수와 계약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망설였다. 이에 메시의 아버지가 다른 구단을 알아보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리자 다급해진 렉사흐가 그 자리에서 마땅한 종이를 찾지 못해 냅킨에 계약서를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는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는 그 계약서에는 “구단 내 일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리오넬 메시를 라 마시아로 데려오기로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부 본인이 지겠다”는 렉사흐의 ‘각서’에 가까운 내용이 담겨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어린 시절 모습. 이 사진은 호날두가 유명해진 이후 후원사인 나이키에서 아디다스 로고가 비춰지지 않게 얼굴 주변만 사진을 잘라내고 자사의 SNS에 올려 홍보한 것인데, 팬들이 호날두가 아디다스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원본을 찾아낸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 [나이키 공식 SNS 계정 발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메시보다 더 지독한 가난과 불우한 유년시절을 겪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형도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청소 노동자로 일하며 힘겹게 생활을 꾸렸다. 그는 어렸을 때 늘 배고파 동네 맥도날드 뒷편을 어슬렁거리다 직원들이 챙겨주는 햄버거 하나로 허기를 달래기 일쑤였다.

포르투갈에서도 빈촌인 섬마을 마데이라제도 푼샬 지역. 그 곳에서도 제일 가난한 집의 아이. 동네 아이들도 놀이에 끼워주지 않아 혼자 공터에서 흙장난을 하던 호날두는 우연히 자신쪽으로 날아온 축구공을 차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이를 잊지 못해 어머니를 졸라 축구를 시작했고, CF 안도리냐와 CD 나시오날 등을 거쳐 스포르팅의 유소년팀에서 기량을 쌓아갔다.

호날두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17세가 되던 해, 심장이 빨리 뛰는 빈맥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뜻밖의 위기는 가족들을 뭉치게 했다. 아버지와 형이 취직을 해 돈을 벌었고, 온 가족이 1년여간 모은 돈으로 수술을 받아 호날두는 쾌유했다. 이후 재활과 강도높은 훈련을 거친 호날두는 스포르팅에서 빠른 속도로 1군으로 올라오면서 한 해에 유소년, 2군, 1군을 모두 거친 유일한 선수가 됐다.

인간 넘어선 神, 외계인 설까지…메신(神), 메시아가 됐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선수 육성 기관인 라 마시아로 들어갔다. 라 마시아는 어린 선수들이 프로 데뷔를 못할 경우를 대비해 공부도 많이 시키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메시는 축구로 대성할 가능성이 충분했기에 공부는 안 시킬 정도였다. 될 성 부른 떡잎을 알아본 코치진은 어린 메시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대신, 프로 선수들 수준의 식단과 생활 습관 관리를 적용했다. 바르셀로나의 ‘비밀병기’가 라 마시아에 있다는 소문은 스페인을 넘어 해외에서도 파다했다.

메시가 2005년 5월 FC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열린 알바테세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해준 호나우지뉴 등에 업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게티이미지]


2004-2005 시즌 드디어 ‘비밀병기’가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친선 경기에서 푸욜, 튀랑 등 당시 최상의 에이스 선수들을 가뿐히 제치는 플레이로 축구계를 놀라게 했던 메시는 17세의 나이로 프리메라리가에 공식 데뷔했다. 당시 기록으로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데뷔한 선수였고, 2005년 5월 1일 알바테세와의 홈 경기에서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으며 라리가에서 득점한 바르셀로나 선수 중 가장 어린 나이라는 기록도 썼다. 2005년은 메시에게 여러모로 행운이 가득한 해였다. 아르헨티나 청소년 국가대표로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했고, 골든볼(MVP)과 골든슈(득점왕)도 수상했다.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클럽 생활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는 불성실한 훈련과 코치진과의 갈등으로 제 역할을 못했고, 에투, 데쿠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 등으로 난조를 보이면서 팀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 당시 메시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소년가장’이라 불릴 정도로 홀로 바르셀로나의 성적을 책임지다시피 했다.

내가 ‘하루아침에 성공한 스타(Overnight success)’가 되기까지 17년 114일이 걸렸다.

바르셀로나 1군 공식 데뷔전에서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라는 평가를 받자

메시는 2021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총 778경기를 뛰면서 672골 268도움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동안 그 해 최고의 축구 선수를 가리는 대표적인 지표인 FIFA 올해의 선수상은 2회, 발롱도르는 2회,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통합했던 FIFA 발롱도르상은 4회 수상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4년 연속 동시 석권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후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뛰던 시절(2021~2022년) 발롱도르 1회와 FIFA 올해의 선수상 1회, 인터 마이애미 소속이었던 2023년과 2024년에 발롱도르 1회, FIFA 올해의 선수상 1회를 더 추가했다.

2010년대 바르셀로나에서의 놀라운 성과와 달리, 국가대표로서는 국제 대회에서 아쉬운 성적이 이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축구에서는 절대적인 월드컵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남미 국가들의 축구 대회인 코파 아메리카에서 번번이 칠레에 밀렸다.

2022년 카타르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르헨티나의 주장 메시(가운데)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게티이미지]


고심이 깊었던 메시는 한 차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번복하기도 했다. 2016년 메시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는 은퇴 반대 운동을 국가적으로 벌였다. 아르헨티나의 공항과 도로에 “No Te Vayas Lio. PERDONANOS(가지 마, 리오. 우릴 용서해 줘.)”라 쓰여진 전광판이 들어섰고, 당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메시에게 직접 전화해 달래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市)는 메시 동상을 세웠고, 메시 은퇴 반대 집회와 서명운동이 이어졌다. 당시 아르헨 국가대표팀에 “우승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던 디에고 마라도나는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줬다며 전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국가대표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한 이후, 마법처럼 국가 대항전에서의 성적도 잘 풀리기 시작했다. 2021년 드디어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하더니 2022년에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골든볼(MVP)도 수상했다. 2024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추가했다.

“유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 그 이상의 스타성 입증한 호날두


2014년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호날두가 골을 넣은 후 점프하며 반바퀴 돌고 “시(Si·‘그래’, ‘좋았어’ 등의 뜻)”라고 외치는 특유의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게티이미지]


포르투갈에서 유소년 시절을 비롯해 프로 원년을 보낸 호날두는 본격적인 전설의 첫 페이지를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쓰기 시작했다. 16세때 스포르팅에서 1군으로 승격된 호날두는 200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3대1의 스코어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호날두의 독보적인 플레이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의 눈에 들었다. 퍼거슨의 적극 추진으로 호날두는 2003-2004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당시 이적료는 1224만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175억원)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10대 선수로서는 최고액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호날두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는 등번호를 봐도 알 수 있다.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선수들인 데이비드 베컴,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등이 달았던 7번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 생각한다. 스스로 최고라고 믿지 않는다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결코 발휘할 수 없다.

2015년 BBC 인터뷰에서 호날두가 한 말

호날두가 보통의 선수들과 차원이 다른 면모 중 하나는 클럽의 이름이나 이적료 등 선수에게 중압감을 주는 요인들에 영향받지 않고, 적응기간 없이 이적 첫 해부터 제 활약을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선수들은 거액을 받고 명문 구단에 간 첫 해는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다소 위축되기 마련이다. “돈 값 못한다”는 팬들의 비판도 받고, 새로운 리그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야 제 기량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호날두는 이적 첫 해였던 2003-2004 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올해의 선수로 뽑힐 정도의 활약을 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는 호날두의 어머니가 간절히 바랐다는 이유에서, 호날두에게도 ‘꿈의 구단’이었던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 뛰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은 자타공인 호날두의 황금기이자 메시와 같은 리그에서 불꽃튀는 ‘엘 클라시코’(전통의 경쟁팀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이어갔던, 축구계 역대 최고 라이벌전의 시대였다. 이 기간에만 호날두는 발롱도르 2회, FIFA 올해의 선수상 2회, FIFA와 발롱도르가 통합된 FIFA 발롱도르를 2회 수상했다.

2018년 5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NSC 올림피스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한 뒤, 호날두가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게티이미지]


레알 마드리드 시절만 해도 호날두는 팀을 우승하게 하는 선수였다. 매번 상위 성적을 내지 못해 ‘16강 마드리드’로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달아준 날개 덕에 리그 우승 2회, UEFA 챔피언십 리그(UCL) 우승 4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2015-2016시즌부터 2017-2018 시즌에 이르기까지 UCL은 3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냈다. 이 덕에 8000만파운드(당시 환율 1650억원)의 이적료에도 “가장 비싼 선수가 실상은 가장 싼 선수다”라고 말했던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

2018년 유벤투스로 옮기면서 호날두는 이적료 1억500만유로(당시 환율 약 1350억원)에 연봉3000만유로로 끌어올렸다. 당시 운동 선수로서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는 33세였음에도 연봉은 레알 마드리드 시절 최대 2100만유로에서 3000만유로로 더 올랐다. 호날두는 이적 첫 해부터 2년 연속 유벤투스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유럽 전역에서 떨치던 호날두의 영향력은 다소 꺾였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유럽 최고의 클럽팀을 가리는 UCL 우승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호날두의 발롱도르나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도 없었다. 그러나 2021년도까지 유벤투스에서 뛰면서 호날두는 유럽의 4대 리그(영국 프리미어 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중 3대 리그를 석권했다는 기록을 썼다.

국가대표로서는 월드컵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유럽 국가들의 대회인 UEFA 유로 대회에서 포르투갈에 처음이자 유일한 우승을 안긴 바 있다. 유럽 국가들의 친선경기나 평가전을 정규 리그로 만든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도 2번 우승했다. 그러나 월드컵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는 점이 호날두의 화려한 기록에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메시와 호날두가 걸어온 길


축구계 넘어서까지 화제였던 ‘메호대전’


그는 외계인입니다. 지구인들과 함께 축구해주려고 자신을 헌신해주고 있어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잔 루이지 부폰이 201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메시를 향해

외계인, 축구의 신(神) 등으로 불리는 걸출한 선수를 동시대에 둘이나 보다 보니, 둘을 비교해 우열을 가리려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나온 것이 일명 ‘메호대전(메시와 호날두의 대전)’이다. 축구 선수나 지도자, 평론가들도 메시와 호날두 중 누굴 더 우위로 보느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초반에는 메시가 압도적으로 앞섰다. 둘을 비교하는게 호날두를 메시와 같은 급으로 끌어올려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란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호날두가 2013년부터 발롱도르 수상 실적에서 메시를 바짝 쫓으면서이 같은 의견은 쑥 들어갔다. 메시도 훗날 호날두가 자신의 수상 실적에 근접했던 2019년을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메호대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 쪽은 호날두였다. 오죽하면 경기에서 호날두의 멘탈을 흔들어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관중들이 메시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이었다. 클럽 경기는 물론이고, 국가대표로 나선 경기에서도 관중들이 “메시! 메시!”라고 외치면 그토록 단단하던 호날두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그나마 자신있을 때에는 “내가 잘생기고 돈이 많아서 질투하는 것”(2011년 디나모 자그레브 원정 경기가 끝나고)이라며 여유있게 반응했지만, 유럽 리그에서 밀려난 이후에는 다소 반응이 거칠어졌다. 202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에서 뛰고 있는 호날두는 2024년 리그 경기에서 상대팀 관중들이 메시를 연호하자, 관중들을 향해 외설적이고 모욕적인 제스처로 응수해 1경기 출전 정지에 3만 리얄(한화 약 1000만원)의 벌금을 받기도 했다.

호날두는 정말 환상적인 선수다. 그는 또 다른(another) 레벨이다. 호날두는 계속해서 축구 역사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인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적 생각으로 호날두는 다른 세계에서 온 선수 같다.

2019년 6월 포르투갈이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우승한 뒤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파울레타가 한 말

다른 레벨로 분류되는 실력과 승부욕 등을 제외하면 둘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이 보인다. 호날두는큰 키(187cm)와 농구선수 못잖은 점프력 덕분에 고공 플레이에서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는다. 반면 메시는 작은 키(169cm)를 오히려 완벽한 축구 기술로 승화시켰다. 작은 키 덕에 무게중심이 다른 선수들보다 현저히 낮다 보니 상체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교란시키는 바디 페인팅에 능하다. 좁은 보폭을 활용한 드리블은 ‘늘 공이 발에 붙어있다’는 관전평을 낳기도 했다.

2015년 1월 스위스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에서 열린 ‘2014 FIFA 발롱도르 갈라’에서 후보로 선정된 메시(왼쪽)와 호날두가 미소를 짓고 있다. [게티이미지]


메시는 바르셀로나 이후 PSG를 거쳐 현재 인터 마이애미에서 뛰고있지만, 여전히 ‘바르샤 원클럽맨(한 팀에서 줄곧 소속됐던 선수)’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바르셀로나와의 극적인 계약 이야기도 유명하고, 바르셀로나가 유소년부터 키워온 인재인데다, 가장 어려울 때 팀을 이끌어준 리더이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빅 클럽을 자주 옮겨다닌 ‘저니 맨(여행하는 사람처럼 팀을 옮겨다니는 선수)’으로 보여지는 것도 둘의 차이다. 여기에는 “내가 유벤투스에 합류했을 때 세리에 A는 죽어있는 리그(Dead)였다”거나 “잉글랜드(EPL)만이 유일하게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 스페인(라리가)이나 이탈리아(세리에 A) 등 다른 유럽 축구는 퀄리티를 많이 잃었다”는 등 자신이 뛰었던 리그도 비하하는 발언을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성격과 사생활도 정 반대에 가깝다. 메시는 내성적이어서 그와 라 마시아에서 함께 성장했던 ‘87년생 트리오’인 피케, 파브레가스는 그를 처음 본 이후 한동안 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호날두는 플레이 못지않게 외모를 꾸미는 것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쇼맨쉽을 타고난 경우다.

축구 선수의 아내는 소꿉친구이거나 모델이라는 속설이 있다. 메시는 전자다. 소꿉친구였던 아내와 오랜 연애 끝에 2012년, 2015년 아들을 본 후 2017년 결혼했고, 이후 2018년 막내 아들을 품에 안았다.

호날두는 후자에 가깝다. 패리스 힐튼, 킴 카다시안, 젬마 앳킨슨, 이리나 샤크 등 많은 모델, 방송인들과 염문을 뿌리다 2010년 혼외자로 첫째 아들을 봤다. 이후 2016년 구찌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조지나 로드리게스를 보고 구애해, 현재까지 사실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호날두는 첫째 아들 외에도 2017년 대리모를 통해 얻은 쌍둥이와 조지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등 총 2남 3녀를 두고 있다.

2014년 11월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아르헨티나 대 포르투갈의 친선 경기 시작 전 호날두와 메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게티이미지]


탈세, 팬과의 마찰…아쉬웠던 슈퍼스타의 대응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전 세계를 열광케한 두 전설이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숱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메시는 2013년 불거진 탈세 의혹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메시의 초상권 수익을 조세회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리는 수법으로 총 41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53억원)를 탈세했다는 협의였다. 재판 당시 메시는 “나는 축구만 했을 뿐, 재산 관리는 아버지와 변호사들에게 맡겨서 탈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에서도 축구를 하느라 필수 중등 교육도 받지 않은 메시가 탈세, 횡령 등의 수법을 알았겠느냐며 메시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스페인 대법원은 2017년 “메시가 자신의 의무를 알고 있었으며, 무지가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메시는 징역 21개월 및 벌금 200만유로(약 26억원)가 확정됐지만, 집행유예를 인정받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호날두는 ‘노매너(No manner)’ 논란이 잦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한창 삐걱거리던 2022년에는 경기를 마치고 나가려던 호날두가 자신의 부상 부위를 촬영하고 있던 12세 소년 팬의 손등을 강하게 내리친 일이 문제가 됐다. 자폐 장애가 있었던 소년은 호날두가 입장할 때 하이파이브를 했을 정도로 팬이었는데 호날두에게 맞아 손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 동안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휴대폰도 떨어지면서 파손되는 모습은 영상으로 남아 SNS에서 공유되며 팬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영국 팬들은 호날두에게 아동 학대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들끓었으나 경찰은 조사 끝에 주의 처분을 내렸고, 호날두는 2경기 출장정지와 벌금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피해 아동의 부모는 호날두가 자신의 행동을 잡아떼며 사과의 기미도 없었고,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 팬들에게는 ‘날강두’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사건이 있다. 2019년 7월 26일에 있었던 팀 K리그 대 유벤투스 FC와의 이벤트 경기에서 호날두가 출전한다고 광고를 해놓고, 끝내 출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당시 이벤트 주최사인 더페스타는 유벤투스와의 계약에 호날두가 45분 이상을 뛰지 않는다면 위약금을 지불하기로 했다며 호날두의 출전을 홍보했지만, 호날두는 끝내 출전하지 않았다. 아시아 행사가 끝나고 이탈리아로 돌아간 후에도 호날두는 자신의 SNS를 통해 중국 팬들에게는 인사를 건네면서,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아 핸들을 더 분노케 했다.

이 사건은 이벤트 주최사 더페스타에 대한 집단소송으로 이어졌고 원고가 완벽히 승소했으나, 더페스타가 파산하는 바람에 정작 배상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여년의 장기 집권…월드컵 ‘라스트 댄스’로 한 시대 마무리


지난해 12월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 체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MLS 컵 결승전에서 인터 마이애미가 우승을 차지한 후, 메시와 그 가족들이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메시의 장남인 티아고, 아내 안토넬라, 둘째 마테오, 메시와 막내아들 치로.[게티이미지]


보통 축구 선수의 전성기는 5~6년으로 잡는다. 둘은 무려 10년을 훌쩍 넘겨 20년 가까이 전성기를 구가해왔다. 세월이 흘러 메시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에서, 호날두는 사우디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40대의 나이에 이만한 기량을 유지하며 현역으로 뛴다는 것만 해도 ‘다른 레벨’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2010년대부터 축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논란’은 사실상 메시의 판정승으로 종결되는 분위기다. ‘펠레-마라도나-메시’로 축구 황제 계보가 이어졌다는게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고국이 같다는 점에서 늘 ‘제2의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받았던 메시를 향해 마라도나는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다”라는 말로 자신의 후계자임을 공인했다.

메시가 결국 GOAT 논란에서 우위에 선 배경에는 축구인 최고의 영예인 월드컵 우승이 크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 직후 FIFA의 공식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는 “The GOAT debate is settled. The ultimate prize is now part of the collection. The legacy is complete.”(GOAT 논쟁은 종결되었습니다. 궁극적인 상이 이제 콜렉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유산이 완성되었습니다.)라는 성명이 올라왔다. 안타깝게도 호날두에게는 아직 월드컵 우승컵이 없고,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우승컵을 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지난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미르술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알 나스르 입단식에서 호날두와 그 가족들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호날두는 막내딸까지 총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게티이미지]


올해는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우승 확률이 높은 후보군으로 꼽힌다. 포르투갈은 2티어 정도에 그친다. 둘의 개인 성적에서도 메시는 득점왕 순위에서 4~5위 정도, 호날두는 7~8위 정도를 할 것으로 점쳐진다. 득점왕, MVP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상되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는 호날두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호날두 키드’다. 레알 마드리드 입단식때 호날두가 했던 세리머니를 따라할 정도였다. 호날두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월드컵이 자신의 권좌를 대물림해주는 ‘후계자 대관식’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의 말처럼 공은 둥글고, 축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설혹 이번 월드컵에서 두 전설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 해도, 그라운드 너머로까지 넘쳤던 둘의 스타성은 한동안 더 화려하게 빛날 것으로 보인다. 메시의 자산은 11억달러(약 1조7000억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연봉 및 구단 계약 수익에 아디다스, 펩시코,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브랜드의 스폰서십, 호텔이나 음료 등 개인 사업이 이 같은 자산을 구성하고 있다.

호날두는 순 자산이 약 12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서 많게는 14억달러(약 2조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호날두는 연달아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커리어 누적 수입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호날두가 사우디리그로 옮기는 조건은 매년 약 2억달러(약 3000억원) 상당의 연봉이었다. 계약 당시 이는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연봉이었다. 호날두는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등과 함께 나이키와 종신 계약을 맺은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시계 브랜드 제이콥앤코 등 글로벌 기업들의 메인 모델로 활동하며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받고 있고, 자신의 이니셜과 등번호를 딴 ‘CR7’ 브랜드를 만들어 호텔, 패션, 생수 등 여러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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