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20년 전 경남 밀양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당시 수사과정에서 경찰에게 "더럽다", "먼저 꼬리친 거 아니냐" 등 2차 가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징계 조치 후 다시 수사라인에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9일 방송된 MBC 'PD수첩' 1425회에서는 '소녀는 없다 –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20년' 편에는 밀양 사건의 피해자 이수진, 수아(가명) 씨가 나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당시 비공개 약속을 깨고 자매의 인적사항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해 거주지역과 성씨, 나이 등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더욱이 경찰은 자매 중 동생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무시하고, '자매 성폭행'으로 사건을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노출된 공간에서 44명의 가해자들 앞에 피해 자매를 세워두고, 가해자를 지목하게 하는 대질신문도 진행했다.
언니 수진 씨가 가해자를 지목하자, 가해자들은 거친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이 경찰에 붙잡혀 온 모습. [JTBC 보도화면 캡처] |
이들은 가해자들을 피해 경찰서의 다른 장소로 이동했지만, 이번에는 경찰에게 2차 피해를 당했다.
수사관은 "너희가 꼬리친 거 아니냐", "내 고형이 밀양인데 밀양 다 흐려놨다" 등의 말을 했다.
또 다른 수사관은 동료들과 함께 노래방을 방문해 피해자 실명을 거론하면서 "더럽다", "밥맛 떨어진다"는 표현을 썼다. 이 같은 사실은 노래방 도우미가 인터넷에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재판 과정에서도 2차 가해는 이어졌다.
동생인 수아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가해자 측 변호사가 내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본인은 왜 성폭행을 안 당한 것 같으냐', '혹시 뚱뚱해서 안 당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징계 조치 후 모두 수사 라인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A씨는 수사 라인에 복귀해 울산경찰철 지능범죄수사대자까지 역임한 뒤 은퇴했다. 현재는 자치경찰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밀양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던 장영 기자는 이날 방송에 출연해 "당시 경찰은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자들을 영원히 수사라인에서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1년 후부터 모두 복직됐다"고 밝혔다.
장 기자는 "관련자 일부는 아직도 경찰에 몸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한공주’ 포스터. |
한편,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남학생 44명이 여자 중학생 1명을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한 일이다. 가해자들은 1986년~1988년생으로 범행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이들은 범행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신고하면 유포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검찰은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일부만 기소했고 나머지는 소년부에 송치하거나 풀어줬다. 기소된 10명도 이듬해 소년부로 송치돼 보호관찰 처분 등을 받는데 그쳤다.
가해학생 44명 중 단 한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이들에겐 전과도 남지 않았다.
밀양 사건은 영화 ‘한공주’, 드라마 ‘시그널’ 등의 소재로 다뤄지기도 했으며, 올해 일부 유튜버가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다시 공론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