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인 감독(왼쪽) |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tvN 토일드라마 ‘정년이’(연출 정지인/극본 최효비)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로, 지난 17일 종영했다.
‘정년이’는 종반부 서사 구조에서 호불호가 있었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여성국극 장르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며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종회인 12회 시청률이 마의 15% 벽을 돌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수도권 평균 17.1%, 최고 18.8%, 전국 평균 16.5%, 최고 18.2%, 2049 수도권 최고 5.3%, 2049 전국 최고 5.9%를 돌파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심하기도 했다.
‘정년이’ 최종화에서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재정난에 빠진 ‘매란국극단’이 여력을 모두 짜내어, 매란의 마지막 공연이자 지금껏 매란에서 보여준 적 없는 새롭고 실험적인 국극 ‘쌍탑전설’ 무대를 올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인 백제의 석공 ‘아사달’ 역은 정년이(김태리 분)에게 돌아갔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 영서(신예은 분)는 기꺼이 아사달의 재능을 동경하면서도 시기하는 석공 ‘달비’ 역을 맡았다. 그리고 정년이와 영서는 매란을 아끼는 모든 이들의 응원 속에 무대에 올라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고, 무대를 빛내는 모든 별들의 열정은 매란의 무대가 이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했다.
특히 정년이는 지금까지 ‘매란의 왕자’로 군림했던 옥경(정은채 분)과는 180도 다른,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라는 신선한 남역을 선보이며 ‘매란의 새로운 왕자’이자 무대 위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정년이’를 연출한 정지인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Q. 1950년대 우리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국극을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들게 된 데 대해 이번 연출을 통해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그래서 시즌2 등의 계획은?
아직 명맥을 이어가는 조영숙 선생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안산에서 여성국극을 올리고 장영규 음악감독님도 같이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국극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의 다음 시즌 계획은 없습니다.
정지인 감독 |
Q. 캐릭터들이 다들 살아있던데, 심지어 안타고니스트 영서, 빌런 혜랑까지 매력있게 만들었어요. 원작과 달라진 점과 좀 더 주안점으로 두신 점은요?
원작을 기반으로 하되 정년이를 중심으로, 사방형으로 관계성을 가지도록 최효비 작가님과 상의하면서 대본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아무래도 방대한 원작을 다 담을 수 없어 좀 더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 초점을 두었고, 매란국극단 생활을 중심으로 담았습니다.
Q. <정년이> 흥행에 대한 소김 및 가장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은 무엇인가요?
배우와 스텝들과 함께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물이 이런 큰 사랑을 받게 돼서 무척 기쁩니다. <정년이>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신 시청자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청자 반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극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집에서 이런 걸 돈 주고 봐도 되냐는 댓글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Q. <정년이> 연출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현대의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장르인 여성국극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가장 고민이 많았습니다.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우리 시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속의 관객과 시청자들이 동일한 선상에서 이런 기분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 촬영 전부터 배우, 스텝들과 함께 방향을 잡았습니다.
소재가 다소 낯선 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최대한 보편성을 띨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또한 원작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어떤 배우들을 만나야 더 큰 생동감을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다행히 김태리 님을 비롯해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배우들이 합류해 준 덕에 쉽지 않은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가장 공들여 촬영한 장면은 무엇이며, 어떻게 촬영했는지 비하인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총력을 기울인 건 국극 장면들이었습니다. 보통 주 2~4회의 촬영을 진행하면 나머지 날들은 배우들은 연습을 하고 나머지 스텝들은 틈틈이 국극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회의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국극 촬영은 카메라 리허설과 드레스 리허설을 본 촬영에 앞서 하루씩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무대 동선 확인, 카메라와 장비 동선, 조명 세팅, 의상과 분장 헤어 세팅 등을 보면서 본 촬영에서 수정 보완할 것들을 미리 확인했습니다.
본 촬영은 무대 위주의 촬영과 관객을 포함한 촬영, 그리고 CG용 관객 소스 촬영을 각각 나눠 진행했습니다. 보통 한 작품당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기간이 평균적으로 소요됐습니다.
국극을 제외한 촬영 중 가장 공들인 건 아무래도 10회 엔딩, 용례가 부르는 추월만정을 정년이 처음으로 듣는 장면이었습니다. 대본 상황에 적합한 장소를 촬영 시기에 임박해 겨우 구했고, 일출과 밀물과 썰물 시간대를 몇 달 전부터 계산해서 두 번에 걸쳐 촬영한 장면입니다. 한 씬을 이렇게 오래 준비해 찍은 건 연출하면서 처음 있는 경험입니다. 며칠에 걸쳐 찍으며 훌륭한 감정선을 연기한 두 배우 덕에 화룡점정을 찍으며 완성할 수 있던 장면입니다.
‘정년이’ 장면 |
Q.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김윤혜를 비롯해 배우들의 열연이 방영 내내 화제였습니다.이 같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떠셨는지요?
김태리 님이 쏟은 열정과 노력은 우리 작품을 떠받치는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순간이 올 때 정년이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신예은 님의 촬영 중 반전의 순간들도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종종 허영서와 신예은을 오가며 장난칠 때마다 다시 영서로 돌아오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속으로는 주머니 속에 넣어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라미란 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현신이었습니다. 단원들과 있을 때는 여고생같이 해맑게 있다가 촬영만 들어가면 어느새 소복으로 초 집중하는 모습에 수차례 반했습니다. 정은채와 김윤혜는 매란의 왕자와 공주로서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저 역시 온달과 평강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가 참 슬펐습니다. 둘의 마지막 무대가 드디어 끝났고 이제는 보지 못할 조합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습니다.
다시는 만나기 힘든 배우들의 조합이라 생각합니다. 이분들과 그 외의 모든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Q. 드라마 <정년이>가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소리 한 가락, 한 소절을 우연히라도 듣게 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인데, 아 정년이에서 나왔구나! 정도의 반응만 나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