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골프공도 피팅해서 사용합니다.”

어느 백돌이 골퍼의 분노의 집념
‘타미드’ 이승진 대표의 성공 스토리

타미드골프 이승진 대표

[헤럴드경제]오늘도 어김없이 백돌이었다. OB, 탑핑, 뒤땅, 쓰리퍼팅 등 초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라이벌 친구들과의 라운드였던 오늘만큼은 ‘백돌이는 면해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던 터였다. 이날을 위해 레슨도 받고 연습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결과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성적보다도 더 속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친구들보다 짧은 비거리였다. 짓궂은 친구 하나가 홀마다 ‘짤순이’라고 놀려대는데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골프가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인가’ ‘내가 운동 신경이 없는 것인가’ ‘골프가 원래 이렇게 어려운 운동인가’ 온갖 자책감에 시달릴 때쯤 골프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괜스레 골프공까지 원망스러웠다.

실의에 빠진 백돌이는 골프공을 원망하는 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이놈의 골프공! 도대체 속은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백돌이는 분노의 칼질을 시작했다. 공을 가위로 열어본 것이다. 막상 잘라보니 별것이 없었다. ‘아니 별것도 아닌 것이 날 이렇게 애먹인 거야?’ 그날 뒤로 백돌이는 골프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급기야 브랜드별로 공을 까보았다. 공의 구성물을 분리해서 튕겨보기도 하고, 불에도 달궈보고, 약품에도 담가보았다. 백돌이는 각각의 공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백돌이는 비거리가 많이 나가는 공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 백돌이 골퍼의 장난스런 행위가 취미가 되고, 직업이 되어버렸다.

골프공 개발자 이승진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2012년에 골프공 유통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2016년에 ‘타미드(주)’로 브랜드명을 변경하면서 골프공 제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타미드’라는 용어는 ‘영원하다’ ‘계속되다’ ‘지속하다’ ‘날마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이다. ‘골퍼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볼’이 타미드골프의 목표이다.

골프공의 피팅 시대를 연 타미드의 특허 골프공 시리즈

전 세계적으로 골프공을 만드는 공장은 많지 않다. 골프 천국인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10개 남짓, 3000개소 이상의 골프장을 보유한 일본에서조차 골프공 제조회사가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의아하다. 이렇게 골프공 제조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력과 자본력에 있다. 첫 번째 화학과 물리학 등 첨단 기술의 집합체가 바로 골프공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두 번째 지속적인 생산을 위한 각종 기계와 장비 구축 그리고 개발 및 마케팅 비용은 대기업이 아니라면 버티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 이승진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가 이끄는 타미드골프 역시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골프공 제조에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벤치마킹할 곳도 없었다. 장비 하나 구축하는 것도 소자본 창업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업 자금이 뒤받쳐주지 못할 때마다 폐업을 고민해야 했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마저 ‘미친 거 아니냐’라며 사업을 만류하기도 했다. 이승진 대표는 골프공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다면 이미 백번이고 폐업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

타미드골프는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며 2019년에 마침내 국내 3번째로 경기도 하남시에 골프공 100% 자체 생산이 가능한 제조공정을 구축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2024년도 3월, 포천시에 2000평 부지를 마련하여 확장 이전에 성공했다. 이제는 1년에 약 1500만 개 이상의 공을 만들 수 있는 대규모 생산력과 기술력을 갖추었다. 이는 동종 기업의 몇십 년 노하우를 단 몇 년 만에 이뤄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경기도 포천시에 자리한 타미드골프 공장 전경. 연간 약 1500만 개 이상의 공을 생산한다.

사실 이승진 대표는 골프공 제조와는 무관한 전공자이다. 이과 계열의 전공도 아닌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증권회사를 다녔고 이후 골프샵 운영 및 골프용품 유통 일을 했다. 그러다 백돌이의 서러움에 못 이겨 생각지도 못한 골프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골프공 개발에 남다른 재미를 느꼈다. 밤을 지새워 연구에 몰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골프공의 핵심은 공의 가운데 부분을 구성하는 코어에 있다. 이승진 대표는 코어 개발에 온 힘을 다했다. 하나의 상품 개발을 위해 2000번 이상의 실험을 진행했다. 공 만드는 공장은 이 대표의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이승진 대표는 타미드 공을 출시한 이래로 4개의 특허, 80여 개의 디자인 및 상표 등록을 달성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오렌지, 레몬, 체리 향 등으로 구성된 향기나는 공 시리즈이다. 인삼향, 아로마향 등 구매자가 원하는 향기로써 맞춤 개발도 했다. 이런 과정으로 타미드골프는 특성화된 골프공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고반발 코어를 개발하여 20m 이상 비거리가 더 나가는 공을 만들기도 했다. 이승진 대표의 과감한 도전과 추진력 있는 실행 정신은 서서히 성과로 나타나면서 업계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프로 골퍼에게 공을 후원하면서 KL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2회 우승(김서윤, 배수현), K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3년 연속 우승(‘부산 갈매기’ 신용진)이라는 쾌거를 이룩하며 타미드 공이 공인구로서 손색이 없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승진 대표는 시장 범위를 국내로 한정하지 않았다. 2024년 9월, 일본 수출에 성공하여 해외 시장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올해 2월에는 일본 현지에 타미드재팬골프 판매 법인을 설립하였고 이후 3월에는 ‘도쿄 JAPAN GOLF FAIR’ 박람회에 참가하여 신제품을 공개하는 등 일본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승진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 출원한 신제품 기술 특허를 미국과 일본에 출원 신청을 하였고, 일본 시장을 필두로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 전 세계 국가에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승진 대표의 집념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골프공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지난 10여 년의 세월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템을 고안하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스윙 스타일과 헤드 스피드에 따라 골프채를 맞춤해서 사용하듯이 골프공에도 피팅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이승진 대표는 실력 수준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공을 선택하여 비거리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표의 특별한 아이디어는 이번에 출시된 F 시리즈로 구현되었다.

타미드골프는 일본 등 해외 수출의 길을 열고 있다. 컨테이너에 실린 타미드 골프공

F 시리즈는 F1(40g), F2(42g), F3(44g), F4(46g 이하) 등 4가지 무게 옵션으로 구성된 맞춤형 피팅 골프공이다. 가장 가벼운 F1은 드라이버 캐리 140m 이하인 여성 골퍼 및 초보 골퍼에게 적합하고, F2는 드라이버 캐리 180m 이하인 골퍼에게 적합하다. F3는 드라이버 캐리 210m 이하 및 80대 스코어를 기록하는 중상급자에 적합하고, 마지막 F4는 드라이버 캐리 210m 이상, 헤드 스피드가 빠른 싱글 핸디캡퍼에게 적합하다. F4는 상급자용으로서 쓰리 피스로 제작되었으며, 공인구 기준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어 공식 대회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F 시리즈에 적용된 모든 기술은 이미 특허 출원이 완료됐고, 상품화를 위한 모든 테스트를 마친 상태이다.

F 시리즈는 이승진 대표의 백돌이 시절 친구들로부터 받은 분노와 아픔이 서린 결과물이다. 이 대표는 만년 백돌이 백순이들의 아픔, 짤순이들의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F 시리즈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비거리 증대만 위한 공이 아니다. F 시리즈는 철학이 있는 골프공이다. F 시리즈는 골프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절망에 빠진 골퍼들을 위로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처방이자 선물이다. 이 대표 역시 골프공을 개발해오면서 골프 실력이 좋아졌다. 자신이 직접 만든 공으로 비거리가 늘면서 스코어도 좋아졌다. 지금은 80대 초반 수준의 실력으로 백돌이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비거리 증대는 골프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골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친구들에게 항상 뒤처졌던 비거리도 이제는 더 이상 뒤처지지 않는다.

이승진 대표가 F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밝힌 출사표가 사뭇 비장하다. “맞춤형 피팅 기술은 골프공도 ‘피팅’이 가능한 시대를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골프공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왔습니다. 나에게 딱 맞는 골프공을 찾는 것은 골퍼의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골프공의 혁신은 히브리어 ‘타미드’의 의미대로 타미드골프를 통해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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