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돈 있어도 못 뺀다…치매안심·유언대용신탁으로 대비해야

치매·뇌경색 후 예금 있어도 가족 인출 불가
금융실명제·본인확인 등 절차 까다로워
유언장 있어도 은행 상속인 전원동의 요구
올해부터 사망자 계좌 동결 ‘월→일’ 단축
부모 자산동결 막는 사전 대비책 준비해야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보험료는 약 490만원(2022년·보험개발원). 매달 성실하게 내는 돈을 더 값지게 쓰기 위해. ‘이’왕 낸 ‘보’험료를 ‘소’중한 우리 인생에 ‘이보소’.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함]


# 직장인 김모(45) 씨의 아버지(77)는 1년 전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병원비 월 300만원에 간병비 월 400만원이 나왔다. 보험금 5000만원을 받아 버텼지만 7개월여 만에 바닥이 났다. 아버지 명의 예금 계좌에는 7억원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의 답변은 단호했다. “본인이 직접 오셔야 합니다.” 어머니(73) 예금 1억원까지 깎여나가기 시작했고, 김 씨 남매 셋은 각자 돈을 모아 병원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부모가 평생 모은 자산이 하루아침에 ‘묶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치매처럼 서서히 찾아오는 경우뿐만 아니라, 뇌출혈·뇌경색 등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의식을 잃으면 금융실명제와 본인 확인 절차라는 제도의 벽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가족이 한 푼도 꺼낼 수 없다.

사망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유언장을 써뒀어도 은행은 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요구하고, 올해부터는 사망자 계좌 동결이 월 단위에서 일 단위로 빨라진다.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시대. 김 씨 남매도 방법을 찾아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기로 했다.

Q.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통장에서 돈을 꺼낼 수 없습니다. 왜 가족도 안 되는 건가요?

A. 금융실명제와 엄격한 본인 확인 절차 때문입니다. 환자의 돈이 금융기관에 있더라도 가족이 대신 예금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치매의 경우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임의 후견이든 성년 후견이든 후견 제도를 활용해 대비할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뇌출혈이나 뇌경색,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처럼 한순간에 의식을 잃는 경우가 더 위험합니다. 병원비가 수천만원이 나오더라도 금융기관에 돈이 있다 해도 가족이 대신 꺼낼 수 없습니다. 돈은 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김 씨처럼 자녀들이 본인 돈을 모아 해결해야만 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Q.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때는 바로 돈을 꺼낼 수 있나요?

A.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상속인 전원이 가야 받을 수 있습니다. 민법 제1006조 ‘공동상속과 재산의 공유’에 따르면 상속인이 여러 명일 때 상속재산은 공유합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금융재산은 법정 상속분대로 나누면 되지만, 현실에서 금융기관은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상속재산과 관련해 유언이 있거나 특별수익, 기여분 등에 의해 지분이 법정 지분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 지분대로 예금을 지급했다가 나중에 다른 상속인으로부터 이의 제기나 소송을 당할 수 있으니, 은행들은 내부 절차를 이유로 예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소액인 경우 일부 예외가 있습니다. 상속예금 합계 금액이 300만원 이하인 경우 상속인 1인이, 1000만원 이하인 경우 상속인이 3인 이상이고 과반이 동의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속인 간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소액이라도 처리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Q. 아버지가 유언장을 써뒀다면 그걸로 되지 않나요?

A. 안타깝게도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막내아들에게 예금을 다 주고 싶다”라고 유언장을 작성하더라도 금융기관에서는 실무적으로 예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법 제1108조에 따르면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고, 기존 유언이 있더라도 다른 내용의 유언이 나중에 있으면 기존 유언은 법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그런데 금융기관에서 유언(공증)이 유효한지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유언(공증)장을 제시해도 금융기관은 유언장이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하는 것이 실무입니다. 특히 금액이 많을수록 전원 동의서를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Q. 올해부터는 사망자 계좌 동결이 더 빨라진다는데?

A. 맞습니다. 올해부터 행정안전부가 전국에서 수집한 사망자 명단을 신용정보원을 통해 금융권에 매일 전달하는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에는 한 달 간격이었는데, 일 단위로 단축된 것입니다. 사실상 사망신고 다음 날 금융계좌가 전면 동결됩니다. 이는 보이스피싱 인출통장 악용이나 각종 보조금 부정수급 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반대급부도 있습니다. 소액 유산으로 장례비나 생활자금을 처리하던 관행이 사라지면서 유가족의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망인이 원하는 가족에게 예금을 주고 싶거나 장례비·병원비에 사용하게 하고 싶어도, 상속인 전원의 협의가 끝나지 않으면 불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Q. 저희 남매 셋은 사이가 좋은 편인데, 상속 때 문제가 생길 일이 있을까요?

A. 상속인 사이가 좋으면 망인의 유지를 받아 사이좋게 나누거나 자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놀라실 겁니다. 대법원이 지난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상속재산 분할 소송이 3075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3.6배나 폭증한 수치입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소송의 82.7%가 상속 재산 1억원 이하 분쟁이라는 점입니다. 2000만원 이하를 두고 다투는 경우도 절반이 넘습니다(51.7%). 상속 분쟁은 재벌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공평하게 나누면 될 것 같지만 그 ‘공평함’이 오히려 다툼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상속예금이 3000만원이고 자녀 셋이 있다면 각 1000만원씩 나누면 될 것 같지요. 그런데 만약 자녀 중 한 명이 생전에 3000만원을 증여받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총 상속재산은 남은 3000만원에 사전 증여분을 포함해 6000만원이 되고, 셋이 2000만원씩 가져가야 합니다. 미리 받은 자녀는 이미 초과해 받은 셈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변수 때문에 금융기관이 법정 상속분대로 지급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상속인 간 다툼이 있으면 돈을 받을 방법이 없나요?

A.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민사법원에 예금 지급 소송을 내거나, 공탁금 출금 청구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내용증명에 법률의견서를 첨부하여 구체적으로 분쟁의 여지가 없다고 설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금융기관에 전원이 방문하지 않고 받으려면 대표자가 서류를 갖추면 됩니다. 내점한 상속인의 실명확인증표, 피상속인의 가족관계증명서(상세)와 기본증명서(사망사실 기재), 미내점 상속인의 위임장 및 인감증명서 등이 필요합니다.

다만 어느 방법이든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이런 자산동결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치매안심신탁과 유언대용신탁이 대표적인 사전 대비책입니다.

치매안심신탁은 치매에 걸려 판단력이 흐려졌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자녀가 내 통장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이 병원비나 간병비를 직접 지급하도록 설계할 수 있어 자녀들이 경제적 부담을 갖지 않게 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사후에 상속인 전원의 동의가 없어도 신탁계약 내용에 따라 지정된 사람에게 즉시 자산을 지급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은행에 유언장을 가져가도 거절당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사전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김 씨 아버지가 지속적인 치료 끝에 건강이 호전돼 의사표현과 거동이 도움을 받으면 가능한 상태까지 회복했다면 후견신탁이 가미된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해, 예금 7억원에서 병원비와 간병비를 직접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호전되지 않았다면 예금 7억원을 쓸 수 없고, 어머니 예금까지 모두 소진한 뒤 자녀들이 계속 병원비를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돼 건강 호전 자체가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건강 호전을 위해서라도 신탁의 활용은 다방면으로 도움이 됩니다.

Q. 유언대용신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할 수 있나요?

A. 보험상품처럼 일정 금액을 넣으면 얼마가 나오는 정형화한 상품이 아닙니다. 개인 상황에 맞춰 설계하는 맞춤형 계약입니다.

김 씨 아버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예금 7억원을 신탁에 맡기고 병원비 300만원과 간병비 400만원, 합계 월 700만원을 지급하는 구조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추가 의료비가 발생하면 지정수익자에게 상속인 전원 동의를 받고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하고, 이런 추가 지출이 없다면 약 100개월, 8년여 동안 본인 자금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100개월 후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보유 주택을 매각해 추가 자금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처분신탁도 유언대용신탁 안에 함께 계약서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설계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변수의 해결방안까지 담으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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