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전 학생들, 출근 전 ‘넥타이부대’…식지 않는 ‘투표지 분노’

올림픽공원 집회 닷새째 이어져
경기장내 개표 투표함·용지 그대로
지난 저녁 집회 3000여명까지 늘어
밤 지새운 참가자도 곳곳 눈에 띄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는 시민들이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설치된 개표소 앞에서 재선거를 촉구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해 올림픽공원에 모인 집회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평일 오전 9시께 집회 참가자는 100여명 수준으로, 한눈에 봐도 적은 숫자로 줄었다.

하지만 전날에는 오후부터 무섭게 불어난 점을 볼 때 오후와 저녁 시간을 즈음해 다시 세를 불릴 가능성도 있다. 전날 밤에는 퇴근한 ‘넥타이부대’까지 합세해 저녁 시간 3000명 가까운 인파가 모이기도 했다.

9일 오전 9시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집회 참가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직접 셀 수 있을 정도의 인원으로, 약 120명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부정선거 재선거”, “사전투표 수개표” 등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이들은 줄어든 집회 참가 인원 수를 의식한 듯 넓게 펼친 대형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 옆에서는 밤을 지새운 이들이 돗자리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시간이 되는대로 출근 전에 잠시 자리를 채우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주말과 전날에는 휴가까지 내고 자리를 지키다가 출근한다는 박모(37) 씨는 “이제 출근한다고 일어나니 고생했다고 주변에서 박수를 쳐줬다”며 “여기 화장실은 있는데 씻을 곳이 없어서 씻지 못해서 머리가 기름졌다”고 말했다.

수업 전 잠깐 들른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원생 김성윤(26) 씨는 “곧 대학원 수업에 가야 한다”며 “최대한 머무를 수 있는 만큼 참여하려고 한다”고 했다.

투표권은 없지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온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근처 동북고등학교 2학년인 김모(18) 군과 친구는 “오전 5시부터 나와 있었다. 부모님은 일찍 나가서 공부하는 줄 아신다”며 “학교는 8시까지 가고 저녁엔 학원에 가야 해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김군은 “사회탐구 과목에서 참정권은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기본적인 것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면서 “아침은 이곳 트럭에서 주는 어묵 꼬치 3개로 대신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이 적은 오전에 자리를 채우기 위해 왔다는 주부도 있었다. 천안에서 온 50대 최모 씨는 “직장인들은 출근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니 나 같은 사람이 아침에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자리를 조금이라도 지키려고 아침에 일부러 더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에는 인파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전날도 오전에는 약 150여명 정도의 인원이 집회를 이어갔지만 저녁에는 3000명 가까운 인원으로 늘어난 바 있다.

지난 8일 오후 6시께 약 2700명(경찰 비공식 추산)이 집회 장소에 모인 후 집회 참가 인원은 계속 늘어났다. 퇴근 시간이 넘자 올림픽공원역으로 정장 차림이나 출근할 때 입었던 차림을 한 직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구호도 하지 않고 어색한 듯 서있던 이모(36) 씨는 “살면서 집회는 처음 나와본다”며 “딸한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나왔다. 일산에서 퇴근 후 저녁도 거르고 이쪽으로 왔다”고 말했다.

낮 동안 일정을 마치고 집회 현장에 온 건 직장인뿐만 아니었다. 연세대 3학년 박모(24) 씨는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 왔다”며 “사람이 많이 모여야 의견이 전달될 거라고 생각해서 왔다”고 했다.

박씨는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일부 반발하는 의견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대체로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다”고 학내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직장인 안모(30) 씨는 “낮 동안 틈틈이 집회 현장 기사를 확인했다. 목소리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시들하게 사라질까봐 걱정이 돼서 퇴근하자마자 왔다”며 “집회가 이어지는 한 저녁마다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한 집회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이날 기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경기장 내부에 개표가 끝난 송파구 투표함 380여개와 투표용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모두 철수한 상태로 전해졌다.

경찰도 경찰 기동대를 배치해 돌발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동대 350여명 수준을 유지하며 현장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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