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초스피드 전개가 먹힌다?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전개다. 극중 인물이 “납치해버릴까”라고 말하면 바로 납치에 돌입하고 다음 회로 넘어가기 전에 상황이 종료된다. ‘아내의 유혹’이 불황기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송사에 많은 광고수익을 올려주자 많은 드라마 제작자가 혼란에 빠졌다. 앞으로의 드라마 제작 스타일을 ‘아내의 유혹’의 초스피드에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한 중견 드라마 PD는 “‘아내의 유혹’에 황당한 설정이 없지 않지만 많은 시청자가 즐긴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드라마 제작방식이 잘못된 것인지 헷갈린다. 대중이 그런 스피드에 맞을 정도로 바뀌었는지 현재 공부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드라마 PD도 “김순옥 작가가 MBC ‘그래도 좋아’에서 히트할 때만 해도 ‘아침드라마니까 성공했겠지’라는 생각만 했는데, 일일극에서도 김 작가의 극히 빠른 전개와 자극성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많은 연출자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했다.사실 드라마의 전개 속도는 전반적으로 빨라졌다. 느리면 시청자가 지루해한다. 워낙 급한 성격의 한국 시청자에게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주는 구조가 먹혀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유럽 국가의 드라마는 한국 사람에게는 느려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게다가 긴박감 있는 ‘미드(미국 드라마)’도 영향을 끼쳤다. ‘미드’의 시즌1에서 죽은 사람을 시즌3에서 살려내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몰아서 보면 더욱 재미있다.
 
‘아내의 유혹’의 일주일치(5편)를 재방송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하지만 너무 빠른 스토리 진행은 곳곳에서 흠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문제점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을 뿐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바퀴를 너무 빨리 돌려 바퀴살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서 “달리다 수레바퀴가 잠시 멈추면 비로소 문제가 드러난다”고 말했다.이야기의 인과관계의 완성도를 저버리고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는 드라마는 디테일한 감성과 드라마의 향기나 정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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