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뮤직비디오 열풍, 음악과 영상의 이 만남은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 싱어송라이터를 중심으로 음악과 책의 만남이 활발하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가사가 주류를 이루고, 요즘 자극적인 한두 단어보다는 전체 가사를, 노래 한 곡이 아닌 앨범 전체의 구성을 중시하고, 책과의 만남을 통해 메시지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지난해 11월 단편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펴내 넉 달 만에 16만부를 팔아치우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 그가 리더로 있는 에픽하이는 27일 ‘혼(魂: Map the Soul)’이라는 제목의 ‘북앨범’을 발매한다. 이름처럼 책과 음반을 통일성 있게 엮어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에픽하이는 “음악은 에픽하이가 결성 초기에 선보이던 힙합의 정통에 충실하면서도 가사 면에서 보다 세련되어졌다”고 설명했다. 책의 형식을 띠는 만큼 노래 속의 가사에 더 충실했다는 얘기다. 수록곡들은 한글과 영어 두 가지 가사 버전으로 만들어져 있고, 책 부분 역시 그렇다. 책 부분은 ‘창작’이라는 부제로 앨범의 시작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을 수필과 사진 등으로 실려 있으며, 책의 마지막 표지 안쪽에는 노래가 담긴 CD가 들어 있다. 책 속에 가사가 수록된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이 앨범을 단순한 음악앨범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앨범을 에세이와 자신이 찍은 사진집을 넣은 다이어리 형식으로 발매한 ‘여행스케치’도 온전히 서적으로 분류될 수는 없지만 책 형식과의 접점을 찾은 예다. 아티스트의 감성과 메시지를 담되 부담스럽지 않게 여백을 많이 두어 다이어리로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음악앨범이 책에 다가간 사례와는 반대로 책이 음악의 콘텐츠와 디자인을 따온 예도 있다. 이영훈 추모 1주년을 맞아 출판된 ‘광화문 연가’(사진)는 그가 생전에 남긴 글과 가사를 모아 LP판 형식으로 나왔다. 실제 LP판은 아니지만 디자인을 통해 음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내용에서 한번 더 그의 음악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지난해 말 CF에 삽입된 곡으로 유명해진 그룹 더블유앤웨일(W&Whale)의 앨범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책의 외형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수록곡 16곡을 듣다 보면 한 편의 스릴러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 앨범의 장르는 이렇다’고 규정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하나의 주제를 통해 엮은 것.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사이렌, 발자국 소리 등을 이용해 긴장감을 주며 마치 뒤가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듯 16곡을 끝까지 듣게 만드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더블유앤웨일은 “한 편의 영화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주려 했다. 중간의 한 곡만 들어서는 발췌독하는 것과 같이 전체의 느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앨범이 쪼개져 한두 곡 들어 있는 디지털 싱글로, 또 쪼개져 휴대전화 벨소리의 30초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파편화되는 현상에 역행하는 시도다. 최근 이한철도 앨범 한 편 속에 다양한 장르를, 하지만 이국적인 느낌과 따뜻함이라는 주제를 가진 앨범을 발표했다. 역시 전체를 들어보면 일본과 한국, 유럽과 중남미 등의 여행 에세이를 귀로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음악과 책의 만남은 팬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창구가 될 뿐 아니라 앨범의 완성도 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외면받지 않는다면 어려운 출판과 가요계에서 긍정적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세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