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인터뷰] 이와이 슌지의 새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감각적인 영상 미학을 선보여 온 이와이 슌지(52) 감독이 특별한 ‘러브레터’를 들고 찾아왔다. 이번엔 애니메이션이다. 개봉을 앞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2004년 영화 ‘하나와 앨리스’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 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격 작품이다. 이와이 감독은 연출부터 각본, 원작, 음악까지 무려 1인 4역을 해냈다. 그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을 준비한 계기와 촬영 과정, 자신의 연출관 등에 대해 털어놨다.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기보다, 미처 찍지 못한 부분을 이어서 찍는 듯 했어요. 잠시 멈춰 있던 것을 다시 움직인 듯한 느낌이었죠. ‘하나와 앨리스’가 완성됐을 당시, ‘그 이야기 전에 두 사람은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이듬해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의 각본을 완성했죠. 물론 그 전부터 애니메이션을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전학생 앨리스(아오이 유우)의 학급에 퍼진 미스터리한 소문과 등교를 거부하는 소녀 하나(스즈키 안)의 비밀스러운 속사정, 그리고 두 소녀의 첫 만남을 그린 영화다. 실사 촬영한 화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는 로토스코핑 기법 등을 동원해 사실감을 더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물론 그 시기 다른 작품의 각본, 연출, 제작 등도 겸했다) 그는 “작업이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며 “손으로 직접 캐릭터 얼굴을 비슷하게 그려야 될 때가 힘들었다. 또 실사에 가까운 3D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에 가깝게 작업하는 일이 까다로웠다”고 토로했다.


그가 낯선 애니메이션 연출을 고집한 데는 스즈키 안과 아오이 유우, 두 배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한 몫을 했다. 두 사람이 아닌 하나와 앨리스를 감독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20대 후반~30대에 접어든 배우들이 중학생을 연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목소리 연기라면 가능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선택지는 애니메이션 연출 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배우 모두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스즈키 안은 “대본을 읽자 당시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소감을 전했다.

국내 관객들에게 이와이 슌지는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등의 대표작으로 친숙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영상, 서정적인 분위기의 영화 만을 만들어 온 감독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사실 그는 ‘언두’(1994), ‘피크닉’(1996)부터 최근 ‘뱀파이어’(2011)까지, 고독하고 염세적인 정서의 작품도 수시로 내놨다. 어떤 색깔의 영화에 조금 더 애정을 품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려는 목표는 모든 영화가 같다”고 설명했다.


“소소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순간을 영화에 담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그 순간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게 아쉽죠. ‘러브레터’와 같은 사랑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영화고, ‘뱀파이어’는 어른들이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둘 다 같은 순간을 담고 있어요. 누구의 언어로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을 바라보려고 한다는 점은 같아요.”

마냥 청년 같았던 이와이 감독도 5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의 80%는 영화를 준비하는 데 쓴다고 말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사실은 지친다. 관객들이 보시기 때문에 편하게 영화를 만들 수 만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흥미를 느끼는 소재는 역시 ‘사랑’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지난 해 11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그의 신작은 또 어떤 ‘빛나는 순간’을 담아냈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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