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보다 무서운 사이버 학교폭력 1-2> 빠져나올수 없는 감옥, 사이버감금

[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서울에 사는 고등학생 윤경현(17ㆍ가명) 군은 요즘 같은 학교 일진인 전도한(17ㆍ가명) 군이 만든 감옥에 살고 있다. 전 군은 매일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카톡)’ 채팅방으로 윤 군을 초대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단체로 윤 군에게 욕설을 쏟아낸다.

윤 군은 이 채팅방에 초대되지 않기 위해 전 군 등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들을 카톡 목록에서 차단했다. 하지만 전 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친구의 스마트폰에 윤 군의 전화번호를 등록한 뒤 윤 군을 다시 채팅방으로 초대하는 방법을 되풀이하며 윤 군을 괴롭혔다.

윤 군이 채팅방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다시 카톡에 접속해 채팅방의 수많은 욕설을 본 뒤 ‘나가기’ 버튼을 눌러야 한다. 특히 카톡을 안 할 수도 없다. 윤 군의 반 모든 친구들이 속한 단체채팅방에 올라오는 글을 보지 못하면 정말로 외톨이가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카톡을 이용해 친구를 괴롭히는 ‘사이버감금’ 행위가 판을 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이버감금은 카톡 채팅방에 초대 후 인신공격, 욕설 등을 하면서 피해자가 방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나가더라도 강제로 다시 들어오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사진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스토리(카스)’를 통해서도 사이버감금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한 학생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사진은 특정사건과 관계가 없으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출된 사진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초등학교 6학년인 김지현(12ㆍ가명) 양은 최근 단짝친구 5명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김 양이 얼마 전 같은 반 한 친구에게 ‘쓰레기를 대신 버려달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이 사실이 단짝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왜 친구를 부려먹냐’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이후 5명의 친구들은 김 양의 카스에 욕설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친구맺기’를 통해 김 양의 친구로 등록돼 김 양의 카스에 글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카스 친구끼리는 ‘필독’ 설정을 통해 특정 게시물을 강제로 보게 할 수 있는 메시지 수신 알림을 보낼 수 있다. 이들은 이런 필독 기능을 이용해 김 양에게 욕설게시물을 보내고 있다. 보기 싫으면 강제로 보게 하겠다는 사이버감금이다.

헤럴드경제가 열린의사회와 함께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모바일 학교폭력 상담프로그램 ‘상다미쌤(상담 선생님을 친근히 부른 말)’을 통해 청소년 사이버 폭력 621건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사이버폭력중 11%(69건)가 카톡이나 카스 등 SNS를 통한 ‘사이버 감금’이었다. 이같은 사이버감금은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어, 학부모, 교사 모두 카톡과 카스가 사이버감금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학부모 장모(41ㆍ여) 씨는 “우리 아이도 카톡과 카스를 사용하지만 이런 SNS를 이용한 사이버감금 행위가 있다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30) 씨는 “최근 카톡 폭력 등으로 상담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데, 사이버감금 행위는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사이버감금에 고통받던 청소년이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 8월 중순께 서울 송파구에 사는 A(16) 양은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양은 자살하기 20분 전 카톡 채팅방에서 학교친구 10여명이 퍼부었던 욕설의 캡쳐 화면을 부모에게 전송했다.

이유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이들 생활에서 스마트폰과 SNS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기존 교실 내 폭력만큼 사이버 학교폭력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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