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해야 할 설에 무너진 가족

7명의 자녀가 외면한 구순 노인의 쓸쓸한 죽음, 어머니의 꾸지람에 집에 불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한 아들, 제사문제로 형 공장에 방화한 동생….

헤어졌던 가족이 오랜만에 재회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은 누군가에겐 가장 행복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장 불행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번 설 명절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잇따랐다. 각종 사건ㆍ사고에서 가족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날이었던 지난 31일 서울 응암동 자택에서 홀로 살던 A(91)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응암1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A 씨는 자녀 7명이 있었지만 왕래 없이 혼자 지내왔다. A 씨는 평소 이웃들에게 “자녀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또 “A 씨는 10만원짜리 단칸 월세방에서 홀로 살았으며 평소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즐겨 찾았고, 최근에도 건강이나 거동에 큰 불편이 없었다”고 주민센터 측은 설명했다. 주민센터와 지난 1일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넷째아들(57)은 3일 서울에 올라와 장례를 치르겠다는 뜻을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만취한 고등학생이 어머니가 꾸짖자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가 숨지는 비극도 벌어졌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집에 불을 지르고 어머니(43)를 숨지게 한 B(18) 군을 존속폭행 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B 군은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부모가 명절을 쇠러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비어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이날 서울로 올라와 이를 꾸짖자 B 군은 어머니를 벽에 밀치는 등 폭행하고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연기에 질식한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지난 31일 사망했다.

범행 당시 B 군은 만취 상태였으며 “잔소리를 듣고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친형이 제사를 안 지낸다며 공장에 불을 지른 40대도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 흥덕경찰서에 따르면 C 씨는 지난 1일 오후 6시40분께 흥덕구 자신의 친형(54)이 운영하는 한 공장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75㎡를 태운 뒤 88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C 씨는 형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제사조차 제대로 지내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년 설 연휴 직후 배우자를 상대로 한 이혼소송이 급증한다는 통계도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2월 9일~11일) 다음달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3581건으로 전월 대비 14.5%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지난 2009년 이후 5년째 반복됐다. 2009년은 4086건으로 23.9%, 2010년은 4223건으로 28.0%, 2011년은 4229건으로 37.5%, 2012년은 3755건으로 16.7% 각각 전월 대비 증가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이혼하기 위한 협의이혼의사확인 신청 건수 역시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지난해 설 연휴 다음달에 신청된 협의이혼은 1만1457건으로 전월 대비 6.9% 증가했다. 2009년 20.4%, 2010년 21.1%, 2011년 20.5%, 2012년 14.7%로 5년 평균치는 16.7%였다. 이는 명절의 부부갈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조경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설 연휴 여성에게 가사가 집중되면서 갈등이 표출된다. 상담 건수도 연휴 직후 급증한다”고 말했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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