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두루 둘러보며 여행 하고싶다”
인터뷰서 나타난 할배의 여행철학
명소탐방도 여유 즐기는 것도 존중
여행예능 ‘꽃할배’가 오래가는 비결
여행이란 ‘일상과 낯설게 하기’다. 익숙해진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을 접하게 되면 느낌이나 생각도 새로워질 때가 있다.
여행을 가는 방법도 승용차를 몰고 가던 방식을 바꿔 기차를 타고 가거나, 항상 똑같은 고속도로 대신 국도와 지방도를 이용해 마음에 드는 시골의 장소가 눈에 띄면 차를 세워 쉬어가는 방식을 택하는 게 여행이 제공하는 ‘선물’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느긋하게 국도와 지방도를 다니다 보면 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배낭 여행 예능 버라이어티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tvN ‘꽃보다 할배’를 보면 여행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다.
여행은 명소 둘러보기가 기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에서 백일섭 할배는 조금 다르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 가보고도 제대로 구경하지 않았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소녀시대 써니의 힘에 이끌려(?) 둘러보았지만 유명한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다. 이 점에서 이순재, 신구, 박근형 할배와 차별화된다.
명소를 둘러보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다리 관절이 좋지 않은 백일섭 할배는 걷는 게 힘들다. ‘꽃할배’ 첫 여행지인 파리의 지하철에서 장조림 통을 던지는 백일섭 할배는 그런 상황을 한 눈에 보여줬다.
지난 4일 방송된 스페인편 5화에서도 백일섭 할배는 다른 할배들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세비야 대성당과 절경으로 유명한 론다를 가기 위해 일찍 준비를 하는 동안 혼자 쉬고 있었다. 그러다 나홀로 거리로 나서 일식집 ‘스시클럽’을 찾았다. 혼자 유유히 다니는 백일섭 할배에게 제작진은 “백일섭 선생님은 왜 여행을 가는지 모르겠다는 시청자 의견이 있는데…”라고 물었다.
이에 백일섭은 “목적을 향해 쭉 나아가는, 직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도 두루두루 둘러보면서 가고 싶다. 타고 싶으면 타면 되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의 삶도 이해해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끼리도, 어떤 식으로 여행을 즐길 것이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게 사람에 대한 이해 폭을 넓혀준다.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휴일이면 집안에 틀어박혀 이리저리 뒹굴며 만화를 보는 걸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1박2일’이나 ‘꽃할배‘를 여행 비전문가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 PD는 여행을 다음의 두 가지로 추억한다. 제주도로 간 고교수학여행이 별 재미가 없었지만 밤에 숙소를 이탈해 다른 숙소에 머물던 여학생들을 만났던 일탈의 기억과 대학교 때 친구와 학교 앞에서 술 먹다 밤기차로 경포대로 가 모래사장에 누워 잠을 자다 그냥 돌아온 기억이다.
그래서 나 PD에게는 여행에서 무엇을 보느냐 보다는 어떻게, 왜, 누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 무엇을 느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제주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린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던 당시 ‘여고생들의 모습’과 밤을 새워가며 도착한 동해 바다를 보면서 느낀 ‘허탈감’이 여행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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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꽃보다 할배’의 출연자들은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다. 서로 각자의 방법을 존중해주며 여행을 즐기는 ‘꽃할배’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사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FC바르셀로나의 홈 구장을 찾은 꽃할배. [사진제공=tvN] |
처음에는 기자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지 않는 백일섭 할배가 이상했다. 이날 방송에서 백일섭 할배의 인터뷰를 보고 조금은 이해가 됐다. 여행은 ‘빛을 본다는 행위’인 관광(觀光)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여러 종류가 있다. Travel(일반적인 여행) Tour(잘 짜인 여행) Sightseeing(구경하는 여행) Trip(단기여행) Trek(고된 여행) Journey(긴 여정) Junket(유람여행) Voyage(항해여행) Odyssey(장기 모험여행) 등 여행 종류도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이 다 여행이다.
백일섭 할배가 투털대고 때로는 심통을 부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여유를 부리며 다니는 것도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지도를 들고 다니며 명소를 열심히 체크하며 역사와 문화를 음미하는 이순재 할배가 하는 것도 여행이고 여정을 대폭 줄이고 자신의 감정에 맞게 다니는 백일섭 할배가 하는 것도 여행이다. 멋있는 것은 할배들이 서로의 방식에 대해 터치하지 않고 존중해 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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