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허 플레이스’ 안지혜, 보석의 발견? 길해연 “상상했던 그 모습”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인 허 플레이스(In her place)’는 작지만 강렬한 영화다.

이번주 개봉하는 ‘대호’와 ‘히말라야’,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같은 대작들에 견줘보면 왜소하지만 작품성만큼은 기 죽지 않는다.

‘인 허 플레이스’의 가치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몬트리올누보시네마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아부다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작품상 수상에 이어 토론토영화비평가협회 최고신인제작자상을 수상했다. 또 타이페이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거머쥐는 등 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인 허 플레이스’의 세 주인공 윤다정(왼쪽부터), 안지혜, 길해연이 14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 허 플레이스’는 몬트리올누보시네마영화제, 아부다비국제영화제, 타이페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오는 17일 개봉한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영화는 시골 농장에 사는 10대 임신 소녀와 엄마 그리고 그들을 찾아 온 한 여성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았다. 모든 걸 갖췄지만 아이만은 갖지 못한 도시 여자는 소녀의 아이를 비밀 입양하려 한다. 세 여인의 기묘한 동거는 예상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 허 플레이스’의 세 주인공 길해연, 윤다정, 안지혜를 지난 14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은 연출자인 알버트 신 감독의 ‘팬클럽’을 자처했다. 한국말이 서툰 캐나다 한인 2세 감독이지만 배우들과는 ‘찰떡 호흡’을 보였다.

극중 ‘엄마’ 역을 맡은 배우 길해연은 “같은 한국말을 써도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알버트 신 감독은 집중해서 듣고 감응을 해서인지 오해가 없었다”고 감독을 높이 평가했다.

영화 ‘인 허 플레이스’의 세 주인공 윤다정(왼쪽부터), 안지혜, 길해연이 14일 서울 중구 퇴계로의 한 카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 허 플레이스’는 몬트리올누보시네마영화제, 아부다비국제영화제, 타이페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오는 17일 개봉한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도시 여자’ 역의 배우 윤다정은 특히 “시나리오가 심플했다”면서 “지금껏 보아 온 시니리오와 달리 굉장히 많은 여백이 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여백은 곧 가능성이었다. 윤다정은 “캐릭터가 착한 사람 같기도 하고 괴짜 같기도 하고 복합적인 매력이 있었다”면서 “영화가 그로테스크해질 수 있는 측면이 있어서 어떤 각도로 찍을 지 굉장히 궁금했다”고 밝혔다.

시나리오는 현장에서 완성됐다. 시나리오의 기본 뼈대는 세워진 상태였지만 대사는 빈 칸에 가까웠다. 감독은 살아있는 일상의 말로 뼈대에 살을 붙이기를 원했다. 현장의 즉흥성과 즉흥성에서 오는 창의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소녀’ 역의 안지혜는 “시나리오의 대사를 과감히 버리고 장면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상태에서 대사나 행동은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한 게 많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엄마와 소녀가 빨래를 개는 장면은 리허설도 없이 곧바로 촬영했다”고 소개했다. 소녀와 엄마의 애틋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을 만들자는 방향만 설정해두고 현장에서 즉흥 연기를 펼친 것.

소녀가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 역시 즉흥적으로 탄생했다. 안지혜는 “유일하게 소녀가 소녀다운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고 행복과 불안이 뒤엉킨 장면이라 애착이 간다”면서 “롱테이크로 촬영했는데 소년과 충동적인 감정대로 장면을 만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인 허 플레이스‘는 절제미가 살아있는 영화다.

길해연은 “굉장히 감정을 통제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이름조차 갖지 못한 것 역시 의도한 바다. 그들은 단 한 순간도 극중에서 이름이 호명되지 않는다.

안지혜는 이에 대해 “감독의 중립적 시선이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정인물의 시각으로 영화가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으로든 이입해서 볼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길해연은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 사람에 감정 이입이 된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라고 감독의 의중을 읽었다.

영화는 내내 담담한 톤을 유지한다. 클로즈업으로 표정을 잡는 대신 인물의 뒷모습을 풀샷으로 잡았다. 긴 호흡의 롱테이크와 깊이감 있는 화면이 되레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한편 ’인 허 플레이스‘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안지혜는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한 첫인상을 새겼다. 길해연, 윤다정과 같은 선배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서늘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배우다.

안지혜는 “첫 데뷔고 그 다음을 생각할 수도 없는 유일한 작품이었고 꿈꿔왔던 순간이었다”며 “현장에서는 부담을 느끼기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특히 “즉흥적으로 선배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묻어간 게 많다”며 두 선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윤다정은 안지혜에 대해 “순간을 잘 즐기고 자기 역할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현명한 배우”라며 “순간 몰입도와 집중력이 좋다”고 호평했다.

길해연은 안지혜의 캐스팅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신 감독은 첫날 첫 오디션에서 만난 안지혜를 낙점했지만 1987년생인 안지혜가 10대 소녀 역을 맡기엔 나이가 많다는 스태프들의 만류가 있었던 것. 하지만 신 감독은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안지혜는 열연으로 보답했다.

길해연은 “제가 지혜를 처음에 봤는데 딱 시나리오를 읽고 상상했던 이미지였다”면서 “(지혜가) 아주 고집 세게, 은근히 못 되먹게 생겼어요”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후배를 향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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