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의 예고편] “‘동성결혼’보다 ‘평등’”…‘로렐’의 한 마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죽음을 앞둔 로렐(줄리안 무어)는 끝까지 “동성 결혼(gay marriage)”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동성 파트너 스테이시(엘렌 페이지)와의 사연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인권 운동가들 앞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대신 그는 “평등(equality)”을 말한다. 동성 결혼이라는 정치적 아젠다보다, “모든 사랑이 평등하다”는 더 커다랗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23년차 베테랑 경찰인 로렐은 마약범 소탕이나 살인범을 쫓는 등, 거친 임무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여형사다. 미국 뉴저지 주 최초의 여성 부서장을 꿈꿀 만큼 유능하고, 그의 마을에서 나름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사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사는 곳과 한참 떨어진 외딴 마을까지 취미 생활을 하러 간다. ‘숨겨야 할 것’이 있고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사진= 영화 ‘로렐’ 스틸컷]

로렐은 여성 배구 클럽에서 스테이시를 만난다. 단숨에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로렐에게는 아직까지 마음의 벽이 있다. 로렐의 집에서 스테이시는 절대 전화를 받아선 안 되고, 밖에서는 스테이시가 로렐의 ‘사촌 동생’이다. 젊은 스테이시는 이런 로렐의 행동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곧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정부로부터 동거인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사진= 영화 ‘로렐’ 스틸컷]

한때의 행복은 로렐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로렐은 자신의 사후 연금 수령인을 동거인인 스테이시로 인정해 줄 것을 지역 의회에 요청한다. 경찰관이 죽으면 아내나 남편이 연금을 받는 것처럼, 동거인에게 이를 양도하는 권리를 허락해 달라는 것. 그러나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누군가의 종교적 이유, 지방 재정이 어렵다는 핑계, 만장일치로 의결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전통’ 등으로 의회는 로렐의 요청을 묵살한다. 

[사진= 2007년 다큐멘터리 ‘프리헬드’의 실제 주인공 로렐과 스테이시 ]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했던 로렐은 죽음을 앞두고 용감해진다. 투서를 쓰고 의회에서 공개발언을 하고, “치료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울면서 말리는 스테이시를 설득한다. 그리고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사랑은 평등하다”고 이야기한다. 로렐은 보수적인 의회를 설득해 자신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를 스테이시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영화 ‘로렐’의 이야기는 전부 실화다. 25년간 미국 뉴저지 오션 카운티에서 경찰관으로 복무했던 로렐 헤스터와 그의 파트너인 스테이시 안드레의 이야기다. 로렐의 연금 양도를 의회가 기각한 실화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프리헬드(Freeheld)’도 만들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단편다큐멘터리상과 선댄스영화 심사위원 특별상 등 13개 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론 니스워너 작가의 각색, 피터 솔레트 감독의 연출로 2015년 촬영됐다. 스테이시 역의 엘렌 페이지는 2014년 밸런타인데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권 캠페인 컨퍼런스에서 연단에 올라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배우다. ‘로렐’은 커밍아웃 후 처음으로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를 연기한 그의 첫 영화다. 엘렌 페이지는 지난해 8월 미국 타임(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6년 전 원작 다큐멘터리의 트레일러만 보고 방에서 눈물을 흘렸고, 바로 영화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7월7일 개봉. 15세 관람가. 103분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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