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생전 양위] 나루히토 왕세자 식민지배 사죄할 듯

왕위 계승 전망…평소 소탈 이미지

오카다 가쓰야 일본 제 1야당 민진당의 대표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는 보도가 난 다음날 ‘(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는 조건에서의 개헌 논의’에 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오카다 대표가 개헌 논의의 주도권을 노리고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에게 선제공격을 날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직접적으로 일본 정치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전후 미군 신탁통치에 의해 정립된 일본 헌법은 일왕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왕실의 기능 등을 규정한 왕실전범 개정과 헌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왕실 전범을 개정해 생전퇴위를 제도화할 경우 미래의 일왕이 정치의 압력으로 폐위당할 가능성과 일왕이 자의적으로 퇴위하는 가능성을 없애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가 마냥 일본 정계와 분리돼 있는 사안은 아닌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를 둘러싼 첫 보도가 나간 13일 다음날 민진당의 오카다 대표가 개헌논의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당시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제시되면 논의할 수 있다”며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해왔던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에 마이니치(每日) 신문과 교도(共同)통신은 개헌 세력이 중ㆍ참 양원 3분의 2를 차지했기 때문에 갈등하기 보다는 보다 유리한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건부 협상을 통해 우회적으로 일본의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헌법 9조 개정을 저지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이양에 실현하면 왕세자인 나루히토(德仁)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공식적인 한일외교관계에는 큰 변화는 없지만 나루히토 왕세자가 ‘일본국의 상징’으로서 전범 및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강조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해 2월 “앞선 전쟁으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고통과 큰 슬픔을 겪은 것을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왕실 전통을 깨고 현직 외교관을 부인으로 맞아들일 정도로 개혁적이고 소탈한 인물이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 2014년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쌓아올려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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