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주기도 아니고…올해도 기업인들 수시간 기다려 5분 답변

여소야대 새 국회 첫 국감

야권 초선의원 비중 높아 긴장

기업들 대관담당 홍보맨들

“회장님 나오면 나 짤려”읍소

# “찔러보고 반응을 기다리는 거죠. 총수나 오너를 부른다고 해야 반응이 있어요. 월급쟁이 사장은 부른다고 해도 별로 반응이 없거든요” 지난해 9월 국정감사 증인이 확정되기 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이같이 말했다. 이 보좌관은 “다른 방(의원실)들도 마찬가지에요. 주고 받는게 있으려면 ‘지렛대’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9월 국회는 ‘슈퍼파워’=해마다 9월은 국회가 가장 힘이 강해지는 시기다. 국회가 입법 기능 외에 국가 전반에 대한 감사 권한을 행사하는 국정감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연말 예산 시즌이 또한번 국회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때이긴 하지만, 한국은 예산안을 기획해 올리는 역할은 기획재정부가 맡고 국회는 심의권만을 갖고 있다. 국회 권한으로 빼고 넣는 예산안 수준은 전체 예산의 2~3% 가량으로 알려진다. 사실상 국감 기간이 국회에 가장 큰 힘이 실릴 때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각 기업의 대관 담당자들이 가장 바쁠 때가 국감 때기도 하다. 최고의 관심 사항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오너나 총수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느냐 여부를 본사에 빠르게 보고하는 것이다. 채택될 기미라도 보이면 그때부터는 비상이다.

국감기간에만 반짝 얼굴을 디미는 행동은 하급에 속한다. 언제 방문해도 해당 의원실 수석보좌관이 웃으면서 맞아줄 수 있도록 평소 안면이 중요하다. 의원실 구성원 최말단인 인턴에게도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야 한다.

▶현장에선 어떻게?=막상 국감장에 불려나오더라도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수시간을 기다려 5분 가량 답변을 하는 데 그친다. 의욕이 넘치는 의원실이 앞장서서 증인들을 대거 불렀다가 답변 한두마디 듣고 돌려보내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엔 처음으로 지난해 국감 증인으로 국회에 출석한 롯데 신동빈 회장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국감을 마쳤다. ‘이 정도면 그냥 출석해도 되겠는데?’라는 평가가 현장에서도 나왔다. 국회는 총수나 오너를 불러냈다는 의미 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벌금 1500만원’을 내느니 출석을 하는 것이 낫다는 기업 내부 평가도 내려진 바 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과거 국감 출석요구에 불응해 벌금 1500만원을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소야대로 이뤄진 새 국회의 첫 국감인데다, 기업에 대한 증인 요구가 많은 야권에서 초선 의원들의 비중도 높아 더 긴장하고 있다”며 국감 전부터 펼쳐지고 있는 강도높은 증인 전쟁의 모습을 전했다.

문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국정감사가, 자칫 문제 기업의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부실한 고객 관리를 문제로 국회에 출석한 애플코리아, 또 2014년 과다 수리비 문제로 출석한 독일 자동차 3사의 경우가 그 경우다. 의원들의 질타와 질의에 해당 기업 CEO는 “그렇지 않다”는 답으로 넘어갔고, 이후 상황은 나아진 것 하나 없었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 임원, 또는 오너의 증인출석 여부와 관련 모종의 거래가 오간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증인 출석 여부를 놓고 기업에 넌지시 흘리고, 향후 이런저런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관 담당자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질의 내용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증인출석 여부 자체를 통보하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도 종종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정호ㆍ홍석희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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