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현장]“숙명여고 내신 농단 분노”…학부모들 폭우 속 야간 시위

지난 3일 오후, 한 숙명여고 재학생의 학부모가 교문 앞에서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검은 옷 입고 학부모 30명 야간 촛불집회
-“소문이 사실로 허탈…학교 불신 팽배”
-경찰은 교육청 참고인 소환…조사 박차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주변 학원가에서 쌍둥이 자매에 대한 소문이 있었죠. 워낙 소문이 많은 동네라 믿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니까 이제는 학교를 믿을 수 없게 됐어요.”

게릴라성 호우가 반복된 지난 3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숙명여고 정문 앞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40~50대 30여 명이 모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들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모두 숙명여고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이 죽었다는 의미에서 ‘상복’을 연상케 하는 검은 옷을 입었다. 현직 교무부장이 자신의 쌍둥이 두 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해 각각 문ㆍ이과 전교 1등으로 만들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숙명여고 내신 농단사태 규탄’, ‘내신부정 공정수사 촉구’ 등의 문구가 적힌 작은 피켓을 들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촛불 화면을 켜놓은 경우도 있었다. 이날 서울의 강수량은 34.5㎜로 집회 내내 비가 내렸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경찰 조사로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집회는 계속된다”며 2시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학부모 김모(50ㆍ여) 씨는 “강남 안에서도 내신 관리가 엄격하고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유명한 학교인데, 이제 어느 학부모가 학교를 믿고 대입을 맡길 수 있겠느냐”며 “이제야 책임을 통감한다는 학교 측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처음 집회 현장을 찾은 전 학교운영위원장 A 씨 역시 분노를 표했다. 지난 2월까지 위원장을 맡았다는 A 씨는 “운영위원들도 교무부장의 두 딸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엄격한 학사 관리를 자랑하던 학교였는데, 이제는 어느 교사가 학원에 시험문제를 유출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각각 전교 59등, 전교 121등이던 쌍둥이 자매는 올해 1학기 평가에서 나란히 문ㆍ이과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주변 학원가와 학부모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교무부장이 딸에게 시험문제를 미리 보여줬다”는 의혹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감사를 진행한 서울시교육청은 “개연성이 있지만, 물증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험문제 중 정답이 정정된 문항에 대해 두 딸이 똑같은 오답을 적어낸 사실을 확인했지만, 실제 사전 유출이 있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학교 측은 유출 의혹에 대해 “자녀와 같이 근무하는 교사에 대하여 자녀가 속한 학년의 정기고사 문항 출제 및 검토에서는 배제하였으나, 결재라인에서까지 배제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학교 측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의혹이 인 교무부장은 스스로 교무부장과 교감 직무대행에서 사퇴했다”고 밝혔다.

교육청으로부터 감사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번 주 교육청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의뢰 대상인 전 교무부장과 교장, 교감, 정기고사 담당교사 등에 대해서는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수사 초기 단계라 이들에 대한 소환 시점은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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