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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급 공무원’서 좌충우돌 국정원 요원역 강지환
영화배우 강지환(32)이 그래픽디자이너 조태규로 살았던 시절, 대학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취업원서를 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포토샵과 컴퓨터일러스트를 전공했지만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중ㆍ고등학생들도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상이 됐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한 벤처기업이 눈에 띄었다. 주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영문 웹사이트였다. 그런데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오기가 나서 사장 e-메일 주소로 “어떻게 원서를 보지도 않고 사람을 떨어뜨리느냐? 자라나는 새싹인데 왜 밟느냐? 면접 보러 오라고 할 때까지 계속 메일을 보내겠다”고 ‘읍소 반, 으름장 반’인 편지를 보냈다.
바로 연락이 왔다. 사장이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회사로 찾아가니 전 직원이 영어의 달인이고, 십중팔구가 유학파였다. 영어도 못하고, 특기도 없던 강지환을 보고 사장은 “당신, 재미있긴 한데 써먹을 데가 없다”고 하며 “채용되면 월급은 얼마나 원하느냐”고 물었다. “40만원만 주시면 됩니다”는 대답으로 강지환은 회사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대화의 반이 영어인 직원들과 할 말도 없었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시작한 건 사무실 청소였다. 그런데 문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 임직원이 참석하는 영어회의. 뭔가 한마디는 해야 했다. 강지환은 군 복무 시절 영어를 잘했던 친구를 불러다 그럴듯한 원고를 써서 외웠다. 그리고 첫 회의. 다들 주한 외교사절의 입국 일정과 마케팅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윽고 강지환의 발언 순서. “굿모닝, 마이 네임 이즈…”로 시작된 원고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야 합니다. 캔과 종이는 따로따로 버려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혼나지 않습니다”로 이어졌다. 물론 영어로. 전 직원이 뒤집어졌다. 정작 자신은 진땀을 빼고 있는데, 사장이 일어섰다. “액설런트!” 10여년 전 일이다. ‘영화는 영화다’와 ’7급 공무원’ 단 두 편의 상업영화로 충무로 블루칩으로 떠오른 배우 강지환은 늦깎이 스타다. 맨땅에 헤딩하는 근성과 오기로 배우가 됐고, 재능으로 길을 텄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는 1년 만에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고자 노크한 곳이 뮤지컬이었다. 지난 1999년 무작정 뮤지컬 ‘록키호러쑈’의 오디션을 찾아가 연출자를 잡고 “무대에 못 서도 좋으니, 뭐든지 시켜만 달라”고 했다. 결국 다시 대걸레와 빗자루를 잡았다. 리허설 때 앙상블 머릿수를 채우는 연습생이었던 강지환은 마침 펑크가 난 배우가 있어 운 좋게 무대에 섰다. 대사는 없었다. 그 후 5년간은 부지런히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번번이 고개가 꺾였다. 훈련받지 않은 연기력은 내내 걸림돌이 됐다. 외모와 살짝 엇나가는 하이톤의 목소리도 늘 지적 대상이었다. 단역이나마 캐스팅됐다가 연기가 안 돼 잘리거나 편집됐고, 조연으로 등장했다가 단역으로 바뀐 적도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선 고두심의 죽은 아들로, 극 중 휴대전화 뒤 스티커 사진으로만 등장했다. 그때 ‘주인공 하고야 만다’고 이를 악물고 ‘서른까지 이루지 못하면 연예계 떠난다’고 마음먹었다. 드라마 데뷔 전 이경희 작가가 지어준 예명인 강지환이라는 이름이 터진 건 2005년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였다. 스물여덟에 빛을 보기 시작한 강지환은 이후 드라마 ‘쾌도 홍길동’ ‘경성스캔들’ 등에 연이어 주연을 맡았고, 지난해에는 드디어 영화 ‘영화는 영화다’에서 깡패보다 더한 배우 ‘장수타’ 역을 맡아 차세대 기대주로 떠올랐다. ’7급 공무원’에서는 의욕은 넘치지만 매사 어설픈 국정원 비밀요원 역을 맡아 무르익어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순발력과 집중력으로 빚어내는 코미디가 일품이다.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상황에서 연기하는 게 좋아요. 이번 작품도 70%는 미리 애드리브를 준비해왔고, 30%는 현장에서 만들어냈죠. 악역이라도 그 안에 숨은 재밌고 슬픈 면을 꺼내는 연기, 센 척해도 속내는 약한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로 신분을 속이는 국정원 비밀요원 커플로 연기한 상대역 김하늘과는 인연이 깊다. 강지환이 무명이던 지난 2001년 국제전화 CF에서 만난 적이 있다. 2006년엔 ’90일 사랑할 시간’에서 공연했고, 직후 둘을 남녀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가 기획됐다가 무산됐다. 지난 2월 일본에 잡지 화보 촬영을 같이 가는 바람에 때아닌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얼굴 본 게 8년이 넘었고, 드라마 주인공으로 만난 게 3년 전인데 열애설 기사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귀게 됐다”고 나와 헛웃음을 지었다. 아쉬운 건 “생애 첫 스캔들인데 검색어 순위 1위에도 못 올랐던 것”이란다.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지환은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겠다”며 “드라마와 영화로 신인상을 모두 받아봤으니 주연상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