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만 가는 ‘아빠를 부탁해’ 사면초가

50대 연예인 아빠와 20대 딸의 관계 회복 프로젝트라며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일요예능 SBS ‘아빠를 부탁해’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시청률은 지지부진하고, 화제성도 사라졌다. 프로그램의 명분도 잃었다.

지난 9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의 집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의 1부를 책임지고 있는 ‘아빠를 부탁해’는 5.5%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주 방송분(3.8%)보다는 상승한 수치이나, 이 기록은 그간 ‘아빠를 부탁해’가 유지해왔던 시청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시간대 방송된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14.4%), MBC ‘복면가왕’(13.9%)과는 경쟁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빠를 부탁해’의 시작은 창대했다. 흔해빠진 가족예능의 후발주자로 등장했으나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50대 연예인 아빠와 20대 딸의 모습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관찰카메라 형식은 제격이었다. 제작진은 이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어색하기 그지 없는 50대 아빠와 20대의 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 데도 아빠와 딸의 묘한 거리감은 저마다의 안방에 공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니 부녀관계는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부녀를 위해 제작진이 끊임없이 미션을 던지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고, 게임을 하고, 내기를 한다. 지난 8일 방송에서도 조재현은 딸 조혜정과 함께 웨이크보드 내기를 했고, 조민기 부녀는 보령 머드 축제를 찾았다. 판이 만들어졌으니 출연료를 받아가는 연예인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상황에 충실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프로그램의 재미가 반감된 것은 연예인 아빠에게서 평범한 50대 가장의 모습이 나오지 않고, 2주에 한 번 가지는 시간을 특별한 추억 쌓기에 몰두할 때부터 나왔다. 아빠와 함께 쇼핑을 가고, 찜질방에 가서 내기 게임을 하고, 여행을 가는 장면들은 드라마 안에서조차 다루지 않는 판타지일 뿐이다.

딸과의 관계를 통해 대한민국 50대 아버지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봤던 재미는 더이상 이 프로그램에 없다. 부녀관계를 밀착해 들여다보며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끌어냈던 프로그램에 설정과 상황이 개입하자 기획 단계의 본질도 잃게 됐다.

놀러만 다니는 ‘아빠를 부탁해’엔 부녀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접근은 완전히 사라졌다. 흔한 가족예능의 후발주자답게 아주 뻔한 연예인 가족예능으로 남게 된 셈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