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니까 이 영화②] 취업? 결혼? 아기? 그게 뭐죠 안 들려요

[헤럴드경제=고승희ㆍ이세진ㆍ이은지 기자] 어른들의 호기심은 이해한다. 하지만 듣다 보면 ‘그냥 친척집에 오지 말 걸’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도 사실. ‘대졸→취업→결혼→출산’이라는 평범한 길을 가길 바라는 맘도 알겠지만, 아직은 내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은 것 뿐이다. 어른들도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결혼은 또 얼마나 먼 길인지, 아기를 낳아도 될지 모르겠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알아 줄 필요가 있다. 조금 늦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더라도 ‘가족’이니까 보듬어 줄 수 있기에, ‘상호 이해의 장’을 만들어 줄 영화들을 준비했다.

내게도 한 명쯤…‘상냥한 앨리스’ (방송/대중음악 담당 고승희)=때로는 피 안 섞인 누군가가 나을 수도 있다. 사람보다 차가운 그들이 낫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인조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름은 앨리스, 키는 고작 60cm. 동그란 눈, 까만 머리의 이 소녀는 네덜란드에서 만든 요양간호사다.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상냥한 앨리스’는 다가올 ‘가까운 미래’ 2020년대를 대비해 설계된 로봇의 이야기다. 앨리스가 세 명의 노인과 만난 베타 테스트 과정을 담은 영화다. 다가올 그 미래는 80세 이상 인구가 4배로 증가한다는 고령화 사회다.

영화는 흡사 SF영화처럼 전개된다. 인조인간이 낯설 게 분명한 독거 노인들은 이 작은 로봇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전한다. 토라진 친구처럼 “기계인 네가 뭘 알겠냐”며 고개를 휙 돌려버리기도 하고, 사진을 보여주며 지난 시간을 추억한다. 노래를 불러주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한다. 앨리스는 다소 느리다. 빠릿빠릿함이라고는 없다. 대체로 조용하고, 답변은 어눌하다. 앨리스는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인격이다. 숱한 SF영화가 그린 인간의 불행을 예고하지 않는다. 담담한 기록을 위한 다큐멘터리인 탓에 섣불리 그들을 동반자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은 내게도 ‘앨리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내 친구, 인조인간 앨리스. 

▶상냥한 엘리스]

고시촌에 발묶인 사람들, ‘범죄의 여왕’(영화 담당 이세진)= 한껏 유예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모인 곳, 서울 신림동 고시촌이다. 겨우 몸 누일 공간에서 자고 일어나 곧장 학원을 향하고, 다같이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이곳에서는 ‘십시’(2차에서 10번 떨어진 고시생을 십시일반 도와야 한다는 뜻), ‘고시삼자 동락설’(고시에 떨어지면 돈, 여자, 친구도 떨어진다)이라는 무서운 고시 은어들이 그득하다. 이곳에 사는 아들이 “수도요금이 120만원 나왔다, 돈을 좀 보내달라”며 건 한 통의 전화에 거칠 것 없는 엄마는 그날로 상경한다. 화려한 옷차림의 아줌마 한 명이 칙칙한 고시촌을 휘젓고 다닌다. 법관 될 사람 엄마 답게 정의감으로 똘똘 뭉쳤다. 어느날 나타난 아줌마 한 명이 남 일 신경 안 쓰고, 앞만 보고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변화시킨다. 범죄의 촉을 느낀 아줌마를 중심으로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시촌을 맴도는 청춘들을 담아낸 블랙코미디다.

▶범죄의 여왕

아름답지만은 않은 스무살, 영화 ‘글로리 데이’= “그 날 우리의 스무 살은 잔뜩 구겨졌다.” 막 스무살이 된 남자들의 우정을 통해 청춘들의 성장기를 그린 ’성장 영화‘다. 그토록 꿈꿔왔던 스무살, 자유롭고 아름다울 줄만 알았다. 실상은 달랐다. 설렘 만큼 더 처참히 무너지는 청춘, 그 아픔을 그렸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친구 넷이 여행을 떠난다. 친구가 전부이고 제일인 용비, 대학 대신 군대를 택한 상우, 엄마에게 시달리는 재수생 지공, 낙하산 대학 야구부 두만은 각자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처음 어른이 된 기분, 친구들끼리 떠나는 여행에 들떠 있던 것도 잠시, 시비에 휘말려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무심한 경찰과 속 타는 부모들은 “진실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며 “세상에는 친구보다 지킬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넷이라면 두려울 게 없었던 이들이 처음 차가운 현실과 마주한다.

▶글로리데이

”쎈 척 하지마, 너도 무섭잖아.“ 쎈 척이 통하지 않는, 사회 속 청춘. 이 영화는 이른바 ‘꼰대’와 ‘요즘 애들’에게 말한다. “청춘이 아름답지 만은 않다”고.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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