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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정신과 리더십을 함양해 미 주류사회를 이끄는 한인 지도자를 배출하고자 ‘화랑’을 만들었죠. 궁극적으로는 화랑 출신 한국계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의회는 지난 10월 12일 한인 청소년들을 위해 ‘화랑의 날’(10월 10일)을 제정했다. 한인 봉사단체인 화랑청소년재단(이하 화랑)의 활동을 인정하고 격려하기 위해 기념일을 제정한 것이다.
미국에서 소수민족 청소년을 위해 주의회가 기념일을 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인 이민사에 남을 쾌거로 화제를 모았다. 주의회 상하원의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주인공은 이 단체를 이끄는 박윤숙(65) 회장.
화랑의 세 번째 한국 지부 설립을 돕기 위해 방한한 박 회장은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인 청소년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려고 기념일 제정을 추진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추진 첫해에 통과될 거라고는 기대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일사천리로 결의해 너무 기뻤죠. 지난 11년간 묵묵히 활동해 온 것을 인정받은 셈이어서 한인 사회에서도 무척 반기고 있습니다.”
그가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봉사단체를 결성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라이온스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며 산하 청소년 봉사단체 리오클럽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봉사에만 전념하는 리오클럽과 달리 정치 참여 등 다방면의 활동을 추가했다.
“224만여 명이 거주하는 미주 한인사회는 114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수민족보다 상대적으로 정치인이 적습니다. 의사·변호사·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는 많지만 주류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지요. 정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 청소년기에 비전을 심어주고 이끌어줄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신라의 청소년 수양단체로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지는 데 역할을 한 화랑의 이름을 따왔고 화랑의 ‘세속 5계’를 현대식으로 계승한 ‘사랑 5계’를 기본 이념으로 내세웠다.
박 회장은 “가족 사랑, 나라 사랑, 이웃 사랑, 정의 사랑, 평화 사랑 등 5계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첫 번째로 가족 사랑을 내세운 것은 거창한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의 바탕에는 가정의 화목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작한 화랑은 LA에 본부를 두고 있다. 보스턴·하와이·애리조나·콜로라도 등 미국과 엘살바도르·과테말라·페루·몰도바·우크라이나·한국 등 35개 지부로 영역을 넓혔고 전 세계에서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주요 활동으로는 청소년 리더십 프로그램, 홈리스 식사 돕기, 심폐소생술 자격증 취득하기, 불우이웃 백내장 수술 지원, 위안부 문제 알리기, 중남미 이동도서실 지원, 비영어권 회원 대상 한국어·영어 교육 지원, 역사 강연회, 4·29 LA폭동 후손에게 알리기 등이다.
우수 활동자에게는 대통령상을 비롯해 연방 상하원 의장상, 주 상하원 의장상, 주지사상, 시장상 등을 수여한다.그는 “화랑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의 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 사랑 5계 등을 암기해야 하고 국기를 그릴 줄 아는 게 조건”이라며 “봉사활동 때문에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학점이 2.7점 이하로 떨어지면 단원 자격을 정지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모든 행사를 단원들이 뽑은 집행부에서 결정해 추진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박 회장은 11년간 단체를 이끌며 가장 큰 성과로 단원들에게 생긴 ‘자신감’을 꼽았다.
“동양계 소수민족이다 보니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청소년들이 화랑 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겨 표정이 밝아지고 매사에 적극적·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볼 때 제일 보람을 느낍니다.”
1979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텍사스주립대에서 골프를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지금은 LA스탠턴골프대 학장으로 재직하며 아로마골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봉사활동으로 LA한인축제재단 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전 세계에 화랑 지부를 세우는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후손에게 남겨야 할 유산은 재산이 아니라 화랑이라는 생각에서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지부를 만들면서 고려인 청소년을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조선족과 재일동포 등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던 곳에도 지부를 개설해 자긍심을 갖고 살도록 도울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기념일인 10월 10일에 전 세계 화랑 단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화랑청소년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페스티벌에서는 주류사회서 활약하는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을 대상으로 화랑 단원들이 투표로 뽑는 ‘히로&레전드’(Hero&Legend)상을 제정해 시상할 겁니다. 자신들이 본받고 싶은 롤모델을 뽑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