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으로 국내제약산업은 ‘빨간불’…글로벌제약사 신약 가격 올라가나?

-한미 FTA 개정협상. 철강 관세부과 한국 면제
-미국,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이행에 관심
-미국제약협회, 한국의 약가정책에 불만 표출
-미국산 신약 약가 크게 오르면 건보재정 부담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한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부과 대상국에서 한국을 면제하는데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미국 화물자동차의 관세철폐 기간을 연장하는 등 자동차 분야에서는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양보가 예상되는 분야가 제약산업이다. 미국은 미국제약협회(phRMA)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의 약가제도가 미국측에 불합리하게 설정돼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번 개정협상에서도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는 미국측의 관심사항으로 이름을 올린 만큼 향후 국내 제약산업에 FTA 개정협상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되고 있다.

[설명=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미국,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에 관심=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한미 FTA 개정협상’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을 철강 관세부과 대상에서 면제하고 미국측 화물자동차의 관세철폐 기간 연장 등 개정협상 내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협상 내용 중 특히 미국 측 관심사항으로는 자동차와 함께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가 포함됐다. 그리고 정부는 한미 FTA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브리핑에서 ”미국측은 국내 제약사와 차별적인 면을 삭제하고 모든 해외 제약사들에게 국내 제약사와 동일한 대우를 주문했고 우리는 이런 내용을 수용하는 보완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제약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미국제약협회(phRMA)는 지난 2월 미 무역대표부(USTR)에 ‘스페셜 301조’ 의견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약가 정책이 한미 FTA를 위반했으니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페셜 301조는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를 평가하는 것으로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국가를 ‘우선협상대상국’, ‘우선감시대상국’,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이 중 우선협상대상국은 가장 강력한 지적재산권 침해국으로 판단, 미 무역대표부가 해당국에 30일 내 조사를 실시하고 만족스런 결과가 없을 시 보복조치를 하게 된다.

의견서에서 미국제약협회는 ““한국의 약가정책은 혁신 신약의 특허를 적절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과 한미 FTA 협정문의 관련 조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다국적 제약사들 “글로벌 혁신 신약, 한국에선 찬밥”=이렇게 미국이 글로벌 혁신 신약 약가제도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한국의 약가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신약이 사용되기 위해선 식약처 허가와 함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가 약가 협상을 하게 된다. 다국적 제약사들 대부분은 과거부터 이 약가 협상에 적지 않은 불만을 드러냈었다.

식약처 허가를 받더라도 심평원과의 약가에 대한 괴리로 인해 출시가 지연되거나 아예 약가를 받지 않고 비급여로 처방되는 신약들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신약이 한국 식약처 허가를 받는 건 어렵지 않다”며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심평원과의 약가 협상”이라고 말했다.

다국적제약사를 대표하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별 신약 가격 분석에서 한국의 신약 가격은 OECD 회원국 평균가격의 44%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 노력이 약가에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심평원은 건보재정 악화를 우려해 아무리 혁신적인 신약이라도 약가를 최대한 낮추려는 노력을 한다. 이러다보니 다국적 제약사들은 혁신 신약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표시해 왔다.

지난 해 말 KRPIA는 심평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글로벌 혁신 신약이 아직 국내 개발 신약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했다. KRPIA측은 “성공한 신약의 가치는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하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며 “혁신 신약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우대하는 미래지향적인 약가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FTA 개정협상에도 미국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미국계 다국적제약사 다수가 국내에 진출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약품은 ‘공공재’, 일반 상품과는 가격 책정 달라야=하지만 이 같은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품 개발을 위해 투자된 비용을 가격 책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약사들이 개발하는 상품은 의약품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하나의 상품이지만 생명에 영향을 주는 공공재이기도 하다. 약값에 개발 비용이 모두 반영돼 고가로 책정될 경우 경제적 사정에 따라 누구는 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누구는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 상품이야 다른 대체제를 찾으면 되지만 글로벌 혁신 신약의 경우 대체 약품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더구나 신약이 고가로 책정되면 건강보험 재정에는 큰 부담이 된다. 의약품 사용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 사용금액이 10억원에 머물던 의약품이 몇 년 뒤에는 몇 백 억원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결국 그 부담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또는 국민이 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절한 가격 책정이 돼야 하는 건 맞다”며 “하지만 최근 개발이 활발한 바이오의약품, 면역항암제 등은 연 처방액이 억을 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걸 건강보험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제약사들은 약가 책정이 보수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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