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향수와 워크맨…21세기 ‘X세대’를 말하다

역사상 첫 ‘세대(generation)’에 이름 붙여

90년대 타임지 “나태함의 상징, 이렇다할 특징 거리 없어. 여피와 히피를 싫어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X세대 밴드, 아이돌…X세대 재주목

베토 오루크 전 하원의원, 미국 최초의 X세대 대통령 가능성 기대

워크맨 [게티이미지뱅크=헤럴드]
90년대 유니섹스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캘빈클라인 광고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스마트폰으로 수 천만 곡의 음악을 무한대로 스트리밍하며 감상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 1970대 말 등장한 워크맨은 대중 문화 소비의 방식을 뒤흔들었다. 십여곡 남짓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무한 반복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당시만해도 충격적이고 신선하며 소위 매우 ‘최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혹자는 워크맨의 등장을 ‘개인화되고 섬세하게 조정된 미디어의 시발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백인 남녀 일색의 패션 광고 사이에서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을 등장시킨 베네통 광고가 젊은 세대를 향해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동안, CK(캘빈클라인)으로 대표되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문 ‘유니섹스’가 또다른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80~90년대, 이 같은 추억과 감성을 공유하며 변화의 시대를 헤쳐 온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 사회는 ‘X세대’란 이름을 붙였다.

X세대는 흔히 1965년에서 1980년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한다. X세대는 흔히 배타적이면서도 기존의 규칙을 거부하고, 한편으로는 직전의 베이비붐 세대의 비교되면서 ‘나태함’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밀레니얼’, ‘Z세대’ 등 새 시대,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시대의 트레드를 만들어가는 오늘날, 불현듯 X세대가 다시 세상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일(현지시간) “90년대 초반 인디락계를 강타했던 비키니 킬부터 우탱 클랜, 후티 앤더 블로피쉬 등이 최근 투어를 위해 재회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고, 애니 디프랑코, 리즈 페어와 같은 아이돌이 회고록을 출판하고 있다”며 “이젠 진짜 X세대 후보들이 대통령 선거에도 출미하면서 오늘날 X세대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이후의 이 X세대는 사실상 ‘세대(Generation)’에 이름을 붙인 첫 번째 사례다. 즉, 그들 세대만이 공유한 확고한 문화와 감성, 특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X세대’는 베이비부머 이후 세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단어로도 정의하기 힘들다. NYT는 이러한 X세대를 ‘엉망진창(Mess)’이라고 표현했다.

1990년대 타임지가 당시의 20대, 즉 X세대에 대해 설명한 것도 이 표현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영웅도 없고, 자기들만의 이름으로 부를 스타일도 없다. 그들은 오락거리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주의력은 TV 다이얼의 한 잽만큼 짧다. 그들은 여피(도시의 고소득측), 히피 그리고 약쟁이를 싫어한다. 그들은 이혼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결혼을 연기한다. 그들은 레인지 로버, 롤렉스를 비웃는다.”

혹자는 X세대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나태한 세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이들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시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시기동안 이렇다할 경기 침체가 없었고, 이 때문에 불황을 극복하면서 쌓이는 ‘치열함’이 X세대의 ‘DNA’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NYT에 따르면 X세대가 사회에 진출했을 무렵인 90년대 초, 미국에 닥친 불황은 약 8개월 가량 지속됐으며 당시 최고 실업률은 7.8%였다. 80년대에 10.8%의 실업률이 16개월 동안 지속됐고, 이후 그리고 2007년에 들어서는 18개월이나 10% 안팎의 실업률이 지속된 ‘대침체’가 발생한 것과 비교했을 때는 비교적 순탄하게 공황기를 지난 셈이다.

이에 반해 X세대가 ‘여피족’을 싫어한다는 타임지의 분석은 크게 설득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NYT는 한 시장 조사업체의 조사를 인용, “2010년대 중반까지 X세대는 베이비부머나 밀레니얼 세대보다 더 많은 소비력을 갖고 있었다”면서 “2000년대 닷컴 버블이 꺼지는 등 충격속에서도 X세대의 전문직 계층들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오는 2020년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최초의 X세대 대통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로이터=헤럴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현재까지 X세대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지난 2012년 위스콘신주의 폴 라이언 하원의원이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지만, 백악관 입성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이 최초의 ‘최초의 X세대’ 대통령이라 믿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실제는 1961년 생으로, 명확하게 따지자면 그는 베이비부머다.

현재 X세대는 1972년생인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 민주당 경선 후보가 X세대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미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르크 후보에 대해 “이 텍사스 출신의 후보는 스케이트 선수로 펑크 밴드에 속해잇었으며, 해커 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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