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양측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바오췬 중국 중앙군사위 국제군사협력판공실 부주임,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 이승범 국방부 국제정책관.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앞두고 개최된 한중 외교안보 대화와 관련해 중국 측은 한국보다 16시간 뒤늦은 19일 오후 4시30분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는 북한과 중국이지만, 북중러 구도에서 중국의 거리두기에 못내 섭섭한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고려할 때 중국이 로키(Low-key)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8일 오후 3시부터 개최된 한중 외교안보 대화는 만찬까지 이어지면서 오후 9시30분께 종료됐다. 우리 외교부가 회담 결과를 발표한 것은 19일 0시쯤이다.
우리 외교부는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첫 회의인 만큼 비교적 상세하게 회담 결과를 소개했다. 특히 북러 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지만, 한중 간 논의된 푸틴 대통령의 방북 관련 사항이 담겼다.
우리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러북간 불법적 군사협력의 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며 “러북간 군사협력 강화에 따른 한반도 긴장 조성은 중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만큼, 중측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중국의 (對)한반도 정책에 변함이 없다”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우리 외교부는 전했다.
반면 중국은 19일 오후 4시24분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이 북러 교류협력을 언급했으며,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는 우호적인 이웃으로서 교류와 협력, 관계 발전에 정상적인 수요가 있으며 관련 고위급 교류는 양국 주권국의 양자 협약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 2+2 개최 시기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양국 관계 발전의 필요성에 따라 오래전 합의한 것으로, 다른 국가 간 교류와는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중러 균열을 강조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관련이 없다는 점을 선을 그은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중이 각자의 입장과 견해를 자세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한반도 정세 전개의 맥락과 핵심은 분명하다. 정세를 진정시키고 대립과 대결의 심화를 지양하며 정치적 해결의 대세를 견지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언제나 문제 자체의 장점에 따라 입장을 결정해 왔으며 계속해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중국은 ‘조러(북러)는 우호적 이웃으로 교류·협력과 관계 발전을 위한 정상적 필요가 있고, 관련 고위급 왕래는 두 주권국가의 양자 일정(安排)’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린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러시아와 북한 간 양자 교류 협정에 관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원칙적으로 중국은 러시아가 관련 국가들과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18일 브리핑에서 북러 밀착 관계에 대한 질문에 “이전에 관련 질문에 답한 적 있다”며 “이것은 러시아와 북한 간의 양자 교류”라고 답변해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평양 외곽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AP] |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밀월 관계를 이어오는 가운데 최근 중국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중국은 북러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특히 이번 한중 외교안보 대화 개최 날짜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확인되기 전에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북러 정상 만남이라는 ‘빅이벤트’와 날짜가 겹치는지만, 날짜 변경 요청 없이 계획대로 진행했다.
19일부터 20일까지 방한하는 싱창씽 중국 장쑤성 당서기의 일정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 중 경제 규모가 두 번째로 크고, 정치적으로는 중앙 정치국 위원으로 진입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장쑤성 당서기가 당국의 허가 없이 방한 일정을 진행할 수는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1월1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 강진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각하’로 호칭하며 위문 전문을 보냈다. 반면 같은달 1월23일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국경 근처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서는 위로 서한을 보내지 않았다. 북일 간 물밑 접촉이 진행됐던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이었을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대만 총통선거와 관련해 북한이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해 러시아를 비호하는 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이상기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최근 중국 다롄에서는 2018년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시 주석과 함께 발자국을 본떠 설치한 동판이 아스팔트로 덮여 자취를 감춘 것으로 확인된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북한이 한중 고위급 교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달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것과 관련해 박명호 북한 외무성 중국 담당 부상은 16일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 주도의 반중국 군사동맹권에 솔선해 두발을 잠그고 나선 하수인의 신분으로 중국의 수도에 찾아가 ‘건설적인 역할’에 대해 운운한 것은 후안무치함과 철면피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비난했다. 해당 담화가 ‘중국 담당’ 실무자인 점을 고려할 때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달 27일 한중일 정상회의 당일에는 정찰위성 발사를 감행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한편, 공동선언 발표 두 시간여 만에 북한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한국이 무슨 ‘비핵화’와 ‘평화의 안정’에 대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지역 나라들과 국제사회에 대한 우롱이며 기만”이라고 반발했다.
한중 고위급 교류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북한을 고려하면서 북러 간 ‘위태로운’ 밀착 국면에서는 한 발짝 떨어지고 있는 중국의 외교적 고심을 엿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 등 러북 협력이 강화되는 시점에 개최된 이번 한중 외교안보 대화는 개최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김홍균 1차관은 이번 대화에서 러북 밀착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분명히 중국 측에 전달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하는 중요한 기회로 활용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