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헤럴드DB]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국민연금공단이 40여년 전 시행된 병역판정검사를 근거로 국민연금 가입 전에 장애가 발생했다며 장애연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장애연금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 원인 질병 발병 시점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강재원)는 최근 A씨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연금 수급권 미해당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장애연금 지급을 거부한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다.
A씨는 1999년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2010년 6월 한 병원에서 ‘난청’을 이유로 청각장애 4급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았다. A씨는 2022년 3월 ‘양측 감각신경성 난청’을 원인으로 장애연금을 청구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애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의 원인이 된 질병·사고가 국민연금 가입 이후에 발생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은 A씨가 1985년 병역판정 신체검사에서 ‘중증도 난청’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연금 가입 이전에 이미 장애 원인 질병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A씨는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병원에서 난청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해 갱신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A씨 청력 장애의 직접 원인이 된 질병은 의학적·객관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인 2010년 6월경 발생했다”며 “1985년 징병신체검사에서 중등도 난청이 있다고 보아 청력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국민연금 가입 이전에 청각장애 초래 질병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보청기 착용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다가 2010년 6월이 되서야 갑자기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 질병에 관해 처음으로 진료를 받게됐다”며 “1985년 징병신체검사 당시 중등도 난청 판정의 신빙성이 높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당시 징병신체검사 청력 평가는 군의관이 5m 떨어진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알아듣고 복창하는 방식으로 측정이 이뤄졌다. 피검사자가 속삭임 소리를 듣지 못하면 군의관이 한발씩 다가가며 다시 속삭였고, 최종 소리 인지 거리를 바탕으로 등급을 매겼다.
1심 재판부는 장애연금의 ‘기본권’ 성격을 강조하며 질병 발생 초진일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국민연금 가입 중에 발생한 질병의 범위 안에는 ‘질병의 초진일이 가입 중에 있는 경우로 가입 당시 발병 사실을 못하는 경우’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가입 중에 생긴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장애연금수급권의 불인정 내지 배제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장애연금수급권의 기본권으로서의 성격, 국민연금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당해 질병의 초진일’은 장애를 초래한 직접적인 질병에 대한 진료개시일을 의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