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반도체 혹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우려와 다르게 시장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과 향후 전망치를 발표했다. 메모리 3사 중 가장 먼저 분기 실적을 발표해 ‘풍향계’로 불리는 마이크론이 인공지능(AI) 랠리를 주도했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핵심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공급 과잉’ 우려를 일축한 점은 반도체 업황 전반에 우려를 보이고 있는 투심을 되돌리는 데 긍정적인 재료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글로벌 메모리 ‘톱(TOP) 2’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 향방과 이에 따른 주가 흐름은 HBM 공급망 내 입지와 레거시 반도체 부진 등의 영향으로 차별화 양상을 보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5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 장 종료 직후 2024회계연도 4분기(6~8월)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은 77억5000만달러(약 10조3734억원)로 월가 전문가 예상치 76억5000만달러(10조2395억원)를 1.31% 상회했다.
이번 마이크론의 실적을 통해 금융투자업계에선 최근 미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제기했던 ‘반도체 혹한기’ 도래 주장으로 불거진 반도체주 약세 현상이 완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어닝콜에서 메로트라 CEO는 HBM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 제품의 ‘공급 과잉’ 가능성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마이크론이 생산하게 될 모든 HBM이 완판됐다. AI 산업 발전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강력하며 공급이 이를 따르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마이크론의 실적 결과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드리웠던 다운사이클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점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에도 분명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다만, 국내 증권사에선 3분기 실적 시즌이 다가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향후 주가 방향이 엇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당장 10월 둘째주로 예정된 3분기 잠정실적 발표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선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실적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지난달 13조6606억원(최소 11조7180억원, 최대 15조2000억원)이었지만, 9월 들어선 11조2313억원(최소 9조7000억원, 최대 14조7900억원)으로 17.78%나 하락했다.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 컨센서스도 8월 45조3213억원에서 이달 40조8225억원으로 9.93% 하향 조정됐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2개월 새 24.15%나 하락했다. 전날 종가도 6만2200원으로 ‘52주 신저가’에 위치했다. 이달 들어 국내 15개 증권사가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치보다 내려잡은 가운데, 목표주가 컨센서스도 9만9560원으로 ‘10만전자(삼성전자 주가 10만원대)’ 아래로 내려왔다.
반면, SK하이닉스의 경우 국내 증권사들의 기대감은 삼성전자에 비해 긍정적으로 보인다. 올 3분기는 물론,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가 최근 한 달 새 소폭 하향 조정되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최근 2개월 간 20.72% 내려 앉았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HBM 분야 경쟁력이 약한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 HBM 기업으로 자리 잡은 SK하이닉스에 비해 주가를 회복할 체력이 약하단 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스마트폰 및 PC 수요 감소에 따른 일반 D램 가격 하락에 레거시 반도체 수요 감소 전망까지 본격화한 것이 삼성전자 주가엔 직격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메모리 사이클이 고점에 도달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내년 하반기부터 상승 사이클이 재개되면서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의 주가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HBM의 경우 내년에도 공급 부족일 것으로 예측한다. 설령 공급 과잉이 발생하더라도 HBM3E 12단 신제품 가격 프리미엄으로 가격 하락이 상돼되며 평균판매단가(ASP)는 보합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