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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트러블(주디스 버틀러 지음·조현준 옮김, 문학동네)=한국사회에서 젠더 갈등은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이때 ‘젠더’의 함의는 단순히 남녀의 구분을 뜻하지만, 그렇게 해선 이 이슈에 접근할 수 없다. 1990년에 이 책의 초판을 쓴 저자는 젠더에 더 자유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젠더’라는 규정 자체가 ‘트러블’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다른 성별, 다른 젠더, 다른 섹슈얼리티를 혐오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에, 젠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이 책으로 인해 30대 중반의 나이에 페미니즘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현존하는 가장 도전적이면서 영향력있는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페미니즘 내부의 가부장적 이성애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성별과 젠더의 이분법적 틀을 허물면서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특히 프로이트, 라캉, 데리다, 푸코 등 후기 구조주의자라 불리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끌어와 페미니즘의 이론에 맞게 변형시켜 논지를 전개한다. 아울러 시몬 드 보부아르, 뤼스 이리가레, 쥘리아 크리스테바, 모니크 비티그 등의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조망한다.
▶모우어(천선란, 문학동네)=2019년 ‘천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과학소설(SF) 작가 천선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신작에는 표제작과 ‘얼지 않는 호수’ 등 미발표작 2편을 비롯해 총 8편의 단편이 함께 수록됐다. 모두 2020~2024년에 집필됐다. 세상이 꽁꽁 얼어버려 식량을 구할 수 없는 미래, 심판의 날을 맞이한 인류가 살아가는 언어가 사라진 세계, 지구 밖으로 보내진 이들의 삶 등이 작품마다 흡인력 있게 그려졌다. 각각의 이야기가 기꺼이 애쓰며 뻗어가는 결말은 다르다. 그러나 위태로운 세상의 문턱에서 기꺼이 파수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두드러진다. ‘작가의 말’에서 천선란은 “이 소설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홀로 버텨야 하는 그 경계에서 조금은 덜 외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숨고, 누군가는 지키고, 누군가는 이름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세상에 선 작가의 고백이다.
‘자살의 언어’ 책표지 |
▶자살의 언어(크리스티안 뤼크 지음·김아영 옮김, 북라이프)=자살은 ‘가장 외로운 죽음’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스스로 생을 저버리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기에 혼자 외롭게 준비할 수 밖에 없어서다. 스웨덴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신간을 통해 자살과 조력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자살이 금기시 됐던 로마시대부터 죄악으로 여겨진 기독교 확산 등 자살의 역사적, 문화적 해석 과정을 살피는 한편,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자살부터 저자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친인척의 죽음까지 그 범위와 폭을 확대했다. 또 자살을 준비하는 당사자의 심리 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는다. 이밖에 스위스 등 조력사를 인정하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실패 후 삶의 의미를 되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았다. ‘죽음의 의사’로 불리며 조력사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선 필립 니츠케 박사에 대한 에피소드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