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요즘 LA는 다저스의 도시, ‘다저타운’이다. 10월이 끝나가던 날 월드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11월의 첫날 우승 퍼레이드를 펼쳤을 때 무려 30여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LA는 다저타운의 다른 이름이 돼버렸다.작년,재작년 내리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뒤끝인지라 올해 우승의 감격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LA는 미국의 스포츠시장에서 뉴욕에 이어 두번째로 큰 프랜차이즈답게 최근 10여년 동안 이른바 5대 프로스포츠 종목이 골고루 우승컵을 가져왔다.
2014년 킹스가 프로아이스하키리그 NHL 스탠리컵을 차지했고, 프로축구 MLS에선 갤럭시가 우승했다.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단축시즌이 됐지만 다저스가 메이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를 우승했고,프로농구 NBA에서 레이커스가 통산 12번째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했다. 2021년에는 프로풋볼 NFL의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슈퍼볼의 빈스 롬바르디컵을 램스가 품에 안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LA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승 파티를 벌이고 온 도시가 우승팀의 인기로 가득 찼던 건 아니다.올해 월드시리즈를 차지한 다저스는 달랐다. 스포츠 구단의 미덕이요, 이상이랄 수 있는 프랜차이즈와 한몸되기, 즉 동일시 현상을 실감하고 있다.
우승할 만한 전력을 갖고도 포스트시즌에서 무릎 꿇었던 과거 때문에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감격이 배가돼 순식간에 LA가 다저타운이 됐다고 말하는 건 사실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스포츠에서 맛보는 승리의 기쁨은 절반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LA라는 도시가 안고 있는 온갖 상처 때문이 아닐까 싶다.
5만명이 넘는 노숙자 문제를 비롯, 백화점부터 명품가게, 편의점까지 대명천지에 벌어지는 떼강도 습격사건, 살인사건이 아니면 어지간한 강절도 신고에는 꿈쩍도 안하는 부실한 경찰력과 치안부재,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널부러진 쓰레기로 지저분한 거리….
‘천사의 도시’라는 애칭은 아마도 마약에 찌든 누군가가 지어낸 반어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LA는 낙후돼 가던 도시다. 솔직히 2026북중미 월드컵과 2028 올림픽을 어떻게 치러낼 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런 곳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내듯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다저스의 야구와 그 승리는 충분히 도취하고도 남을 힐링의 묘약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다저스는 주력선수들마다 상처와 그늘을 지닌 채 한시즌을 치러내며 말 그대로 ‘고진감래 (苦盡甘來)’의 순간을 맛봐 열악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는 LA주민들에게 주는 공감의 폭과 깊이는 더 컸을 것이다.
도박빚에 쫓긴 통역사가 1600만달러나 훔쳐간 사실이 들통나면서 시즌을 시작한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 외야와 내야를 오가는 포지션 변경의 스트레스 속에 투구에 맞아 팔목이 부러져 2개월여를 쉬었던 무키 베츠, 희귀병에 걸린 어린 아들 때문에 시즌 하반기에 집중력을 잃었던 프레디 프리먼….
엊그제 다저스 구단 프런트는 후안 소토라는 걸출한 젊은 외야수를 만났다고 한다. 뉴욕 양키스에서 프리에이전트를 선언한 소토는 26살에 슈퍼스타급 활약을 펼쳐 모든 팀이 탐내는 타자다. 그의 몸값은 계약기간 10년에 7억달러에 다저스와 사인한 오타니 못지 않을 거라고 야구 관련 매체들이 바람을 잡고 있을 정도다. 다저스가 오타니-베츠-프리먼으로 이어지는 타선에 소토까지 얹으면 그야말로 가공할 화력을 장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LA의 여론은 적어도 연봉 5천만달러는 줘야할 것으로 보이는 소토를 다저스가 계약하는 걸 탐탁치 않아한다. 스포츠 전문 라디오 토크쇼에서는 그 돈이면 올해 우승에 한몫한 테오스코 헤르난데스, 키케 헤르난데스, 워커 뷸러 등 프리에이전트로 풀린 선수들을 재계약하라며 대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팬들이 적지 않다.
아픔을 함께 겪고 값진 열매를 딴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고스란히 다시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